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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스포츠서울 정다워기자] 이영표(44) 강원FC 대표이사는 지난 2013년 은퇴 후 축구계에서 야인으로 지냈다. 해설을 하고 방송에도 자주 출연했지만 축구, 특히 K리그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을 하지는 않았다. 지난달 들려온 강원 대표이사 취임 소식이 화제가 된 이유다. 게다가 그는 아직 40대로 젊어 ‘사장’이라는 무거운 직책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기대 반 우려 반 속 취임한 그의 행보는 말 그대로 ‘광폭’이다. 물 밑에서 움직이며 여러 이적을 성사시키며 축구계의 호평을 받고 있다. 12일 춘천에서 만난 그는 “제가 한 게 아니라 서로의 필요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된 것”이라며 겸손하게 말하면서도 “선수 시절 이미 경험해본 것들이라 큰 어려움은 없다. 다만 스카우트는 대표이사가 해야 할 극히 일부의 일이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다”라며 바쁜 여정을 예고했다.
◇“K리그 제안은 몇 년간 계속 받았다”이 대표이사는 지난 몇 년간 K리그 다수 구단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다. 스마트한 이미지에 2002 한일월드컵 영웅의 상징성으로 인해 그를 ‘모시려는’ 팀들이 많았다. 그는 “꾸준히 제안을 받았기 때문에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상황상 계속 고사했는데 강원에서 세 번이나 찾아오셔서 부탁을 하셨다. 지금은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겠다고 했다”라는 배경을 설명했다.
행정 일은 이 대표이사가 은퇴 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 중 하나다. 계획대로 됐다는 뜻이다. “제가 마지막 무대로 미국을 선택한 것도 행정 때문이었다. 유럽 축구는 충분히 경험했다. 비즈니스는 미국이라고 생각했다. 전 세계 인재들이 가장 많이 모이고 대학에서의 연구 결과가 필드로 가장 빨리 나오는 곳이 바로 미국이다. 미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행정 일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싶었다. 실제로 배운 것도 많다. 꼭 하고 싶은 일이었는데 이렇게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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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유럽처럼, 때로는 미국처럼
이 대표이사는 네덜란드의 PSV에인트호번을 시작으로 잉글랜드의 토트넘 홋스퍼, 독일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등 유럽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사우디아라비아, 미국까지 더하면 경험의 폭은 더 넓어진다. 이 대표이사는 선수 생활 쌓은 노하우를 강원에도 접목하고 싶어 한다. 그는 “유럽은 축구 자체가 본질이고 문화다. 축구 자체에 열광한다. 미국은 다르다. 사람들이 좋아한다면 본질을 바꿀 수도 있다는 마인드다. 철저하게 비즈니스, 사람 중심이다. 저는 그 두 가지 요소를 적절하게 강원에 접목하고 싶다. 사실 저는 보수적인 편이다. 그래서 VAR에도 거부감이 있었다. 하지만 흥행을 위해서라면 축구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우리의 관점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는 구상을 밝혔다.
무엇보다 그는 강원을 ‘신의’ 있는 팀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강원은 12년의 짧은 역사를 보유한 팀이다. 아직 팬층도 부족해 만들어가야 한다. 레전드라 부를 만한 선수도 나와야 한다. 팬, 선수, 구단이 함께 호흡해야 한다. 다른 것보다 신의 있는 팀이 되고 싶다. 선수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많은 팀들이 선수를 쉽게 버리고 포기한다. 과거 PSV에인트호번 같은 팀이 모델이 될 수 있다. 에인트호번은 강원도처럼 인구가 많지 않지만 가족적인 분위기였다. 정감 있고 뭉치는 힘도 강했다. 강원을 그렇게 만들고 싶다. 강원도는 지리적으로 넓어 이동이 어려운데 강원FC가 도를 통합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만족하는 경기가 더 중요”공교롭게도 이 대표이사는 김병수 강원 감독의 고향 후배다. 비교적 서열이 엄격한 체육계 특성상 두 사람의 관계가 서먹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 대표이사 생각은 다르다. 그는 “저는 해외에서 11년간 선수 생활을 했다. 해외에서는 선후배 개념이 없다. 대표이사와 감독은 서로의 역할과 책임이 다르다. 분명하게 구분돼 있다.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저는 제게 맡겨진 일을 할 뿐”이라며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실제로 김 감독의 요구에 맞게 이 대표이사가 움직이며 원활하게 선수단 보강 작업을 진행, 원활한 호흡을 이어가고 있다.
이 대표이사도 K리그의 확실한 볼거리로 자리 잡은 ‘병수볼’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김 감독은 공을 오래 소유하고 패스를 통해 경기를 풀어가는 스타일을 추구한다. 이 대표이사는 “저도 강원 경기를 보면서 신선함을 느꼈다. K리그에서 쉽게 보기 힘든 확실한 캐릭터가 있는 감독님인 것 같다. 개인의 큰 자산이다. 강원 팬 만족도도 크고 기대도 크고. 저도 그렇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이어 그는 “축구팀은 성적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보다 모두가 만족하는 경기를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겨도 즐겁지 않은 경기가 있다. 반대로 성적은 부족해도 즐거운 경기, 팀이 있다. 우리가 축구를 하는 이유는 즐겁기 위해서다. 강원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라며 강원이 지금의 스타일을 유지, 발전시켜 팬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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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우트는 극히 일부, 10~11개월은 돈 벌 생각”
축구팀에서 ‘사장님’이 해야 할 일은 많다. 선수를 스카우트하는 것은 극히 일부의 일이다. 넓게는 매출, 유스 시스템 확보 등 여러 분야를 모두 신경써야 하는 자리다. 이 대표이사는 “사실 지금은 시기적으로 이적시장이 진행 중이라 스카우트에 집중하고 있지만 나머지 10~11개월은 돈 벌 생각을 해야 한다. 대표이사로서 축구를 잘하고 팬이 많이 오고, 재정적으로 안정된 팀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 수익 구조를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유스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이 대표이사가 크게 신경쓰는 부분이다. 그는 “유스를 통해 성과를 얻는 데까지 최소 10~15년이 걸린다. 우리는 과거에 충분히 투자하지 않았다. 당장 성적 때문에 신경쓰지 못해 성과를 내지 못했다”라는 현실을 이야기했다. 이어 그는 “ 축구팀은 장기적으로 스스로 키워내는 힘을 얻어야 한다. 힘들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유스 클럽도 축구 인구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저는 아카데미를 먼저 만들고 싶다. 강원도에서 태어난 아이들 모두가 축구를 하게 만들고 싶다. 그중에 잘하는 선수는 엘리트로 뽑아서 쓰면 된다. 유럽은 태어나면 바로 축구를 한다. 그 팀에서 축구를 한 어린이는 모두 그 팀의 팬이 된다. 반드시 경기장으로 돌아오게 돼 있다. 그 시스템이 정착되면 관중 2만~3만명도 가능하다. 올해부터 아카데미를 하고 싶은데 예산 문제로 방법 고민하고 있다”라는 포부를 이야기했다.
많은 과제가 있지만 이 대표이사는 차분하고 착실하게 해내겠다는 구상이다. 급하게 성과를 내기보다는 내실 있게 미래를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한순간에 변할 수 없고. 변한다면 그만큼 빨리 사라진다. 좋은 팀은 천천히 변하고 오래 간다. 나빠져도 천천히 나빠진다. 강원을 천천히 좋은 팀으로 만들고 싶다. 언젠가는 강원에서도 할아버지와 손자가 대를 이어 응원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형제가 좋아하는 축구팀이 달라 싸우는 유럽처럼 축구에 모든 것을 거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
we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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