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용
FC서울 주장 기성용이 지난 17일 2차 동계전지훈련지인 제주 서귀포축구공원에서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다. 제공 | FC서울

[서귀포=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나도 유럽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기에 그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최근 FC서울의 2차 동계훈련지인 제주 서귀포시에서 만난 ‘캡틴’ 기성용(32)은 생존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는 ‘유럽파 후배’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2010년대 기성용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유럽파 스타로 활약했다. 2006년 서울에서 프로로 데뷔한 그는 2009년까지 4시즌 동안 중원의 핵심 요원으로 뛴 뒤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셀틱에 입단하며 유럽 무대를 밟았다. 셀틱에서 3시즌을 소화했고, 2012년 여름 스완지시티를 통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 진출했다. 입단 첫해 리그 29경기를 뛰며 주전으로 도약한 그는 2013~2014시즌 선덜랜드로 임대를 떠나 27경기(3골)를 뛰었다. 2014~2015시즌 스완지시티로 복귀했고 프로 한 시즌 최다인 38경기를 소화하며 8골을 기록, 전성기를 누렸다. 이후 뉴캐슬 유나이티드(2018~2019)~스페인 마요르카(2020)를 거쳐 지난해 여름 11년 만에 친정팀으로 돌아왔다.

박지성·이영표 등 ‘2002세대’가 EPL의 개척자 구실을 했다면 기성용은 아시아 미드필더에 대한 편견을 깨는 데 이바지했다. 거칠고 타이트한 빅리그에서 아시아인 미드필더는 피지컬과 속도 경쟁에서 밀려 기회를 얻기 어려웠다. 키 189㎝에 달하는 기성용은 유럽 선수 못지않은 피지컬과 더불어 톱클래스 수준의 패스 질을 뽐내면서 승승장구했다. 물론 성공만 있었던 건 아니다. 셀틱 초기 성장통을 겪으면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리그 템포에 적응하며 주전으로 도약했다. EPL에서도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하며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이겨냈다. 이는 곧 대표팀 경쟁력 증진으로 이어졌다. 기성용은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원정 첫 16강, 2012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축구가 사상 첫 동메달을 따내는 데 주역 구실을 했다.

기성용 등 선배의 맹활약으로 요즘 다양한 포지션의 후배가 빅리그나 유럽 중·소리그에 진출하고 있다. 다만 갈수록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축구에서 내부 경쟁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늘고 있다. FC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으로 이르게 주목받은 이승우(포르티모넨세)만 하더라도 스페인, 이탈리아 등 빅리그에서 기회를 잡지 못해 벨기에 무대를 선택했지만 역시 녹록지 않았다. 결국 올겨울 K리그 유턴을 고심하다가 포르투갈 리그 러브콜을 받고 새 도전에 나섰다. 역시 바르셀로나 유스를 경험한 백승호(다름슈타트)도 국내 복귀를 고려 중이다. 이 밖에 여러 20대 초·중반의 선수가 험난한 유럽 무대에서 제 가치를 입증하는 데 애를 먹으면서 좀 더 편안하고 안전한 환경을 그리고 있다.

기성용은 “사실 (유럽에 있는) 여러 후배와 종종 연락을 주고받는다”며 “나도 유럽에서 못 뛴 시기가 있지 않았느냐. K리그나 중국 등 아시아에서 (출전 보장 등) 좋은 조건으로 연락이 오면 달콤한 유혹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자신이 선택하는 건데 개인적으로 후배가 무엇을 선택하든 다 이해할 수 있다”며 “다만 유럽이 배울 게 많은 환경인 건 틀림이 없다. 살아남는 게 말처럼 쉽지 않지만 끝까지 버텨줬으면 한다. 그래야 개인과 한국 축구에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성용은 ‘단짝’이자 2010년대 함께 유럽 무대를 경험한 구자철(알 가라파) 얘기도 꺼냈다. 구자철도 지난해 기성용, 이청용처럼 선수로 늦지 않은 시기에 K리그 유턴을 고심하고 있다. 구자철은 지난 2019년 여름 독일 분데스리가 아우크스부르크와 계약 종료 이후 카타르 알 가라파에 입단하며 중동 무대를 경험하고 있다. 기성용은 “자철이에겐 ‘지금 잘 뛰고 있으니까 K리그 복귀는 좀 더 나중에 생각해도 되지 않느냐’고 했다. 해외 경험은 소중하다. 국내에 와서 다시 나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도전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도 유럽에서 왜 중간에 들어오고 싶지 않았겠나. 그때 ‘버티고 이겨내라’고 조언한 분이 많았고 그 영향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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