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박효실기자]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건 방송가의 오랜 불문율이다.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과 숏폼 웹드라마의 인기 속에 시청률 한 자릿수로 고전해온 지상파 드라마가 '약방의 감초'같던 노이즈마케팅으로 새삼스런 위기에 봉착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출연자와 제작진을 향한 역풍이 빨라졌다.


금주 첫방송을 시작한 SBS월화극 '조선구마사' MBC수목극 '오!주인님'이 성난 시청자들의 비난 속에 방송폐지와 다시보기 삭제를 결정했다. 이 모든 일이 고작 닷새만에 벌어졌다.


무려 30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조선구마사'는 거센 역사왜곡 논란으로 방영 2회만인 25일 전격 폐지가 결정됐으며, '오! 주인님'은 1회에 주인공 이민기의 알몸 샤워신을 주요부위 모자이크로 내보냈다가 성인지 감수성 부족으로 질타를 받으며 다시보기를 삭제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좀비에 구마라는 소재를 버무린 '조선구마사'는 사전제작을 거의 마친 상태였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속에 어렵게 촬영이 이어졌고, 생시(살아있는 시체)가 등장하는 장면들을 생생하게 담아내기 위해 CG등 후반작업에도 공을 들였을 터.


막대한 손실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SBS가 '방송폐지'라는 카드를 꺼낸 건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SBS는 방송을 둘러싼 논란이 발생한지 나흘만인 26일 "드라마의 방영권료 대부분을 이미 선지급한 상황이고, 제작사는 80% 촬영을 마친 상황이다. 이로 인한 방송사와 제작사의 경제적 손실과 편성 공백 등이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지상파 방송사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방송 취소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300억원이라는 막대한 제작비도, 방송 2회만에 시청자 항의에 폐지된 것도, 모두 한국 드라마에 전무후무한 일들이다.


성난 시청자들이 도끼눈을 뜨고 드라마를 지켜보던 시기 MBC 새 드라마 '오! 주인님'이 24일 첫 방송을 시작했다. 까칠한 스릴러 작가와 로코퀸 여배우의 밀당 로맨스를 다룬 말랑말랑한 로맨틱코미디로 1회 마지막 장면이 또 문제가 됐다.


'흥미진진한' 전개를 위해 이민기의 알몸씬이 담겼는데, 예전같으면 그저 화제로 치부됐을 이 장면은 성인지감수성 부족으로 몰매를 맞았다. 마침 코미디언 박나래도 유튜브채널 '헤이나래'에서 남자인형을 가지고 성적농담을 했다가 프로그램 하차에 공식사과까지 한바탕 난리가 났던 상황이었다.


남성을 성적대상화 하는데 대한 항의글이 쏟아지며 MBC는 '오! 주인님'의 다시보기를 삭제하는 한편, 해당 클립도 삭제했다. 이제 첫방송을 시작한 드라마의 다시보기를 삭제하는 눈물의 조치였다.


어쩌다가 안방극장 드라마들이 줄줄이 누더기가 되는 혼돈이 발생했나 싶지만 사실 이같은 분위기는 어느날 갑자기 생긴 게 아니다. '노이즈 마케팅'이 입소문을 타고 시청률로 이어지던게 과거의 전개라면 지금은 시청자의 피드백이 훨씬 빨라졌다.


그저 '안 보면 그만인' 시청자게시판에 글을 올리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적인 광고주 압박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진정, 청와대 국민청원 제기 등 여러가지 채널의 항의가 신속하고 대대적으로 이뤄진다.


여차하면 법적처벌로도 이어진다. 아이돌육성 프로그램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Mnet'프로듀스101' 시리즈의 연출자 안준영 PD 등 제작진은 투표조작 논란으로 결국 실형을 받기도 했다.


올초 자극적인 섭외로 짭짤한 재미를 봤던 TV조선'우리 이혼했어요' 측은 쇼트트랙 김동성을 출연시켰다가 거센 역풍을 맞았다. 김동성은 결국 1회만에 하차했고, 방송도 돌연 종영했다.


그 뿐인가. 지난 1월 종영한 SBS'날아라 개천용'은 주인공 배성우가 음주운전으로 입건되며, 방송 도중 하차해 주인공이 바뀌기도 했다. 첫 방송을 앞두고 주인공 박혜수를 둘러싼 학교폭력 논란이 불거진 KBS2'디어엠'도 편성을 잡지못한 채 표류 중이다.


TV에서만 볼 수 있던 드라마 예능 등 각종 콘텐츠가 여러 플랫폼을 통해 시청자들을 만나는 세월 동안 시청자들 역시 '안방극장 1열'의 수동적 존재에서 콘텐츠와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책임과 변화를 요구하는 능동적인 존재로 바뀌었다.


홍역같이 방송가를 휩쓴 금번의 사태를 통해 시청자는 더 높은 수준을 요구했고, 방송사의 답을 기다리고 있다.



gag11@sportsseoul.com


사진출처|S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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