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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윤세호기자] 사실상 적지에서 ‘아트 피칭’으로 그라운드를 지배했다. 토론토 에이스 류현진(34)이 더할 나위 없는 호투로 올시즌 첫 승을 눈앞에 뒀다. 지난해 정규시즌 마지막 등판처럼 뉴욕 양키스 타선을 압도했다.
류현진은 14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더니든 TD볼파크에서 열린 양키스와 홈경기에서 95개의 공을 던지며 6.2이닝 4안타 1볼넷 7탈삼진 1실점(비자책)으로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다. 평균자책점은 1.89까지 떨어졌다. 개막전부터 보여준 체인지업의 속도 조절을 비롯해 포심과 컷, 체인지업의 터널링 활용, 타자에 따른 맞춤형 전략까지 모든 게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굳건히 마운드를 지켰다.
결과 만큼이나 내용도 무결점에 가까웠다. 이날 류현진은 개막전부터 보여준 더 느린 체인지업을 이따금씩 구사해 양키스 타선을 혼란에 빠뜨렸다. 1회 애런 저지에게 82.2마일 체인지업을 던졌다가 3회 지오 어셀라에게는 76.2마일 체인지업을 구사했다. 류현진의 빅리그 통산 체인지업 평균 구속은 79마일 내외인데 체인지업에도 속도 변화를 주면서 쉽게 타이밍을 빼앗았다.
홈런 타자를 향한 분석과 적용도 완벽했다. 풀히터 좌타자 제이 브루스를 상대로는 철저히 바깥쪽만 공략했고 거포 저지와 지안카를로 스탠튼에게는 낮은 로케이션을 꾸준히 유지했다. 4회 스탠튼에게 몸쪽 컷패스트볼 이후 커브, 저지에게는 몸쪽 컷패스트볼 이후 체인지업을 던져 상대의 콜드존을 공략하면서 타이밍까지 빼앗았다. 마치 기계가 던지고 AI가 볼배합하는 것처럼 완벽한 제구와 볼배합이었다.
위기에서는 특유의 땅볼 유도 능력도 펼쳐보였다. 5회 체인지업이 한 가운데 몰리며 애런 힉스에게 좌전안타를 허용했는데 다음 타자 루그네드 오도어를 컷패스트볼로 2루 땅볼 더블플레이 처리했다. 6회 2사 1, 2루 위기에서도 스탠튼을 컷패스트볼을 통해 투수 땅볼로 돌려세웠다. 포심과 컷, 체인지업이 절묘한 터널링을 형성하기 때문에 류현진을 상대하는 타자 입장에서는 타이밍을 잡는 게 불가능이나 마찬가지다.
2년차를 맞이하는 주전 포수 대니 잰슨과 호흡도 돋보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류현진은 잰슨의 사인의 고개를 흔드는 모습이 이따금씩 나왔지만 이날 둘은 속전속결로 사인을 교환했다. 더불어 잰슨의 프레이밍으로 류현진의 정교한 커맨드도 날개를 달았다.
LA 다저스 시절만 해도 류현진에게 양키스는 난적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토론토로 이적한 후 천적관계를 깨끗하게 지워나가고 있다. 지난 2일 양키스와 개막전에서 5.1이닝 2실점했고 2020 정규시즌 최종전이었던 9월 25일 양키스전에서는 7이닝 무실점으로 토론토의 포스트시즌 진출 확정을 이끌었다. 이날도 류현진은 6-1로 앞선 상황에서 투구를 마쳤다. 양키스 타자들을 해부한 채 마음대로 아웃카운트를 늘려나간 류현진이다.
강한 상대에게 더 강한 게 에이스다. 토론토 입장에서는 피할 수 없는 양키스와 승부지만 에이스 류현진이 있기에 양키스가 두렵지 않다. 이날 TD볼파크는 마치 탬파베이에서 열린 양키스와 탬파베이 경기처럼 양키스 팬들로 가득했으나 양키스 팬들의 에너지는 류현진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실상 원정경기에서 관중들에게 침묵을 선사했다. 상대를 알면 알수록 강해지는 류현진에게 양키스는 더 이상 난적이 아니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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