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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건강한 토대마련과 균형 발전을 위해 기초 종목 활성화와 강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스포츠는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10위 이내에 들며 선전했지만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소수 몇몇에 의존한 결과일 뿐 그 토대는 빈약하기 그지없었던 것이 현실이다. 이에 스포츠서울은 스포츠토토와 함께 육상, 수영, 체조 등 기초 체육종목 현황을 진단하고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는 공동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주>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육상 저변 확대, 스포츠 선진국의 진짜 지름길.’
육상은 모든 스포츠의 근간으로 불린다. 스피드와 지구력, 신체 균형 등 운동의 전 요소를 담고 있다. 자연스럽게 육상으로 운동을 시작해 타 종목으로 전환, 큰 성공을 거둔 이들이 많다. ‘여자 골프의 전설’ 박세리 도쿄올림픽 대표팀 감독, 수영의 ‘마린보이’ 박태환 등 국내 대표 스포츠스타가 육상 선수 출신이다. 스피드와 지구력이 가장 요구되는 축구에서는 육상 선수 출신을 찾기가 더 쉽다. 2000년대 프랑스 간판 골잡이로 명성을 떨친 티에리 앙리도 400m 허들 선수 출신으로 유명하다.
육상은 세부 종목이 매우 방대하다. 내달 개막하는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금메달 48개나 걸려 있다. 그러나 한국이 역대 올림픽 육상 종목에서 메달을 따낸 건 마라톤 2개(1992 황영조 금메달·1996 이봉주 은메달)에 불과하다. ‘올림픽 세계 10위권’ 스포츠 강국을 자부하는 한국이 기초 종목이자 ‘메달밭’으로 불리는 육상에서 별다른 성적을 거두지 못한 건 의아한 일이다.
하지만 국내 현실을 돌아보면 수긍이 간다. 한국 체육은 그동안 내부 실정에 맞는 종목에만 집중 투자해 메달을 확보하는 전략이었다. 육상은 잠재력 있는 선수가 타 종목으로 전향하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집중 투자 종목에서 빠졌다. 여기에 출산율 저하와 종목 육성 선호도의 감소, 은퇴 후 비전 제시 미흡 등이 맞물리며 저변이 급감했다. 대한육상연맹을 통해 확인한 최근 5년간 등록선수 인원 추이만 봐도 6186명(2016년)에서 4695명(2020)으로 크게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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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현상은 핵심 종목 기록으로도 들여다볼 수 있다. 육상이 발전하려면 단거리 기록이 꾸준히 향상돼야 한다. 그래야 높이뛰기, 멀리뛰기 등 도약 종목에 스피드를 지닌 유망주가 몰려 동반 발전을 꾀할 수 있다. 그런데 ‘육상의 꽃’으로 불리는 남자 100m 한국 기록은 1979년 멕시코 유니버시아드 대회 당시 고 서말구가 세운 10초34가 31년 동안 깨지지 않다가 2010년 김국영(광주시청)이 10초31로 경신했다. 그리고 2017년 10초07까지 찍었다. 200m 한국 기록도 1985년 자카르타 아시아육상선수권에서 장재근이 세운 20초41이 한동안 유지되다가 지난 2018년 박태건(강원도청)이 제72회 전국육상선수권에서 20초40으로 0.01초 앞당겨 33년 만에 경신했다.
문제는 둘 다 세계 기록과 여전히 거리가 멀다. 100m와 200m 세계기록은 ‘인간 탄환’으로 불린 우사인 볼트(자메이카)가 지녔는데 각각 9초58, 19초19를 찍었다. 다른 주요 종목은 운동 환경이 과거보다 크게 개선돼 어느덧 세계적 수준에 근접하고 있으나 육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자 400m 한국기록(1994년 손주일 45초37), 800m 한국기록(1994년 이진일 1분44초14) 등은 여전히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를 두고 육상 자체가 한국인과 같은 동양인에게 맞지 않고 신체 능력이 우월한 타 대륙 선수간의 경쟁의 장으로 인식하곤 한다. 정부 차원에서 집중 투자 및 메달 유망 종목으로 여기지 않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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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고정관념을 깬 건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의 행보다. 일본은 어느덧 100m를 9초대에 뛰는 선수가 4명이나 된다. 야마가타 료타가 지난 8일 후세 테오 스프린트 남자 100m 결선에서 9초95로 일본 신기록을 세웠다. 지난 2019년 9월 사니 브라운 압델 하키무가 세운 종전 기록 9초92을 0.02초나 앞당겼다. 일본은 둘 외에도 기류 요시히데와 고이케 유키(이상 9초98)가 나란히 ‘9초대 스프린터’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중국의 ‘아시아의 볼트’로 불리는 쑤빙텐은 지난 11일 중국육상선수권 남자 100m 결선에서 9초98로 우승했다. 그는 지난 2015년 5월31일 9초99로 개인 통산 첫 9초대에 진입한 이후 이날까지 통산 7번이나 ‘9초대 레이스’를 펼쳤다.
신체 조건이나 특성이 한국 선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들의 고공 비행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현 남자 100m 한국기록 보유자인 김국영은 미국 등 육상 선진국에서 정상급 선수, 코치와 훈련 경험이 있다. 현재도 일본 출신 사쿠마 가즈히코 코치의 지도를 받고 있다. 그는 사쿠마 코치를 통해 100m 보 수를 49보에서 48보로 줄이고 보폭을 넓혀 막판 레이스에서도 스피드를 유지하도록 하는 등 주행 기법에 변화를 줬다.
이처럼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굴에 뛰어들어가 훈련 방식을 개선하고 선진 기법을 체득하려는 노력이 단기간에 필요하다. 또 국내 낙후한 육상 인프라의 개선은 필수다. 김국영은 “한국 육상은 이전보다 대회는 많아졌지만 경기장 환경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단거리 선수에게 스타트 블록은 민감한 요소인데 일본은 어느 경기장에 가도 같은 브랜드, 같은 모양이다. 반면 국내는 경기장마다 다르다. 기록이 일정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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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지향적으로는 ‘육상판 골든에이지 프로그램’에 대한 정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요구된다. 최인해 육상연맹 전무이사는 “정부, 대한체육회로부터 예산을 받긴 하나 대부분 국가대표팀 운용에 쓰이는 걸로 정해져 있다. 유망주 등에 할당된 지원금도 있지만 동·하계에 보름씩, 총 한달정도 훈련하는 수준이다. 이건 그저 맛보기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말 육상이 발전하고 특화한 선수를 키우려면 (유망주의) 집중 훈련을 장려하는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축구 유망주가 협회 지원을 받아 유학 프로그램을 거쳐 선진축구를 경험하는 것처럼 육상도 유망주를 미국이나 유럽으로 4~5년 장기적으로 보내서 경쟁력을 쌓아야 한다. 여기에 지도자 1~2명도 함께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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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육상은 순혈주의를 깼다. 비웨사 다니엘 가사마(안산 원곡고)처럼 귀화선수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펼치고 있다. 마라톤도 케나 출신 오주환(케냐명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이 도쿄올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뛴다. 이런 현상은 국내 선수에게 좋은 동기부여와 자극제가 돼 경쟁력 상승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종별선수권 남자 고교부 100m 결선에서도 비웨사가 10초45로 우승했는데 준우승한 박원진(설악고)의 기록은 비웨사에 불과 1000분의 3초 뒤졌다. 이런 분위기는 육상 저변을 늘리는 데도 고무적이다. 최 전무이사는 “최근 어린 선수의 기록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이런 기회는 매번 오는 게 아니다. 연맹은 임대기 회장서부터 자체 예산을 털어서라도 유망주의 장기 유학 혹은 특별 훈련 프로그램 보급에 심혈을 기울이자는 데 뜻을 모으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육상의 미래를 좀 더 함께 고민해주고 지원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호소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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