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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LA=문상열전문기자] 미국 스포츠의 농구와 풋볼(미식축구)의 레전더리 지도자에게는 늘 계보가 구성된다. 이를 ‘Tree’라고 한다.

대학농구 듀크의 전설 마이크 슈셉스키, 대학풋볼 앨라배마 닉 세이번, 프로 NFL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빌 벨리칙 감독 등의 계보가 유명하다. 그들의 밑에서 코치를 역임한 제자들이 다른 팀의 감독이 되는 경우가 ‘Tree’다.

그러나 야구는 ‘Tree’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Tree’는 특정 감독 밑에서 전술과 전략을 습득해 자신의 것을 만들기 때문에 이 개념이 가능하다. 야구는 전술 전력의 게임이 아니다.

KBO리그의 역대 최고 감독은 누가 뭐래도 김응용(81) 전 감독이다. 한국시리즈 최다 10회 우승, 유일한 두 팀 KS 우승(해태,KIA) 등 독보적인 존재다.

‘Tree’라고 말할 수 없으나 그의 곁에서 보좌했던 코치, 선수로 활동했던 제자들을 최다 감독으로 배출한 지도자이기도 하다. 김응용 전 감독과 직접 연관된 감독만 무려 8명이다. 김 전 감독의 ‘유산(Legacy)’이다.

하지만 김 전 감독의 유산은 KBO리그에서 긍정적으로 발현되지 않았다. 감독 시절 심판 판정의 항의할 때 거칠거나 눈쌀를 찌푸리게했던 행동들이 답습돼 부정적인 측면이 더 강했다.

감독으로 성공한 경우도 거의 없다. 김응용의 둥지를 떠나 처음 감독 지휘봉을 잡은 게 내야수 서정환이다. 서정환은 1998~1999년 삼성, 20005년 7월~2007년 KIA 감독을 역임했다.

두 번째 주인공 김성한이다. 2001년~2004년 해태에서 KIA로 오너십이 바뀐 뒤 첫 번째 감독이었다.

해태를 떠나 서울로 진출한 감독이 이순철(SBS해설위원)이다. 2003년 LG 트윈스 감독에 데뷔해 2006년 시즌 도중 해고됐다. 부임하자마자 당시 베테랑 이상훈과 갈등을 빚고 단장과 대화조차 하지 않으면서 LG 이순철호는 좌초했다.

김 전 감독의 오랜 수석코치를 지낸 유남호도 2004년 KIA 감독 대행을 거쳐 2005년 정식 감독으로 데뷔했지만 1년 만에 물러났다.

해태 왕조 시절을 상징했던 국보급 투수 선동열은 언제든지 감독이 될 수 있다는 여유가 있었다. 김 전 감독이 삼성으로 이적할 때 함께 대구로 가 수석코치를 역임하고 2005~2010년 6년 동안 지휘봉을 잡았다. 두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하지만 워낙 탄탄한 전력의 삼성이었던 터라 선동열의 우승은 높이 평가받지 못한다.

그 이유는 친정 KIA에서 감독으로 금의환향했을 때 성적이 이를 뒷받침한다.

유승한, 한대화도 해태와 김응용의 그늘에 있었다. 그리고 나란히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데뷔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해태 출신이 코치나 감독으로 데뷔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1990년대 강압적이었던 해태 문화를 강제로 선수들에게 주입하려 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많은 팀들이 해태 선수를 트레이드 해 오려고 했다. 그들의 강한 근성이 필요해서다. 하지만 그 근성은 해태라는 특수 조직에서만 통했다. 다른 팀에서는 통할 수가 없었다.

타 팀으로 이적한 코치들이 선수들을 모아놓고 하는 얘기가 늘 “니네 우승해봤어~”였다.

KT 이강철 감독은 해태 문화와 매우 동떨어진 인물이다. 해태 출신으로 유일하게 메이저리그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연수했다. 해태 출신들은 거의 일본파들이다.

해태와 김응용의 유산이 길게 드리워진 감독들은 한결같이 실패했다. 하지만 해태 컬러가 가장 약했던 이강철 감독은 신생팀 KT를 7년 만에 정규시즌 1위 팀으로 올려 놓으며 성공의 길을 닦았다. 해태의 아이러니다.

moonsy10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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