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성의 정면돌파 복사

2004년 삼성시절 박석민을 처음 봤다. 박석민이 대구고를 졸업하고 막 프로생활을 시작할 때였다. 고졸선수였지만 개성이 뚜렷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 사이에서도 기 죽지 않고 자기 플레이를 했다.

그때부터 박석민은 이미 타석에서 발레를 하고 수비할때도 삐딱하게 잡았다. 좋은 소리가 나올리 만무했다. 코치들도 “장난치냐?”고 타박했다. 다들 박석민이 야구를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돌아이’가 들어왔다고 오해했다. 내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야구판에서 살아남기 힘들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박석민은 이듬해 2005년 상무야구단에 입단했고 2007년 제대했다. 그사이 팀 분위기가 바뀌었다. 지도자가 물갈이 되었고 개성을 존중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시대적 흐름이 다행히 박석민을 구했다. 이상한 타격폼은 여전했고 ‘개그맨’이라는 별명도 붙었지만, 그는 자기 야구를 계속했다.

프로는 아슬아슬한 살얼음판을 걷는 게임이다. 2004년 당시 박석민을 보며 ‘과연 야구를 계속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만큼 자기 주장과 개성이 강했다. 그러나 박석민은 그 아슬아슬한 폼으로 20년 가까이 살얼음판 같은 프로무대에서 생존했다. 나아가 최고의 선수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렇게 자신의 야구가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었음을 실력으로 증명했다. 천재와 돌아이는 한 끗 차이였다.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가 된 박석민은 지난해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어기며 무수히 많은 돌을 맞았다. 17년간 잘 했지만, 한 번의 실수로 바닥까지 떨어졌다. 나 또한 그를 보며 욕 먹을 짓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마녀사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리그중단의 책임을 박석민에게만 물어선 안된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인생은 실수 이전의 삶도 함께 봐야 한다.

은퇴 이야기도 많이 나왔는데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징계를 마쳤고 계약상 문제가 없다면 뛸 수 있다. 운전면허를 박탈당한 운전자도 면허를 다시 따면 운전할 수 있다. 사고를 냈으니 운전하지 마라고 강제할 순 없다.

박석민은 20년 가까이 프로생활을 했다. 긴 세월이다. 기로에서 고민이 깊을 것이다. 만약 본인이 ‘포기하겠다, 안하겠다’고 하면 끝이다. 그러나 내년에 다시 하겠다면 그 선택을 인정해야 한다. 일생이 걸려있는 선택이다.

박석민 스스로 시간이 지나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했으면 한다. 그 선택을 나는 지지한다.

최익성 저니맨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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