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컷

[스포츠서울 |LA=문상열전문기자] IBK기업은행 여자배구단 문제로 스포츠계가 시끌시끌하다. 국회에서도 이 문제가 도마에 올랐을 정도니 파장이 어마어마하다.

IBK기업은행은 김사니 코치(현 감독대행)과 주장 조송화의 무단이탈에 이은 서남원 감독 경질, 김 대행 선임까지 이슈가 겹치며 스포츠계 뉴스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IBK기업은행은 이제 배구계에서 ‘왕따’가 되는 분위기다. 배구 감독들의 ‘악수 보이콧’에서 보여지듯 김 대행은 동료 지도자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배구계 전체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배구계에서 가장 화려한 지도자 경력을 자랑하는 신치용 전 삼성화재 감독도 작금의 사태에 심각성을 인지하며 쓴소리를 했고 살아있는 레전드 김연경 역시 “겉은 화려하고 좋아보이지만 결국 안은 썩었고 곪았다”며 일침을 가했다.

이제는 IBK기업은행에서 촉발된 이슈가 여자배구를 넘어 여성 스포츠 지도자들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사실 여성 지도자 문제는 국내 스포츠에서 반드시 풀어야할 해묵은 숙제 중 하나다. 예외는 있겠지만 국내 스포츠의 여성 종목은 남성 감독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배구와 농구 등 겨울 인기스포츠에서도 여성 감독이 탄생하고 있지만 그 비율은 높지 않다. 2020년 대한체육회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남성 지도자는 2만 2213명이고, 여성은 19.7%에 불과한 4386명이다. 그러나 올림픽에서 최초로 일궈낸 기록은 대다수가 여성 스포츠 선수들이 일궈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지도자는 여전히 소수이고 제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스포츠 선진국인 미국에서는 왕성하게 활동하는 여성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뛰어난 기량의 선수들은 물론이고 감독, 코치, 여성 리포터들의 전문성에 때로는 존경심도 갖게 된다. 그러다 한국 스포츠를 접하면 “왜 여자 종목에 남자 감독들이 이렇게 많을까, 여성들은 왜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까”라는 1차적인 의문을 갖게 된다.

미국에선 1972년 ‘타이틀 IX’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누구도 성별에 근거해 연방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교육 프로그램이나 활동에 참여하지 않거나, 혜택을 거부당하거나. 차별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골자다. 미국의 남녀 스포츠가 차별 없이 동등한 위치를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NCAA(미대학체육협의회)에 속한 대학들은 여자 스포츠 팀 메인 종목을 유지해야 한다. 여자 아이가 남자 중심의 리틀리그, 농구팀에 입단하려고 하는데 이를 막을 경우 법으로 제재를 받는다.

지난 2014년 13세의 모네 데이비스는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화제를 모았다. 단순히 여자로서 화제를 모았던 게 아니다. 구속도 대단히 빨랐다. 114㎞의 속구를 던졌다. 성인으로 치면 150㎞쯤 되는 강속구였다. 데이비스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녀가 등판한 경기 시청율이 3.4%로 ESPN이 중계한 역대 리틀리그 최고를 기록했다. 남자 선수였다면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려볼 정도였다. 만능 스포츠우먼인 데이비스는 현재 버지니아 소재의 한 대학에 재학중이며 WNBA 선수로 활동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여성 감독의 위상을 가늠할 사례도 있다. 지난 10월 대학농구 개막을 앞두고 사우스 캐롤라이나 여자 팀은 돈 스텔리 감독과 7년 계약을 연장했다. 미국 스포츠 사상 여성 지도자로는 최고액인 2240만 달러(266억원)에 계약했다. 연봉도 290만 달러(34억원)나 됐다. 그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며 WNBA 포인트가드 출신이다. 2008년 사우스 캐롤라이나 대학 감독에 부임해 3차례 파이널4에 이어 2017년에는 개교 이래 첫 NCAA 우승을 이끌었다. 학교는 스탤리의 리더십과 능력을 인정해 미국 여성 스포츠의 한 획을 긋는 계약을 맺었다.

미국 내 농구, 배구 등에서 여성 단체 종목의 감독은 대부분 여성이다. 물론 농구명문 코네티컷 대학의 지노 오리에마(67)처럼 남성 지도자도 있긴 하다. 오리에마는 명예의 전당 회원이다. 코넷티컷 지휘봉만 36년째이고 11차례나 NCAA 우승시킨 최고의 지도자다. 오리에마의 연봉은 240만 달러다. 이처럼 성별을 떠나 남성 지도자의 능력이 빼어나다면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감독을 선임하는 위치에 있는 남성들의 고착화된 인식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여기엔 여성 선수와 지도자의 노력도 필요하다.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만 기다려선 안된다. 앞으론 국내 여성 종목에도 그 위상에 맞게 훌륭한 여성 지도자가 더 많이 탄생하길 바란다.

moonsy10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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