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dy Retirement Reports
슈퍼볼 사상 최다 6회 우승을 이끈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쿼터백 톰 브래디와 빌 벨레칙 감독. 브래디는 2일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AP연합뉴스

[스포츠서울|LA=문상열전문기자] 스포츠전문채널 ESPN을 가슴 졸이게 한 NFL 탬파베이 버캐니어스 쿼터백 톰 브래디(44)가 은퇴를 공식화했다. ESPN은 지난주말 브래디의 은퇴를 보도했고, 정작 당사자는 아무런 의견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래디는 2일(한국시간) 인스타그램으로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브래디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NFL 역사상 최고의 선수다. G.O.A.T.(Greatest Of All Time)다. 미국 스포츠에는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메가스타들이 즐비하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의 스타들이 수두룩하다. 미국의 스포츠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들은 늘 이런 주제로 말씨름을 벌인다.

마이클 조던-코비 브라이언트, 코비-르브론 제임스, 조던-르브론의 비교 등이 그렇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미국 전 종목 가운데 최고로 꼽을 때 조던과 타이거 우즈가 늘 톱에 오른다는 점이다. 둘은 ‘황제’라는 칭호를 얻고 있다. 메이저리그 선수가 최고 스타 비교에서 빠지는 이유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스스로 이끄는 데 한계가 따르기 때문이다. 야구의 한계이면서 특수성이다. 야구는 투수가 매경기 등판하지 못하고, 타자는 투수가 정면 승부를 피하면 홈런을 때릴 수 없다.

브래디는 NBA 빌 러셀, 마이클 조던, MLB 베이브 루스, PGA 투어 우즈, NHL 웨인 그레츠키 급이다. 그러나 브래디를 ‘풋볼(미식축구)황제’라고는 부르지 않는다. 우승 면에서 브래디는 조던을 능가했다. 조던은 시카고 불스를 6차례 우승시켰고, 브래디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6회, 탬파베이 버캐니어스 1회 등 통산 7차례 팀을 슈퍼볼 우승으로 이끌었다. NFL 역사상 최다이다.

사실 앞으로 어떤 쿼터백도 슈퍼볼을 7차례 우승으로 이끌 스타는 배출되기 힘들다. 물론 브래디는 NFL 역사상 최고 감독으로 꼽히는 빌 벨리칙 감독과 손을 잡은 게 서로에게는 행운이었다.

브래디는 슈퍼볼 우승뿐 아니라 NFL 쿼터백 다승, 패싱야드, 터치다운 등 주요 주문 최고 기록을 남겼다. 그럼에도 브래디와 조던을 비교했을 때 팬들은 조던에게 기운다. 조던은 NBA 파이널에 6차례 진출해 6번을 모두 우승시켰다. 브래디는 슈퍼볼에 10차례 진출해 7번 우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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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은 NBA 파이널에 6차례 진출에 모두 시카고 불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조던이 부친의 불의의 사망이 없었다면 은퇴도 하지 않았고 NBA 8연패 위업도 달성했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조던의 시카고 불스는 1991~1993년, 1996~1998년 등 두 차례 3연패를 이뤘다. 2년이 빠지는 게 조던의 은퇴 기간이다. 조던은 1982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을 NCAA 토너먼트에도 우승시킨 될성 부른 떡잎이었다.

우즈는 2009년 섹스스캔들 이후 급추락했다. 지난해는 자동차 사고로 골프 생명마저 위협받았다. 현재를 보게되면 우즈의 20대 전성기를 간과하기 쉽다. PGA 투어 통산 최다 82승(타이), 유러피언투어 41승, 재팬투어 3승, 아시안투어 2승, 호주 3승 기타 16승 등 우승만 147승이다. 그가 메이저 대회에서 이룬 기록들은 신의 경지다.

2000년 우즈는 페블비치에서 벌어진 US오픈에서 통산 3번째 메이저 우승에 성공했다. 12언더파 우승이었다. 남아공화국의 어니 엘스와 스페인의 미겔 앙헬 히메네스가 공동 2위였다. 스코어는 3오버파였다. 1위 우즈와 2위의 타수 차가 무려 15타. 메이저 대회 사상 최다 차 기록이다. 당시 히메네스는 농담으로 주최측에 “어니와 나는 연장전을 해야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우즈의 기록은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스코어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우즈는 오거스타 내셔널에서 벌어진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통산 5차례 우승했다. 첫 우승을 21세 때인 1997년에 작성했다. 당시 최저 타수인 18언더파, 2위 톰 카이트와 12타 차. 2001, 2002년 16언더파, 12언더파로 연속 우승을 엮어냈다. 콧대높은 오거스타 내셔널은 이후 코스를 바꾼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7번홀 페어웨이 나무를 옮겼으면’하는 바람도 귓등으로 여겼던 오거스타 내셔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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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21세로 마스터스 토너먼트 우승으로 그린자킷을 입은 타이거 우즈가 PGA 투어 사상 최초의 흑인 골퍼 리 엘더(작고)와 기쁨을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브리티시오픈에서도 2000년 24세 때 세인트 앤드류스에서 19언더파로 클라렛 저그를 들었다. 당시 디 오픈 사상 최저 타수였다.

사실 PGA 투어 일반 대회에서 2위와 10타 차 이상 벌려 놓을 수 있다. 그러나 메이저 대회는 세계 톱랭커들이 출전하는 대회다. 그들을 상대로 15타, 12타 차는 인간으로서 해낼 수 없는 경지의 골프를 쳤던 것이다. 왜 조던과 우즈를 ‘농구황제’, ‘골프황제’라는 칭호를 주었는지의 답이다.

moonsy10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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