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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최근 아이돌 그룹 제국의 아이들 리더 문준영이 소속사와 갈등을 빚으며 ‘수익 정산’이 이슈가 됐다. 아이돌 그룹이 기획사와 마찰을 빚는 가장 큰 문제가 이 부분이기 때문이다. 문준영은 SNS에 “아홉 명 아들들이 코 묻혀가며, 피 묻혀가며 일해온 수익, 자금, 피 같은 돈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세요”라고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물론 가요 기획사들도 할 말은 있다. 대부분 기획사의 경우 신인 그룹 육성 과정에서 엄청난 비용을 부담하고, 적자를 면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한국의 아이돌 가수 육성 시스템이 어떤지, 도대체 아이돌 그룹을 제작하는데 얼마나 비용이 드는지, 기획사와 그룹의 정산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일선 가요 제작자들에게 물었다. 영화도 수백억원의 제작비를 쓰는 블록버스터와 수억원을 사용하는 독립영화의 제작 시스템이 완전히 다르듯 아이돌 그룹 육성에 드는 비용과 방식도 제작사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국내 중간 규모 음악 기획사가 5인조 아이돌 그룹을 육성할 때의 사례를 중심으로 알아보았다. 여기 나오는 금액, 시스템이 업계 ‘표준’은 아니다. 기획사의 규모, 전략에 따라 전혀 달라지는 내용이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아래는 몇몇 가요 제작자의 말을 종합·정리한 내용이다.
◇아이돌그룹의 탄생, 기획사의 사전 투자 비용 발생 항목들은?
아이돌 그룹은 데뷔를 준비할 때부터 투자비용이 만만치 않게 든다. 데뷔 후 수익이 발생하면 그룹 멤버들이 회사의 선투자 비용을 갚는 게 일반적이다.
아이돌그룹 멤버 구성에서 데뷔까지 빨라도 1년~1년 6개월여가 걸린다. 대형 기획사는 3년 혹은 더 긴 기간동안 혹독하게 연습시키며 공 들이는 회사도 있다. 우선 연습생을 뽑을 때는 기획사 정기 오디션이나 테스트 과정을 거치거나 다른 기획사의 연습생을 영입하기도 한다. 연습생 계약 방식은 기획사마다 다른데 단기계약, 장기계약, 전속계약 등으로 세분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식 데뷔전까지 연습생에게 돈을 주는 경우는 없다. 연습생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회사는 있지만 간혹 연습생이 자비로 밥을 사먹도록 하는 기획사도 있다. 기획사가 연습생을 키울 때 돈이 많이 든다. 보컬, 안무 등의 트레이닝 비용이 발생하고, 기획사 건물이 없을 경우 연습실 대여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데뷔가 임박한 팀이 기획사와 전속계약을 맺으면 그때부터 기획사는 팀원들에게 보컬, 안무 트레이닝을 본격적으로 받게 하는 동시에 피트니스 트레이너를 붙이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 성형, 미용 비용도 소요된다. 중간 중간 다양한 의상과 스타일링을 통해 팀 전체의 색깔과 콘셉트를 잡는 과정도 필요하다. 합숙소도 제공된다. 팀에는 차량도 제공해야 하고, 숙소 물품 구매 비용도 든다. 매니저 월급도 나가기 시작한다. 이 모든 비용은 나중에 수익 발생 후 팀이 갚아야 하는 소속사의 선투자 비용이다.
앨범을 내고 정식 데뷔할 때 그룹 멤버들은 기획사와 정식 계약을 맺게 된다. 기획사들은 연예인과 계약을 맺을 때 대부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제시하는 표준계약서를 기반으로 삼는다. 표준계약서는 신인 가수의 경우 계약기간 최장 7년(남자 그룹의 경우 군복무 기간 별도)이다. 수익 정산 배분율은 기획사마다 다르다. 기획사와 연예인이 5:5부터 7:3까지 다양하다. 이 비율만 놓고 ‘기획사가 잘 해준다, 아니다’를 논할 수는 없다. 향후 활동비의 부담 비율을 양측이 어떻게 정하냐도 고려해야 한다.
◇5인조 신인그룹, 초기 2년 활동 비용 10~15억원은 들어
신인 그룹이 나오면 적게는 1년, 많게는 5년 정도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형 기획사의 팀이 아닌 경우 신인이 빨리 뜨거나 수익이 창출되는 경우는 드물다. 2년 활동 기준 앨범 4장(싱글 및 미니 앨범 포함)을 낼 때까지 팀의 인지도가 높아지거나 팬덤이 형성되지 않으면 팀을 해체하는 게 나은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어떤 기획사의 경우 길게는 3~4년을 장기적으로 보기도 한다. 열악한 기획사는 그 기간을 견디기 쉽지 않다. 중견 기획사의 경우 초반 2년 동안 팀에 투자하는 비용은 대략 10~15억원 수준이다. 소규모 기획사의 경우 금액이 훨씬 적어지기도 하지만 대규모 기획사는 더 투자하는 경우도 있다. 중견 기획사가 신인 그룹에 3년간 30억원을 투자한 적도 있다.
아이돌그룹이 싱글앨범을 낼 때 순수 제작비만 최소한 1억5000~3억원 정도다. 제반 비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작곡가에게 한곡을 받는데 500~2500만원 가량이 든다. 인기 작곡가의 경우 신인 그룹에게 곡을 잘 주려하지 않는 게 기획사의 고민거리다. 녹음실 대여료, 편곡료, 믹싱·마스터링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 방송사 및 언론사에 홍보할 싱글 CD도 제작해야 한다. 뮤직비디오는 싸게 찍으면 5000만원이 들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1억원 가량, 해외 올로케로 야심차게 찍으면 4~5억원이 든다. 앨범 재킷 촬영 비용도 필요하다.
앨범 및 그룹 프로모션 활동 비용은 기획사마다 팀마다 천차만별이다. 마케팅 활동은 종류가 무궁무진하다. 쇼케이스를 열어 언론의 관심을 끌기도 하고 지하철 광고, 시내 버스 래핑을 통한 홍보, 탑차 대여를 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만 수억원을 지출하기도 한다. 미니 앨범 제작, 뮤직비디오 촬영, 각종 마케팅 비용을 합쳐 10억원 가량을 쓰는 경우도 있다.
앨범 출시후 한 노래로 통상 6~7주 가량 활동하게 되는데 이 기간 동안 활동비로 억대의 금액은 우습게 나간다. 회사마다 다른지만 헤어 메이크업과 스타일리스트에게 한달에 각각 1000만원 가량 지출한다. 필요에 따라 의상을 제작하기도 한다. 댄스 가수의 경우 의상을 최소 세벌은 제작한다. 한벌에 최소한 30만원이 들어 5인조 팀이라면 450만원이 드는 셈이다. 안무팀이 있을 경우 안무팀 한명당 하루 8만원은 줘야 한다. TV 음악 방송이 있는 날 5인조 그룹의 경우 최소한 16명(그룹 멤버 5명, 안무팀 5명, 매니저 2명, 헤어 2명, 메이크업 2명, 스타일리스트 2명)이 움직이는데 차량 유지비, 하루 두끼 식대가 무시 못할 액수다.
◇5인조 신인 아이돌 그룹, 사실상 수입원 거의 없어
5인조 신인 아이돌 그룹은 어떻게 수익을 낼 수 있을까. 지상파 순위 프로그램은 최고이자 거의 유일한 TV 홍보 수단으로 각광받지만 출연료는 10~20만원 수준이다. 라디오 공개 방송의 경우 100~200만원을 받기도 한다. 가장 주된 수입원은 각종 외부 행사다. 신인 그룹의 경우 한번 행사에 가면 400~800만원을 번다.
여자 그룹의 경우 방송 등으로 인지도를 쌓아서, 음원 수익을 낼 수도 있다. 남자보다 여자 그룹의 음원 수익이 좀 낫다는 게 통상적 인식이다. 그러나 신인그룹은 대체적으로 음원 수익을 기대하기 힘들다. 남자 그룹에는 팬덤 구축이 필수다. 일반적으로 국내 팬덤이 최소한 만명 단위는 돼야 머천다이징, 앨범 판매 등 수익을 추구할 여건이 마련된다. 인기 그룹은 최소한 10만 단위로 팬덤을 확보하고 있다. 해외 팬덤이 구축된다면 앨범 판매 등의 수익도 쏠쏠해진다. 남자 그룹은 해외 팬덤 구축, 해외 공연이 주요 수입원 중 하나로 떠오르지만 최근 일본 시장이 침체된 게 고민거리다.
신인 그룹, 혹은 인기가 별로 없는 그룹의 수익은 뻔하다. 꾸준히 음원 차트 100위권 안에 머무는 것도 쉽지 않다. 인지도 없는 신인 그룹의 경우 앨범은 거의 판매되지 않고, 불러주는 행사도 별로 없다. 이러면 기획사의 선투자 및 활동 비용은 고스란히 회사의 적자로 남는다.
1~2년전부터 한국의 아이돌 가수 육성 시스템이 한계에 부딪친 게 아니냐는 인식이 제작자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기존 팀들이 공고히 자리를 구축해 감에 따라 신인 그룹을 키우는게 갈수록 힘들어진다. 기획사 입장에서는 전형적인 ‘고비용 저효율’ 구조라 경제적 부담이 크고, 마치 ‘도박’처럼 성공 확률은 줄어들고 있다. 걸그룹의 경우 적자를 보지 않고, 수익을 올리는 팀은 소녀시대, 2NE1, 포미닛. 씨스타, 걸스데이, 에이핑크, 시크릿 등 이름을 들으면 일반인이 아는 수준의 팀 정도이다. 남자 아이돌은 팬덤이 생기면 수익이 발생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도 중소 기획사가 신인 그룹 한팀 띄우는 게 결코 쉽지 않다. 아이돌 그룹 하나 키우려면 20~30억원은 있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신인 아이돌 그룹의 ‘수익정산’, 학자금 대출 잔뜩 받은 사회 초년생 닮은꼴
계약서상 기획사와 가수가 7:3으로 나눌 때 사전 투자 비용은 기획사가 가수에게 줄 ‘3’에서 천천히 제해 나가게 된다. 활동 비용 정산은 회사마다 다르다. 기획사와 가수가 반반씩 부담하는게 일반적이고 가수가 활동 비용을 모두 부담하는 계약 조건일 때도 있다. 물론 성공한 그룹의 경우 재계약시 정산 비율이 당연히 달라진다.
신인 그룹이나 인기가 별로 없는 그룹의 경우 가수가 한달에 수십만원 가져가는 게 결코 쉽지 않다. 한 신인 그룹의 월말 정산에서 팀원에게 750원이 지급되는 경우도 있었다. 여러달 동안 그룹에 단 한푼도 정산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팀원 입장에서는 자신이 열심히 활동하는데도 수익이 거의 없다고 억울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회사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게, 회사는 최소 수억원의 적자를 감내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요즘 중견 기획사 정도쯤 되면 수익 정산 과정을 그룹 멤버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한다. 그럼에도 가수들은 노동력을 제공하고도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한다는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 현재의 아이돌 육성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는 한 앞으로도 기획사와 가수가 ‘수익 정산’으로 갈등을 빚는 사례는 꾸준히 늘어날 것이다.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한 기획사의 탓만 할수도 없지만 미래만 바라보고 달려가는 아이돌 그룹 멤버들에겐 지나치게 잔인하고 가혹할 수도 있다. 대학교 때 너무 많은 학자금 대출을 받은 탓에 졸업후 수년간 힘겨워하는 사회 초년생과 신인 아이돌 그룹 멤버는 묘하게 닮아있다.
정리 | 이지석기자 monami153@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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