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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황혜정기자]

박은빈의 용기(勇氣)다.

도전했고,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도전들이 성공해 호평 받는다면 한 개인으로서는 기쁜 성취일 테다. 그러나 도전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안정적인 인지도와 경력, 필모그래피까지 뭐 하나 부족한 것 없지만 박은빈은 언제나 용기를 갖고 도전을 택했다. 그리고 매사에 최선을 다했고 흥행과 작품성을 동시에 성취해냈다. 배우 자체로서도 도전하고 성장했지만, 그가 연기한 최근 작품 속 배역들 역시 도전과 성장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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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영우가 첫 출근을 하고 있다. 박은빈은 우영우를 연기하기 위해 ‘스스로가 먼저 영우의 진심을 알아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박은빈이 생애 ‘최초’로 타이틀롤을 맡은 ENA채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가 방영 2회 만에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랭킹 1위(지난 4일 오후 기준)를 차지했다. 스스로 밝혔듯 선뜻 맡기 쉽지 않은 캐릭터였지만 용기 내 도전했다. 방영 2회 만에 박은빈이 아닌 우영우는 상상할 수 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말투, 손가락, 눈동자, 목 움직임 등의 디테일한 연기는 영우의 특성을 표현하는 것일 뿐, 영우의 모든 걸 설명하지 못한다. 박은빈은 그것을 넘어 영우를 살아 숨 쉬는 존재로 만들었다. “제가 모든 것이 처음이라서 잘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영우는 자폐를 가진 사람 이전에 한 명의 사회초년생일 뿐이다. 신생 채널의 한계를 딛고 입소문을 탄 이유는 박은빈의 우영우가 내 이웃, 내 친구로 시청자의 마음을 두드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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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연모’에서 조선의 왕 이휘를 연기한 박은빈. 12.1% 시청률로 종영한 ‘연모’는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 4위까지 오르며 전세계에 K-사극의 저력을 알렸다.

KBS2 ‘연모’(2021)에서도 이미 한 차례 큰 도전을 선보였던 그다. 대한민국 드라마 사상 첫 조선의 여자 임금 이휘를 연기했다. 박은빈은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시청자들이 과연 납득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설정 자체가 상상에서 시작됐더라도 배우로서 얼마나 납득시킬 수 있을까가 큰 과제였다. 처음에는 어떻게 숨기고 살아야 될까 생각했는데 연기를 하며 선례가 없던 인물이다 보니 서먹했다. 남자로서의, 여자로서의 휘를 설명하기보다 사람 자체를 설득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박은빈은 남장 여자 왕은 어색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진정한 왕으로 변모하는 이휘의 성장 서사를 촘촘히 엮어냈다. 성별이 아닌 이휘라는 인물 자체에 몰입하게 만든 덕분에 ‘연모’는 국내외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박은빈은 ‘연모’로 2021년 KBS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며 “제 선택에 책임질 용기를 앞으로도 계속 기르면서 한발 한발 열심히 살아보도록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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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바이올린 전공생 채송아를 연기한 박은빈. 실감나는 연주 장면을 위해 수개월 간 바이올린 연습에 매진했다.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2020)에서 박은빈은 데뷔 후 첫 정통 로맨스물에 도전했다. 종영 인터뷰에서 박은빈은 “멜로를 해보니 ‘사랑이 무엇일까’라는 생각도 들더라. 이 드라마가 특히 감정선이 중요하지 않나. 침묵에서 표현해야 하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말하지 않고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바이올린 연기에도 도전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류보리 작가 역시 종영 인터뷰에서 “채송아 캐릭터가 박은빈이라는 배우를 만난 덕분에 실제 인물처럼 느껴지게 됐다. 감정 연기뿐만 아니라 바이올리니스트 느낌을 완벽하게 내기 위해 정말 많은 것들을 고민하고 연구했더라. 진짜 바이올린 전공 음대생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훌륭한 연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성실하고 멋진 배우를 만나 감사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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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스토브리그’에서 대한민국 야구단 사상 첫 여성 운영팀장 이세영을 연기한 박은빈. 러브라인이 없는, 게다가 스포츠 드라마는 흥행이 어렵다는 불문율을 깨고 최종회 시청률 21%로 홈런을 쳤다.

SBS ‘스토브리그’(2019)에서 박은빈은 대한민국 야구단 사상 첫 여성이자 최연소 운영팀장 이세영 역에 도전했다. 강렬한 카리스마와 따뜻한 면모를 동시에 갖추고 있어야 하는 리더 역할이었다. 이 역시 전례가 없는 역할이었지만 박은빈은 “초반에 운영팀장으로서 절제된 모습을 보여야 했다”며 그만의 해석을 충실하게 표현, 최종 시청률 21%를 기록한 드라마의 공신이 됐다. ‘스토브리그’ 이신화 작가는 박은빈에 “선한 태도에 불꽃을 담았던 세영에게 감사를 전한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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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판사판’ 이정주, ‘청춘시대’ 송지원으로 분한 박은빈.

그 밖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가 출연했던 SBS ‘이판사판’(2017)은 대한민국 최초로 판사가 주인공인 드라마였다. 최초로 5명의 젊은 여성을 공동 주연으로 내세워 시즌2까지 만들어낸 JTBC ‘청춘시대 1, 2’(2016~2017)까지 포함하면 아역 배우에서 성인 연기자로 성장하며 대부분의 작품에서 ‘도전’하는 길을 걸어왔다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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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박은빈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포츠서울DB.

지난 2016년 가을, 당시 25살이던 박은빈은 ‘청춘시대’(2016) 종영 인터뷰에서 스포츠서울과 만나 이런 말을 했다. “연기자로서 대표작이 많이 생겨서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다. 힘들어하는 분들이 TV와 영화를 보실 때 내가 극 안에서 몰입에 방해되지 않는 캐릭터로, 사람들에게 휴식을 줄 수 있는 배우였으면 좋겠다. 내 연기가 현대인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SS인터뷰②]배우 박은빈 “누군가에게 위로되는 연기자를 꿈꾼다” 중에서.)

이 말을 마친 배우는 그 이래로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길을 걸어왔다. 좋은 작가와 감독이 의기투합한 훌륭한 작품을 만난 것도 있지만, 박은빈의 연기가 작품을 빛나게 한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선은 네가 넘었어.” (‘스토브리그’). “좋아해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저는 한 번도 제 삶을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연모’),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까지 각각의 캐릭터가 마치 어제 한 말처럼 생생하게 시청자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쉴 수 있는 바탕엔 박은빈의 연기적 도전이 있었다.

갓 30살을 넘겼지만 대표작이 5개가 넘는다.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를 달며 연기자로서 인정도 받았다. 전례없는 ‘최초’ 캐릭터가 많았지만,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 연기로 대중에 휴식과 위로를 선사했으니 불과 6년 만에 이룬 꿈이다.

그래서 박은빈이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해내야죠”라며 담담히 걸어온 길에 ‘용기’라는 수식어를 붙여본다. 박은빈의 용기 덕분에 시청자는 최초의 판사 주인공을, 최초의 야구단 여성 팀장을, 사극 최초의 여자 조선 임금을,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를 만날 수 있었다. 마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OST 1번 트랙의 제목도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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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1살의 박은빈. 1996년 데뷔해 올해로 27년 차 배우다.

et16@sportsseoul.com

사진 | 각 방송사, 스포츠서울DB, 나무엑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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