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이 2023 스프링캠프를 치를 호주 블랙타운 베이스볼센터에는 시드니올림픽 야구 동메달을 따낸 태극전사들 24명의 이름이 동판으로 새겨져있다. 두산 이승엽 감독과 김한수 수석코치도 당당히 포함돼 있다. 블랙타운(호주) | 장강훈기자 zzang@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 블랙타운(호주)=장강훈기자] ‘올림픽 메달 기운으로 무너진 왕조 자존심을 다시 세운다.’

이승엽 감독이 이끄는 두산이 시즌 농사 준비를 위해 호주에 입성했다. 호주 관광도시 시드니에서 자동차로 30여 분 떨어진 블랙타운이 주둔지. 31일(한국시간) 두산이 스프링캠프를 치를 블랙타운 베이스볼센터(블랙타운구장)를 먼저 찾았다.

구장은 손님맞이로 분주했다. 전날 폭우로 훼손된 진입도로를 보수하고, 구장 내 사무실과 식당, 더그아웃 등을 정비하느라 구장 관리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날은 오전에 비가 내렸지만, 오후들어 청정지역 특유의 시린 하늘이 얼굴을 내밀었다. 습도가 살짝 높았지만, 청명한 날씨가 블랙타운구장의 잔디와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었다.

두산이 2023 스프링캠프를 치를 호주 블랙타운 베이스볼센터 메인구장 전경. 블랙타운(호주) | 장강훈기자 zzang@sportsseoul.com

두산이 2월1일부터 33일간 사용할 블랙타운구장은 호주프로야구 시드니 블루삭스 홈구장이다. 구장 곳곳에 블루삭스 엠블럼이 표시돼 있고, 3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관중석도 마련돼 있다. 그라운드 상태만 놓고보면, KBO리그 최신식 구장으로 꼽히는 창원 NC파크, 광주-KIA 챔피언스필드 등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쾌적함을 자랑했다.

메인구장 외야 뒤쪽으로 구장 두 개가 더 있는데, 두산은 이 세 곳을 모두 활용한다. 천막을 세워 서너 명이 동시에 투구할 수 있는 불펜도 만들었고, 철망 속에 네 명이 동시에 타격할 수 있는 간이 실내 타격훈련장도 두 곳이 보였다.

보조구장 사이에 여러 명이 동시에 투구할 수 있는 간이 불펜장이 공사를 끝내고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다. 우천 시에도 투구할 수 있도록 천막과 인조잔디로 구성한 게 눈에 띈다. 블랙타운(호주) | 장강훈기자 zzang@sportsseoul.com

두산 이승엽 감독은 “블랙타운은 첫 번째 홈런왕에 오를 때 쉼없이 훈련했던 곳이자, 시드니 올림픽 때 제2구장으로 활용해 실전을 치렀던 곳”이라고 돌아봤다. 이 감독은 시드니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을 상대로 8회 2사 2,3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역전 결승 2타점 2루타로 한국에 사상 첫 올림픽 야구 메달을 안겼다. 이 감독은 “동메달 결정전을 치른 구장은 지금은 없어졌다. 당시 제2구장으로 네덜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경기한 기억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블랙타운 구장 중앙출입구로 들어서면, 올림픽 영웅들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본부석과 관중석 등 구조물을 받치는 기둥에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동판을 시상대 순서로 새겨뒀다. 토미 라소다 감독이 금메달을 견인한 미국을 중심으로 왼쪽에 은메달을 따낸 쿠바, 오른쪽에 동메달을 차지한 한국 선수단 이름이 새겨져있다.

두산이 2023 스프링캠프를 치를 호주 블랙타운 베이스볼센터에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야구 금메달을 따낸 미국 선수단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블랙타운(호주) | 장강훈기자 zzang@sportsseoul.com

이승엽 감독과 김한수 수석코치도 보였고, 김기태(KT 2군감독) 박경완(LG 배터리코치) 박진만(삼성 감독) 이병규(삼성 수석코치) 등 선수 전원의 이름이 새겨졌다. 흥미로운 점은 감독을 포함한 코치진은 없다. 실제 올림픽 메달은 선수에게만 수여한다. 23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이른바 올림픽 레거시를 이어가려는 호주의 노력이 각별해 보였다. 21세기 첫 번째 올림픽이 열린 곳이니,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

두산이 2023 스프링캠프를 치를 호주 블랙타운 베이스볼센터 보조구장 외야 폴은 기둥을 채색하지 않고 노란색 천을 앞에 설치해 환경과 미관을 동시에 고려한 게 눈에 띈다. 블랙타운(호주) | 장강훈기자 zzang@sportsseoul.com

사실상 약체로 꼽힌 한국은 선수단 전체가 하나로 똘똘뭉쳐 세계를 깜짝 놀라게했다. 그 중심에 섰던 ‘타자 이승엽’이 두산 지휘봉을 잡고 23년 만에 이곳을 다시 찾았다. “몇 위라는 구체적인 목표는 잡지 않았지만, 선수를 하나로 모아 팬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야구를 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이 감독은 “약체라는 평가는 두산에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는 말로 포부를 대신했다.

포부를 현실화하려면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준비는 단내나는 훈련으로 완성한다. 왕조 재건 기치를 올린 두산이 지옥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