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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사랑의이해’에서 은행청경 정종현 역을 연기한 배우 정가람. 제공 | 매니지먼트숲

[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처음 연기자를 꿈꿨을 때 부모님께서 서울은 ‘눈 뜨고 코 베이는 곳’이라고 말리셨다. 무작정 밀양에서 상경한 내 모습과 종현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에서 은행 계약직 청경 정종현 역을 연기한 배우 정가람은 군 전역 후 첫 작품 속 캐릭터에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극 중 경찰 공무원의 꿈을 안고 지방에서 무작정 상경한 종현의 모습이 창문 없는 고시원에서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던 자신의 20대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며 웃었다.

그가 연기한 종현은 대졸 공채, 고졸 서비스 직군 등 계급과 계층으로 나뉜 은행 직원 중 가장 하위 직군을 차지한다. 학력도, 부모의 배경도, 가진 게 없는 종현이지만 그에게는 내일이 있고 미래가 있다. 당장의 생활은 힘들지만 버스 대신 택시를 타고, 짜장면 대신 탕수육 먹는 날을, 약국 대신 병원에 가는 소박한 미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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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의 한 장면. 제공 | JTBC

영포점 여신이라 불리는 안수영(문가영 분)은 자신에게 대시하는 대졸 공채 사원 하상수(유연석 분) 대신 긍정적으로 내일을 꿈꾸는 이 젊은 청년에게 마음을 내준다. 시청자들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은행 내 보이지 않는 벽에 상처입은 수영은 마치 어미새가 아기새를 돌보듯 종현에게 조금씩, 조금씩 자신을 내어준다. 마음에서 몸으로, 방 한 칸에서 타인의 원치 않은 호의로 얻게 된 돈까지 빌려준다.

21세기 평강공주마냥 종현을 돌보는 수영의 기대와 달리 종현은 종종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 시청자들의 욕받이가 되곤 했다. 함께 시험 준비를 하는 스터디원 여성과 시시덕대던 모습을 보였던 그는 수영과 소경필(문태유 분)의 관계를 오해해 난동을 부리다 끝내 폭력까지 저지른다.

“수영과 대화하는 대본을 읽으며 시청자들의 따가운 시선을 예상했다. 종현의 대사들은 상대방의 잘못보다 자신이 부족한데서 오는 열등감의 발로지만 환영받지 못하리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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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의 한장면. 제공 | JTBC

정가람은 폭행신이나 수영의 집에 다시 찾아가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다소 주저하기도 했다. 그는 “종현의 성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종현이 경필을 때리는 신은 PD님과 의논 끝에 격한 감정을 표현하기로 했다. 사실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될 것이다. 경찰이 꿈인 청년이 폭행이라니. 그리고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렇지만 연인과 관계가 무너진 청년 앞에 자신의 연인과 잠자리를 한 남성이 나타났다면 견딜 수 있을까. 종현이 수영의 집을 찾아가는 장면은 지문에 비밀번호를 누른다고 적혀 있었는데 나조차 소름끼쳐 노크로 수위를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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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사랑의이해’에서 은행청경 정종현 역을 연기한 배우 정가람. 제공 | 매니지먼트숲
◇연기자 꿈꾸며 밀양에서 무조건 상경…창문없는 고시원에서 생활하던 모습 겹쳐

정가람에게도 꿈을 찾아 방황하는 시기가 있었다. 부산외대를 진학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 그 무렵, 막연히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본 영화 속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학교를 자퇴했다. 의지를 드러내기 위해 용돈도 받지 않고 오로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창문없는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주거환경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프로필 사진을 찍고 돌렸지만 연락 오는 곳이 없었다. 서울에서는 숨만 쉬어도 돈이 들다보니 시간이 있어도 놀 수가 없어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다. 드라마를 보며 주인공들의 연기를 따라하곤 했다. 언젠가 나도 잘할 수 있는 날을 꿈꾸며 살았다”고 회상했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했다. 결국 그의 부모님도 두손 두발 다 들게 됐다. 갖은 고생 끝에 정지우 감독의 영화 ‘4등’(2016)에 캐스팅됐고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날, 그는 밀양의 부모님을 초대했다.

“처음으로 부모님께 연기자로 인정받은 날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4등’ 이후 넷플릭스 ‘좋아하면 울리는’ 시즌1, 2편과 영화 ‘독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등으로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늦은 나이에 군에 입대한 뒤에는 소모된 에너지를 채우며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힘든 시기를 겪어본 정가람이기에 종현이라는 캐릭터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정가람은 “종현은 아마 수영에게 빌린 돈을 갚았을 것이다. 종현이가 행복하게 새로운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며 마지막까지 종현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mulga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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