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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정하은기자]
“행선이와 치열이요? 지지고 볶고 살지 않을까요. 결혼했으면 로맨스는 끝났죠 뭐.(웃음)”‘칸의 여왕’이란 다소 묵직한 수식어 뒤엔 유쾌하고 솔직한 매력의 배우 전도연(50)이 있다. tvN ‘일타 스캔들’ 종방 후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전도연은 ‘남행선’처럼 애교 가득한 웃음소리로 드라마의 결말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지난 5일 종영한 ‘일타 스캔들’은 사교육 전쟁터에서 펼쳐지는 국가대표 반찬가게 열혈 사장 남행선(전도연 분)과 대한민국 수학 일타 강사 최치열(정경호 분)의 달콤 쌉싸름한 로맨스를 담은 작품이다. 첫 방송 4%(닐슨코리아 기준)로 출발해 마지막 회에서 최고 시청률 17%까지 끌어올린 건 단연 전도연의 힘이다.
2005년 ‘프라하의 연인’ 이후 17년 만에 받게 된 로맨틱 코미디 ‘일타 스캔들’을 전도연은 한 차례 고사했다. “행선의 텐션이 부담스러웠다. 작가님은 행선이를 더 억척스러운 아줌마로 그리셨는데, 제 톤이랑 맞지 않았다. 그런데 작가님께서 판타지 로맨스긴 하지만 현실적인 이야기였으면 좋겠다고 해주셔서 마음이 움직였다. 행선이 캐릭터를 어떻게 보실지 걱정됐고 부담도 안고 시작했다. 끊임없이 잘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런데 잘한 거 같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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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연하인 정경호와의 로맨스가 전도연에게 망설임의 이유는 아니었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젊은 배우들의 전유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타 스캔들’을 흥행시키며 당당히 그 틀을 깬 전도연은 정경호와의 마지막회 길거리 키스신에 대해 “잘했던데요?”라며 유쾌하게 웃음지었다.
중년여성들의 대리만족과 질투를 동시에 받았다는 그는 “키스신을 많이 했지만 대로변에서 해본 건 처음이라 어색하고 쑥스러워서 실제로 웃음이 터져 나온 건데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워서 감독님께서 그대로 쓰셨더라”라며 비하인드 스토리도 전했다.
밝은 캐릭터에 대한 갈증은 전도연을 ‘일타 스캔들’로 이끌었다. ‘밀양’, ‘너는 내 운명’, ‘하녀’, ‘인간실격’ 등 늘 무겁고 어두웠던 영화와 드라마 속 전도연과 달리 넉살 좋은 반찬가게 아줌마로 사랑스러운 말투와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온 전도연을 보며 시청자들도 반가웠다.
“온 가족이 다 보는 작품을 하는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떤 전도연은 “실제로 제 안에 있는 쾌활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 자신도 밝게 웃는 모습을 본지가 오래 됐더라. 스스로도 보고 싶었던 모습이었던 거 같다”고 이야기했다. 앞으로도 내면의 밝은 모습을 보여줄 작품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그는 “이렇게 잘했으니 또 (밝은 캐릭터가) 들어오지 않겠어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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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만난 전도연은 화장기 없는 얼굴과 청바지를 입어 극중 행선과도 꼭 닮아 있었다. 전도연과 행선은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며 마치 살아있는 듯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자칫 억척스러운 민폐 캐릭터처럼 비칠 수 있었던 행선을 사랑스러운 인물로 만든 건 이를 연기하는 전도연이 행선을 누구보다 사랑스럽게 바라봤기 때문이었다.
“대본 속 행선의 사랑스러움을 다 못 담았다”고 말한 전도연은 “행선이가 자기의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게 멋지고 응원하고 싶었고, 제가 느끼는 걸 시청자들도 응원해줬음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행선의 의상도 전도연이 직접 제안했다. “그렇다고 끝날 때까지 청바지를 입을지는 몰랐다. (웃음) 마지막회 꽃무늬 패딩도 제 옷이다. 여성스러운 옷을 좋아하진 않은데 귀여운 옷을 좋아한다. 행선이와 비슷하다.”
꾸준히 필라테스 등 운동을 한다며 적지 않은 나이에도 청바지 핏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도 귀띔하기도 했다. ‘일타 스캔들’이 큰 사랑을 받으면서 과거 전도연이 싸이월드에 올렸던 30대 시절 사진들도 화제를 모았다. 민낯에도 청순하고 앳된 전도연의 미모는 소위 MZ세대 사이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이에 전도연은 드라마에서 딸처럼 키웠던 조카 해이(노윤서 분)를 언급하며 “요즘 친구들이 해이 보고 여신 같다고 하는데, ‘거봐 내가 해이보다 예뻤다니까’라고 우스갯 소리를 했다”며 “자연스러운 모습을 좋아하는데 다시 보니 예뻤구나 싶긴 하더라”라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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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곡차곡 쌓아온 시간과 내공이 보여주듯, 전도연은 노련했다. ‘전도연의 재발견’, ‘전도연의 해’ 등의 호평과 떠들썩한 관심 속에 되레 전도연은 들뜨지도, 그렇다고 지나친 겸손 속에 자신을 가두지도 않았다. ‘인간실격’, ‘비상선언’, ‘길복순’, ‘일타 스캔들’까지 지난해부터 연달아 촬영에 임해 온 전도연은 “흥행 여부와 관계없이 작품을 쉬지 않는 한 늘 나의 해였다. 저로서는 저의 해가 아닌 적 없었다”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감 보다는 솔직함에 더 가깝다. 30년 넘게 50편이 넘는 작품을 하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법을 배웠다는 전도연. 그 계기는 2007년 영화 ‘밀양’이었다.
“이전까지는 작가님, 감독님이 원하는 만큼 그 캐릭터에 저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밀양’ 때 고통스럽게 배웠다. 당시 미혼이었는데 아이를 잃은 엄마의 감정을 연기하는게 뭔가 가짜 같고, 흉내 내는 것 같더라. 그때 이창동 감독님께서 제가 느낀 만큼만 하라고 하시더라. 시간이 지나고, 그게 ‘자신에게 솔직하라’는 말씀이셨단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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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면서 정작 스스로를 당연시한 게 후회가 됐다는 전도연은 “제가 느껴지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고 한다. 그리고 견디고 해낸 것에 대해 저 자신한테 스스로 칭찬을 많이 해주려고 한다. 스스로와 대화를 많이 하고 나에게 더 집중한다”고 말했다.
‘밀양’으로 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후 영화 ‘너는 내 운명’, ‘하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드라마 ‘굿와이프’ 등 고도의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다양한 장르물을 소화해온 전도연은 공개를 앞둔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으로 베를린 영화제에도 초청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연기를 자신감으로 해본 적은 없다”는 그다.
“‘잘하지 못하면 어떡하지’의 두려움은 이 작품 뿐만 아니라 매 순간 있다. 그 순간에 충실하려고 스스로를 믿어 주려고 엄청 노력한다. 잘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얘기한다.”
‘일타’ 연기력으로 살아 숨 쉬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베테랑 배우도 빛나는 연기 뒤엔 끝없는 노력이 있었다.
jayee212@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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