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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정다워기자] V리그에 에이전트 제도가 정말 필요한지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을 역임했던 김선웅 변호사(법무법인 지암)는 21일 한국배구연맹(KOVO)에 에이전트 제도 시행을 촉구했다. 연맹은 저액 연봉 선수가 소외받게 되는 등 기본권 침해가 발생하게 되는 만큼 시장 성숙 및 저연봉 선수의 보호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에이전트제도 시행 시기를 구단과 함께 논의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에이전트 제도는 선수의 권리와 의무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선수가 직접 협상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불합리한 대우를 막기 위해 대리인을 고용하는 것이다. 프로축구와 프로야구에서는 이미 대다수의 선수들이 에이전트를 고용해 이적, 연봉 협상 등 제반사항을 일임한다. 선수 스스로 에이전트의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V리그에 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하려면 일단 선수들의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다만 아직까지 V리그 선수들은 공식적으로 연맹이나 구단에 에이전트 제도 도입을 주장하지는 않고 있다. 연맹 관계자는 “선수들이 절차를 걸쳐 공식 입장을 내놓은 적은 없다”라고 밝혔다. 복수의 구단 관계자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법적인 쟁점을 떠나 V리그에 에이전트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는 관계자들의 시선은 회의적이다. V리그 선수들은 이미 권리를 충분히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V리그 선수들은 전 세계에서도 많은 연봉을 받는 것으로 유명하다. 올림픽이나 국제배구연맹(FIVB) 대회에서의 성적, 국제 경쟁력과 별개로 국내 시장의 경쟁에 따라 상상을 초월하는 임금을 수령하고 있다. 대리인이 없어도 자유계약(FA) 시장이 열릴 때마다 ‘대박’을 치는 선수들이 즐비하다. ‘억’이 우스운 리그가 바로 V리그다. 심지어 V리그 시즌은 6개월에 불과하다. 컵대회를 포함해도 경기에 나서는 기간은 길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축구, 야구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인플레이션이 일어난지 이미 오래다.
한 남자 구단 관계자는 “선수 스스로도 연봉을 많이 받는 것을 안다. 그래서 경기 수를 오히려 늘리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선수도 있다. V리그 선수들이 권리를 침해받는다는 말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복수의 여자 구단 관계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에이전트 제도가 시행되지 않으면 해외 이적 갈등, 구단과 계약 분쟁, 임의탈퇴 강요 등 프로배구에서 반복된 문제들을 막기 어렵다”라는 김 변호사의 주장에도 근거가 부족하다. V리그에서 해외로 이적하는 선수는 거의 없다. 해외 이적 갈등은 김연경 사례 이후 찾아보기 어렵다. 구단과의 계약 분쟁도 마찬가지다. 한 시즌에 어쩌다 한 두 번 나올까 말까다. 최근에는 특정한 이유가 없으면 임의탈퇴를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다. 선수 한 명 한 명이 귀한 시대라 오히려 선수가 ‘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수의 권리를 침해하는 사례를 나열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극히 적은 케이스를 위해 제도까지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을 실기 힘들다.
축구는 매 시즌 이적이 가능하고 이 과정에서 이적료가 발생하기 때문에 에이전트 제도가 당연히 필요하다. 야구의 경우 ‘n년’에 수십억원에 달하는 고액 연봉자가 많아 대리인의 협상은 필수다. 반면 배구는 FA가 되지 않으면 이적이 불가능하고, 에이전트의 협상이 필요할 만큼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는 극히 일부다. 축구, 야구와 비교해도 규모가 크지 않다. FA 계약을 해도 기본 연봉은 이적 첫 해에 고정하는 경우가 많아 굳이 매해 대리인을 통해 협상을 하며 구단과 줄다리기를 하는 광경도 보기 어렵다. 연맹의 주장대로 대다수의 선수들은 에이전트를 두면 오히려 금전적인 손해를 걱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에이전트 제도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누구도 아닌 선수들이 직접 나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면 된다.
we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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