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한화 김응룡 감독은 정규시즌 마감을 코 앞에 뒀던 지난달 19일 기자와 만났다. 여론의 눈길이 인천아시안게임에 집중된 사이에 만든 가벼운 자리였다. 김 감독은 이 자리에서 “한화에서 감독 생활을 한 지난 2년의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털어놨다. ‘코끼리 감독’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우직하고 강인한 지도자였던 그를 무엇이 그토록 힘이 들게 만들었을까?
김 감독은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였다. 과거 해태와 삼성 감독 시절, 거침없는 조직 장악력으로 우승컵을 10차례나 들어올렸다. 스타플레이어도, ‘한 성격 하는’ 베테랑 코치도, 김 감독 앞에선 한없이 작아졌다. 하지만 그는 한화에서 자신의 최대강점인 ‘조직 장악력’을 마음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마치 물과 기름이 만난 것 같았다. 이유가 있었다. 구단은 준비과정 없이 김 감독을 선임했다. 구단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구단 인사가 감독 선임을 한 것이 아니라, 그룹 고위층에서 일사천리로 결정한 인사였다. 준비없이 노장을 사령탑에 앉혔으니, 기존 구성원과 김 감독이 유기적으로 섞이지 못한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김 감독의 계약 마지막 해인 올 시즌을 앞두고는 이런 분위기가 더 심해졌다. 김 감독과 코칭스태프, 선수들이 각기 다른 목소리를 냈다. 융화되지 못한 한화는 조금씩 표류했다.
김 감독은 선수 기용안을 두고 팀을 하나로 묶지 못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내야수 송광민의 사례다. 김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군제대 선수들의 중용을 결심했다. 핵심선수는 김회성이었다. 장타력을 갖춘데다 좋은 신체조건을 갖고 있어 김 감독은 시즌 전부터 그를 “주전 3루수로 기용하겠다”고 밝혔다. 김회성의 기용안은 실패였다. 유격수로 배치된 송광민은 익숙치 않은 포지션 탓에 결정적인 실책을 반복했고 팀 분위기는 급격히 하락했다. 송광민의 기용안을 두고서도 말이 많았다. 송광민을 기존 포지션인 3루수로 배치해 불안감을 없애야 한다는 코칭스태프의 의견과 계속 유격수로 활용해 김회성 카드까지 활용해야 한다는 또 다른 코칭스태프의 의견이 충돌했다.
마운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김 감독은 주요선수들을 반복해서 쓰길 바랐다. 하지만 지난 시즌 혹사논란의 중심에 섰던 송창식 등 투수들이 하나둘씩 부상악령에 시달렸고, 내부에선 불만이 터져나왔다.
구성원들은 융화되지 않았다. 팀 성적은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김성한 전 수석코치가 사표를 던졌다. 지난 5월의 일이다. 겉으로 드러난 김 코치의 사임 이유는 ‘성적 부진’ 때문이었다. 김 코치는 “감독님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해 사임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당시 김 코치에 대한 구성원들의 불만은 매우 거센 상황이었다. 한화의 한 관계자는 “김성한 수석의 거침없는 선수기용안과 행동으로 구성원들의 불만이 많았다”고 말했다. 구성원의 갈등은 결국 겉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김 감독의 리더십은 조금씩 떨어졌다.
김응룡 감독은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했다. 사실상 인생의 마지막 감독직에서 명예롭게 은퇴하길 바랐다. 화도 많이 눌렀다. 한화 외국인 투수 펠릭스 피에가 동료들을 무시하는 등 경기 중 이해할 수 없는 기행을 저질러도 꾹 참았다. 김 감독은 “예전같으면 혼쭐을 냈을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레임덕은 시작되고 있었다. 김응룡 감독의 카리스마는 허공 속의 외침이 됐다.
한화 구단과 김응룡 감독, 누가 옳고 누가 그른 상황은 아니었다. 한화와 김 감독은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는 사이였다. 강성인 김 감독이 단 2년의 시간동안 한화를 바꾸기란 무리였다. 오히려 부작용이 곳곳에서 표출됐다. 물론 김 감독 부임 이후 한화 구단의 철학이 바뀌었다는 것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한화는 김 감독 부임 이전까지 매우 ‘경제적’으로 선수단을 꾸리는 팀이었다. 하지만 한화는 김 감독을 사령탑에 앉힌 뒤 적극적인 지원을 추진했다. 대전구장 외야펜스를 늘렸고, 프리에이전트 시장에서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시즌 중반 최악의 성적이 양산됐지만, 김 감독과의 계약기간을 끝까지 채웠다. 노장의 마지막 자존심을 세워줬다. 신용과 의리라는 그룹의 기치는 지킨 셈이다.
김경윤기자 bicycle@sportsseoul.com
기사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