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재료학을 공부한 건축가 이정훈 대표. 건물값은 없고 땅값만 있는 나라, 우리 밖에 없다. 최저입찰제 하에서는 디자인 살린 건물 나오기 힘들다. 한류처럼 디자인을 키우자.

[SS포토]데스크가 만난 사람 '건축가 이정훈'
데스크가 만난 사람 ‘건축가 이정훈’.2015.04.28. 강영조 기자kanjo@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건축가 이정훈 조호건축 대표(40)를 만났다. 지난달 영국의 잡지 촬영을 다녀오는 등 바쁜 삶을 사는 그다.
그를 주목하게된 것은 국내외에서 다수의 상을 받은 이력도 이력이지만, 대학에서 철학을 배우고 프랑스에서는 재료학 석사를 따로 받는 등의 특이함때문이었다. 지난달 하순 그의 서울 양재동 회사를 찾았을 때 그는 사무실이 누추하다며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하지만 이후 한국의 건축문화에 대해 얘기할 때의 붉어짐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이제 과거에 무턱대고 지은 건축물을 재차 짓고 있는 이 즈음에 건축을 바라보는 전체적인 눈이 바뀌어져야 한다는 신념때문이었다. 건축을 제대로 잡을 천재일우의 기회라는 얘기다.

-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철학을 따로 전공했다. 또 프랑스에서 건축관련 석사를 2개나 땄는데 하나는 재료학이다.
성균관대 건축학과 95학번인데 3수를 하고 어렵게 들어갔다. 그 당시 막 융합이란 얘기가 처음 나오던 시절인데, 철학이 근본적인 학문이고 건축을 인문학적으로 해석이 가능하게 해줄 것이란 생각에 건축학을 4년 전공한 뒤 다시 철학과에 들어가 졸업하게 된 것이다. 요즘에는 복수전공이란 게 흔하지만 그 당시만해도 이런 복수전공은 흔치 않았다. 그리고 실제 프랑스에 가서 수업을 듣는데 철학이 크게 도움이 됐다. 프랑스는 철학과 건축을 함께 가르쳤는데, 철학자가 건축가 같고, 건축가가 철학자 같았다. 철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수업을 이해못했을 것이다.

재료학은 통상 건축학의 한 과목 정도로 치부되는데, 나의 경우 유리에 대해 특수하게 공부하고 싶었다. 석사과정을 밟아보니 수업의 30%가 디자인, 30% 엔지니어링, 30%가 답사로 이뤄져 굉장히 실무적이었다. 그 과정을 들으면서 재료의 물성과 본성에 대해 이해를 높이게 됐다.

헤르마주차빌딩
죽전의 헤르마주차 빌딩 전경. 제공 | 남궁선 작가

- 국내외로 상들을 많이 받았다.
2009년 국내에 돌아와 조호건축을 개업한 뒤 몇개의 상을 받았다. 가장 기분좋은 상은 미국에서 준 ‘차세대 건축 선두 세계 10대 건축가’인데, 아키텍처럴 레코드(Architectural Record)라는 권위있는 잡지가 마련한 것이었다. 4월 하순에는 영국의 월페이퍼(Wallpaper)라는 잡지에서 7월호를 위해 마련한 자리에 다녀왔다. 이 잡지는 유럽에서 디자인을 선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크다.

- 이밖에도 많은 상을 받았는데 수상 비결이 따로 있는가.
내가 스스로 더 건축설계를 잘한다고 생각지는 않고, 실제로 무수한 국내 실력자들이 있다. 하지만 비결이라면 나처럼 이름을 내밀고 도전적으로 나가는 게 처음이어서 그렇다. 우리 건축도 세계시장에 발을 내밀어야할 때가 됐다는 판단아래 자꾸 자료를 보낸다. 사실 처음에는 세계적인 잡지에 작품 포트폴리오를 보낼 때만 해도 답장이 온 곳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가 호주 잡지 아키텍처럴 레코드 아시아퍼시픽(Architectural Record)이 실어주면서 다른 잡지들도 관심을 가져줘 이렇게 흘러 왔다.

- 수상이 외국건물설계 수주로 이어진 게 있나.
아직 없다. 하나씩 모여가면 된다고 본다. 싹을 틔워보고 싶다. 수상의 좋은 점은 이렇다. 작품을 세계시장에 내놓지 않고 너무 겸손하게 있으면 “니네들이 한게 뭐 있냐”는 식으로 하면 할 말이 없다. 또한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기회가 된다는 점이다. 외국의 전문가들로부터 냉정한 비평을 받으며 나의 프로젝트를 다듬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좋다. 자꾸 자기 자신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이번에 영국에 다녀올 때 10명 정도가 주목받는 젊은 건축가로 명명됐는데 상을 받았는데, 다들 바쁠텐데 모두 참석했더라. 일본 건축가는 100일도 안된 아들을 데리고 먼 여행을 왔을 정도다. 조금이라도 자신을 더 알리려는 정성이다.

- 건축가로서 건축에 대한 관이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어렵게, 수고스럽게 건물은 지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성들여 만들어지면 보는 사람도 ‘와’한다. 파르테논 신전도 단순해보이지만 그 당시 기술로는 어마어마한 노력이 기울여진 것이다. 파리만 해도 수고스럽게 지어진 건물들이 엄청나다. 지은지 100년, 200년이 되도 관광가치가 있다.
나도 그런 건축관을 갖고 있어 항상 힘들게 지어왔다. 용인 죽전의 헤르마빌딩은 주차용 건물인데 900개의 플라스틱 패널 사이즈가 모두 다르다. 커빙하우스 역시 벽돌 만장이 사용됐는데 벽돌 하나하나가 쌓일때 1도씩 방향을 튼다. 헤르마빌딩이나 커빙하우스 모두 공사현장에서 난색을 표시해 초반부는 직접 이를 악물고 붙인 적도 있다. 도면 만으로는 이해를 못해서 시범을 보인 것이다. 이런 까닭인지 내가 지은 주택은 현장팀이 두번 정도는 바뀌는 것 같다. 하지만 커빙하우스를 지을 때의 팀이 요즘 장단이 잘맞아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도 재미를 붙여 아이디어도 내고 창의적으로 하고 있어 무척 고맙게 생각한다.

커빙하우스
커빙하우스. 제공 | 남궁선 작가

- 아직 우리나라는 건축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은 것 같다.
우리 건축은 과거에도 목수나 대장장이가 있었지만 철저히 익명으로 남아있다. 피렌체대성당은 문을 디자인한 사람까지 이름이 남아있다. 르네상스 시절부터 건축가 이름이 건축물에 쓰여졌는데, 이미 그 당시 건축 공모전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학에 건축과가 생긴 게 해방이후로 알고 있으니 아직 역사가 일천하다. 건물값은 없고 땅값만 있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그러니 금새 부수고 또 짓는다. 건물값이 의미가 없어져버린다.

또 설계 및 공사가 최저입찰제로 시행되다 보니 설계 역시 일률적으로 가장 낮게 책정된다. 건축은 서비스다. 문화적 상품이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로마를 가고, 파리를 간다. 사람들이 가우디가 한 평생 지은 건물 5개를 보기 위해 스페인을 가듯 우리도 그런 문화를 세워야 한다. 설계에 보다 많은 비용을 들여 문화적 가치를 키워야 한다.
핸드폰, 자동차 등 우리도 이제 세계시장에 내놓을만한 품목이 있지만 건물 역시 디자인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있는 상품이다. 전세계 누구든지 감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중국 관광객이 한국에 와서 볼 것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는 보도가 있는데, 건물만이라도 달라지면 분위기는 달라질 것이다.

카사 지오메트리카
카사 지오메트리카. 제공 | 남궁선 작가

- 젊고 실력있는 건축가들에겐 이런 현실이 고달플텐데 출구는.
‘젊은 건축가 포럼’이라고 해서 건축가, 평론가, 대학교수, 큐레이터, 기자 등 10명 정도 모여 건축을 얘기하는 자리가 마련된지 한 5년 됐다. 젊은 건축가가 발표를 하고 대학생도 불러 듣게 하고 우리끼리 평가하는 자리다. 대형 설계사가 철옹성처럼 자리하는 우리나라 현실에선 실력있는 젊은 사람들이 알릴 기회도 없고... 자꾸 이렇게 말하니 내가 대단한 실력자인양 얘기하는 것 같아 민망하다(웃음). 아무튼 그런 현실속에서는 대형건물을 설계한 실적(Reference)도 없으니 밖으로 나가기도 힘들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공부문도 입찰 위주라서 좋은 건축가가 등단하기 힘든 구조다. 프랑스의 퐁피두센터의 경우 당시 프랑스 사람도 아닌 이탈리아의 33세 무명의 건축가가 지었다. 프랑소와 미테랑 도서관 공모전은 30대 무명인 도미니크 페로라는 건축가가 당선돼 이후 세계적 거장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그 분이 이화여대 운동장(ECC 프로젝트)도 지었다.

타임 스태킹 하우스
타임 스태킹 하우스. 사진 | 남궁선 작가

- 결국 건축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하고, 제도적으로도 바뀌어져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그렇다. 인구는 자꾸줄고 시장확장이 없으면 자멸한다. 우리나라도 88올림픽 이후 건물에 대한 인식이 조금 바뀌고 있지만 아직 공공건물 입찰이라던지 관행이 혁신되지 않았다. 반면 개인 건물주들은 서서히 깨어나는 분들이 생긴다. 지금 수주받아 진행중인 다비치안경 건물이라던지, 루이 까또즈 건물이라던지 새롭게 받아들일만한 요소들이 많다.

한류를 보자. 엔터테인먼트라는 문화 상품, 고부가가치 산업을 일으킨 게 우리다. 설계와 디자인 역시 노동적인 승부가 아니다. 이제는 하드웨어의 시대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시대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건축가를 키우는 시스템과 해외로 나가는 시스템 두개가 완비되어야 한다.

[SS포토]데스크가 만난 사람 '건축가 이정훈'
데스크가 만난 사람 ‘건축가 이정훈’.2015.04.28. 강영조 기자kanjo@sportsseoul.com


◇건축가 이정훈은?

성균관대 건축학과와 철학과를 졸업한 뒤 국비유학생으로 프랑스 낭시 건축학교에서 건축재료학 석사, 파리 라빌레트 건축학교 건축이론 석사(최우수 졸업)를 받았다. 2009년 조호건설을 설립하기 파리와 런던 등지에서 3개의 건축회사(2004~2009년)를 다녔다. 2011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중이고, 서울대·서울시립대 대학원·성균관대 겸임교수를 거쳐 현재는 국민대 겸임교수로 활동중이다. 주요 수상 경력으로는 2010년 젊은 건축가상(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2013년 미국 전문잡지 Architectural Record의 ‘차세대 건축 선도 세계 10대 건축가’ 선정, 2014년 독일 프리츠 회거 아키텍처상 ‘스페셜 멘션’ 수상, 오스트리아 비에네르베르거 브릭 어워드 숏리스트 지명,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 수상, 경기도 건축문화상 은상 수상, 2015년 영국 전문잡지 월페이퍼 ‘아키텍츠 디렉토리 2015’ 선정.
조병모기자 brya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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