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디지털 시대다. 인간 삶과 디지털 기기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삶의 모습과 양상도 디지털화 돼 가고 있다. 디지털 시대가 인간 삶의 모습을 변화시킨 가운데 하나가 삶을 즐기는 방식의 변화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가 내세운 ‘호모루덴스’(유희를 즐기는 인간)의 모습이 획기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서울이 창간된 1985년과 30년이 지난 2015년, 그 동안 놀이 문화 가운데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분야가 게임이다. 80년대 초반 놀이 문화라면 딱지치기와 구슬치기, 장기과 바둑이 전부였다. 스포츠서울이 창간된 1985년 전후에는 컴퓨터 오락실이 청소년들을 유혹했다. 이후 게임기와 PC가 보급되면서 집 혹은 PC방에서 게임을 즐겼고, 이제는 손안의 컴퓨터인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짬짬이 힘든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 유희의 시간을 보낸다. 스포츠서울이 창간된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30년간 우리의 게임문화는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살펴본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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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게임 세대의 시작
80년대 중반 게임이라면 단연 ‘전자오락실’이 먼저 떠오른다. ‘컴퓨터’ ‘두뇌 개발’과 같은 간판을 걸고 오락실들이 동네 곳곳에서 영업을 했고 한국의 게임 세대를 만드는 기초가 됐다.
80년대 초반 일본 타이토사의 ‘인베이더’와 ‘팩맨’ 등으로 시작된 오락실용 게임은 85년에 접어들면서 ‘갤러그’와 ‘너구리’ 등이 오락실의 주요 타이틀이었다.
갤러그는 1981년 일본의 남코가 개발한 슈팅 게임으로 독특한 효과음으로 일명 ‘뿅뿅’으로 불리며 2000년대 초반 ‘스타크래프트’와 2010년대 ‘리그 오브 레전드’에 버금가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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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학창시절을 보낸 30~40대 사회인들은 누구나 오락실에 대한 추억을 갖고있다. 하루 100~200원이면 많은 용돈이었던 당시 거금 50원을 내고 한 판의 재미를 누렸다. 즐길 것이 많지 않았던 그때 50원의 거금을 주고라도 우주를 지키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주인공이 되고자 줄서 기다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86년에는 효과음이 정겨운 ‘보글보글’이 국내 선보였다. 일본의 타이토사가 개발한 게임으로 캐릭터들이 앙증맞고 귀여워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이외에 ‘제비우스’ ‘1942’ ‘올림픽’ ‘테트리스’ 등이 80년대 중후반 1세대 디지털 게이머들을 사로잡았던 타이틀들이다.
80년대 후반부터는 격투 게임들이 큰 인기를 얻었다. 가장 주목을 받았던 게임은 대전게임의 원조로 불리는 캡콤의 ‘스트리트파이터’이다. 대전게임들은 컴퓨터와의 대전이 아닌 사람 대 사람의 대전이 일반화되면서 열풍을 일으켰다. 스트리트파이터는 조금씩 업그레이드돼 조만간 ‘스트리트파이터5’ 출시를 앞두고 있으며 영화로까지 제작되는 등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편 1999년과 2000년에는 ‘DDR’과 ‘펌프잇업’ 등 댄스게임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며 오락실발 댄스바람을 일으켰다. 특히 펌프잇업은 국내 개발사 안다미로의 게임으로 한국 가요를 담아 남미와 동남아 등지에 수출되면서 한류 전도자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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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에서 가정으로 그리고 개발자로
80년대 후반 개인용 컴퓨터인 PC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직접 게임을 만들려는 국내 개발자들이 생겨났다. 국내 게임산업을 대표하는 김택진, 김정주 대표도 80년대 컴퓨터 게임을 즐기며 세계적인 게임회사를 꿈꿨다. 그 결과 지금의 엔씨소프트와 넥슨이 만들어졌다.
PC게임으로 국내 첫 상용화 게임은 87년에 출시됐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남인환씨가 국산 애플2용 최초 상용게임인 ‘신검의 전설’을 개발해 내놓은 것. 신검의 전설은 국내에서 개발된 최초 PC게임으로 평가되고 있다. 뒤를 이어 87년에는 MSX용으로 미리내소프트가 ‘그날이오면’이라는 게임을 선보였다. 92년에는 최초 국산 IBM PC게임 ‘폭스레인저’가 나왔다. 당시 완성도 높은 게임으로 평가 받으며 2만 5000장이나 팔려나갔다.
이렇듯 오락실에서 게임을 접한 1세대 게임 세대들이 중·고등학교를 넘어 대학까지 진학한 90년대에는 직접 게임을 만들고자하는 무모(?)한 도전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특히 90년대 중반에는 PC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PC 게임의 개화기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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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7월 이원술 대표가 이끄는 손노리는 PC용 게임 최초 상용화된 국산 RPG인 ‘어스토니아 스토리’를 선보였다. 어스토니아 스토리는 초판 5만장이 모두 팔려나간 것은 물론 통산 10만 장이 나갈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이후 PSP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이식돼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다음해인 95년 12월에는 소프트맥스가 RPG ‘창세기전’을 내놓았다. 인기 만화가 김진의 일러스트와 캐릭터, 비극적인 전개가 돋보인 인상 깊은 스토리, 방대한 볼륨으로 국내 게이머들에게 큰 화제가 됐다.
이외에 PC게임 시대 유통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동서게임채널을 비롯해 1세대 개발사로 꼽히는 막고야, 타프시스템, 남일소프트, 트리거소프트 등이 다양한 PC 게임들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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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게임의 태동과 성장
한국 온라인게임의 태동은 PC 보급과 함께 PC 통신이 대중화된 90년대 중반이다.
온라인게임의 시초는 텍스트로 롤플레잉게임(RPG)을 즐겼던 머드(MUD)게임이다. 국내 첫 머드게임은 ‘쥬라기 공원’과 ‘단군의 땅’이다. 특히 쥬라기 공원은 한국 온라인게임의 시초로 평가되고 있는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를 개발한 송재경(현 엑스엘게임즈 대표)이 참여한 게임으로 더욱 주목된다. 이 두 게임은 모두 84년에 서비스를 시작했고 PC 통신이 대중화되던 96년에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96년 김정주 대표가 세운 넥슨이 그래픽 기반의 머드 게임인 머그(MUG) 게임 ‘바람의 나라’를 서비스하면서 머드게임은 급격하게 인기를 잃었다. 바람의 나라는 가장 오래된 머그게임으로 평가된다. 뒤 이어 98년에는 김택진 대표가 설립한 엔씨소프트의 ‘리니지’가 서비스되기 시작했다. 리니지는 한국 온라인게임의 역사를 써내려간 게임이다. 특히 지난 2013년 리니지 서비스 15주년을 맞았다. 당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리니지는 2013년까지 총 매출 2조원을 돌파했으며 지난 분기까지 엔씨소프트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게임으로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 이후 국내에서는 메닉스(현 엠게임)의 ‘다크세이버’, 넥슨의 ‘어둠의 전설’ ‘일랜시아’, 제이씨엔터테인먼트(현 조이시티) ‘레드문’, 액토즈소프트의 ‘천년’,‘미르의 전설’ 등 다양한 MMORPG 들이 나와 시장을 풍성하게 했다.
또한 99년 서비스를 시작한 CCR의 ‘포트리스’는 캐주얼 온라인게임으로 ‘국민게임’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또한 넥슨의 ‘퀴즈퀴즈’는 간단한 퀴즈를 시간내에 푸는 형식의 게임으로 수학능력시험의 문제를 적중시키며 높은 관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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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한류를 만들다!
1998년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의 히트를 바탕으로 PC방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대표 장르인 온라인게임 개발 열풍도 불어왔다.
PC방이 우후죽순 생겼지만 스타크래프트와 ‘레인보우식스’ ‘피파’ 등 몇몇 게임을 제외하고는 PC방에서 즐길만한 게임들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온라인게임 개발을 준비하고 있던 게임사들은 고스톱이나 바둑과 같은 보드게임을 온라인화하는데 집중이 됐다. 당시 시작된 서비스가 한게임과 피망, 넷마블 등 온라인보드게임 서비스다. 이들 서비스는 대규모 이용자를 바탕으로 다양한 온라인게임을 서비스하는 모델을 만들었다.
유통경로가 만들어지면서 다양한 RPG게임들도 선보였다. 그리고 2002년을 전후해 온라인게임의 한류 바람이 세계 곳곳에서 불기 시작했다.
2001년 국내 최초 3D MMORPG ‘뮤’가 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시 네트워크 기술로는 3D MMORPG가 원활하게 서비스 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뮤는 이러한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어 안정적으로 서비스됐고 수년간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뮤는 이후 대만과 중국을 비롯해 해외 곳곳에 서비스를 하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웹젠는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미국 나스닥 상장에도 성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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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는 위메이드 엔터테인먼트의 ‘미르의 전설2’가 중국에서 한국 온라인게임의 신화를 써내려갔다. 2001년 중국내 첫 서비스를 시작해 2005년에는 동시접속자수 70만명, 2008년 누적 회원수 2억명을 기록할 정도로 중국내 대세 게임으로 자리잡았다.
한국은 물론 일본과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는 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만화풍의 아기자기한 그래픽과 3D 배경에 2D 캐릭터를 조합한 독특한 방식의 형태로 여성 게이머들에게도 어필할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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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들의 행진도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2003년 3D로 제작된 엔씨소프트의 ‘리니지2’가 시장에 나왔다. 제작비만 100억원이 넘게 투입된 한국형 블록버스터 게임이다. 리니지2는 리니지가 가지고 있는 퀘스트나 공성전 등 게임의 재미를 그대로 살리면서 전작의 인기가 그대로 유지되는 가운데 후속작도 큰 인기를 끌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프로젝트로 평가 받는다.
이후 엔씨소프트는 ‘아이온’(2008년)과 ‘블레이드&소울’(2012년) 등 대작 MMORPG를 연이어 성공시키며 MMORPG 왕국을 완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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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후반에는 대작 온라인 게임들의 러시와 함께 캐주얼 게임들도 만만치 않은 활약을 펼치며 양적 질적으로 한국 온라인게임 시장이 성숙단계에 들었다.
캐주얼 게임으로 한국 게임사에 한획을 그은 게임은 2004년 출시된 넥슨의 ‘카트라이더’다. 출시 첫해 동시접속자수 22만명을 돌파했으며 e스포츠로도 발전해 포트리스에 이은 캐주얼 ‘국민게임’이 됐다. 특히 아기자기한 캐릭터성으로 여성 이용자들은 물론 자녀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는 부모 층까지 사로잡으며 게임 이용자 층을 대폭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 게임이다.
이후 온라인 비트게임 ‘오디션’, 농구게임 ‘프리스타일’. FPS게임 ‘스페셜포스’ ‘서든어택’, 캐주얼 RPG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야구게임인 ‘마구마구’ ‘슬러거’ 등 다양한 장르의 온라인게임들이 2003~2006년 대거 출시되면서 한국 온라인게임의 전성기를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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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산 게임의 공습
한국이 온라인게임 분야에서 전세계적인 주도권을 가져가고 있었지만 외산 게임들의 공략도 거세졌다.
특히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 시리즈의 바탕으로 전세계 시장에 큰 손으로 성장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2004년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를 전세계에 선보이며 온라인게임 시장의 판도를 뒤바꿔 놓았다. 워크래프트라는 익숙한 세계관과 완성도 높은 게임성으로 단번에 세계 이용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한국에서도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와우저’(WoW 이용자)를 대거 양산했다. 이후 국내에서 서비스되는 많은 MMORPG들이 WoW의 영향을 받아 개발됐다. 게임 개발자들은 MMORPG 개발에서 WoW가 나온 이전과 이후로 나눌 정도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 WoW는 확장팩인 ‘불타는 성전’ ‘리치왕의 분노’ ‘대격변’ ‘판다리아의 안개’ ‘드레노어의 전쟁군주’ 등 대규모 업데이트팩을 통해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블리자드는 WoW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어 ‘스타크래프트2’, ‘디아블로3’ 를 개발했고 최근 최초의 무료 게임이자 모바일게임인 ‘하스스톤’을 비롯해 AOS 게임인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선보이고 있다.
블리자드가 국내에서 독보적인 시장을 확보하고 있을때 라이엇게임즈의 ‘리그 오브 레전드’(LoL)가 2012년 혜성같이 나타났다. 스타크래프트의 지적재산권 문제로 블리자드가 국내 시장에서 잠시 주춤하는 사이 AOS 장르로 한국의 PC방 문화와 결합돼 공전의 히트를 친 것.
라이엇 게임즈는 ‘LoL=e스포츠’라는 공식으로 5명이 함께 협업을 통해 승리를 이끌어 나가는 방식과 특색있는 챔피언, 한국 특유의 PC방 문화와 결합돼 빠른 시간 국내 게임 시장에 안착했다. 심지어 PC방 점유율 40%를 넘어서는 대세 게임으로 자리잡으며 148주 PC방 점유율 1위를 차지한 게임이 됐다.
그리고 매년 ‘롤드컵’으로 불리는 ‘LoL 월드챔피언십’을 통해 전세계 LoL 이용자들의 시선을 하나로 모으고 있다. 한국은 2013롤드컵에서 SK텔레콤 T1 K팀이 2014년 롤드컵에서 삼성 화이트가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최강 LoL 실력을 가진 나라가 됐다.
◇ 온라인을 넘어 모바일로국내 게임시장에서 1990년대 말 온라인게임 시대가 열린 뒤 20여년만인 2009년 11월 모바일게임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는 신호가 터졌다. KT에서 애플의 아이폰을 정식 출시하며 스마트폰 시대를 활짝 연 것이다.
닌텐도의 NDS와 소니의 PSP가 장악했던 포터블 게임시장은 물론 온라인게임 중심으로 성장해온 한국 게임사들의 엄청난 변화의 예고였다.
게임빌과 컴투스 등을 중심으로 통신사에 예속됐던 모바일게임 유통이 구글이나 애플의 앱마켓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은 일반 와이파이를 통해 게임을 내려받고 플레이도 할 수 있어 무선 통신비에 대한 부담이 덜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모바일 메시징 서비스 카카오톡에 ‘게임하기 서비스’가 2012년 8월 서비스에 들어가면서 ‘애니팡’ ‘드래곤플라이트’ 등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넷마블의 ‘차차차’와 ‘모두의 마블’ 등이 큰 성과를 냈다.
2015년 여름 대세로 자리잡은 모바일게임의 경우 모바일 디바이스에 맞는 자동사냥 기능을 갖춘 RPG 게임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그 주인공은 ‘레이븐’과 ‘뮤오리진’ ‘세븐나이츠’ 등이다.
김진욱기자 jwkim@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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