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연패의 수렁은 위험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벤치를 무겁게 누르는 중압감이다. 반드시 승리해서 연패를 끊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선수들의 몸과 마음을 경직되게 만든다. 그래서 평소에는 문제없던 선수들도 연패의 벼랑 끝에서는 예상치못한 긴장감으로 흔들린다. 위기에서 평정을 발휘하는 뚝심과 배짱. 그게 바로 베테랑이고, 강팀의 요건이다.
5연패의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넥센과의 시즌 9차전을 치른 한화 이글스. 시즌 처음으로 맞는 긴 연패 속에 선수들의 각오가 남달랐다. 과연 이글스의 전사들은 어떻게 연패를 끊고 분위기 반전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김성근 감독이 이례적으로 두 번이나 마운드를 방문하면서, 눈길을 끌었던 이 날의 경기를 다시 한번 확인해보자.
대전 |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플레이볼 사인과 함께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의 그라운드로 질주하는 이글스의 전사들.
그리고 앙다문 입술로 감독석으로 향하는 김성근 감독.
“감독이 결단을 못 한 게 많다. 벤치 미스가 많았다” 5연패의 부진을 자신의 탓으로 돌린 ‘야신’은 과연 어떤 승부수로 연패 탈출을 시도할까.
경기 초반 흔들리는 고질적인 약점의 유먼.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1,2회를 삼자범퇴로 처리하며 가볍게 출발한다.
그리고 마침내 터진 김태균의 선제 스리런 홈런포!
필요할 때 한방! 이글스의 4번타자답게 호쾌한 홈런으로 3-0 리드를 이끈다.
김태균의 홈런으로 어깨가 가벼워진 유먼도 6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최고의 피칭을 자랑한다.
하지만, 어김없이 찾아온 위기! 넥센 홍성갑이 7회 팀의 첫 득점을 안기는 적시타로 1-3. 거센 추격을 시작한다.
‘야신’ 역시 넥센 타선의 폭발력을 잘 알기에, 2점 차이의 살얼음 리드에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다.
결국 ‘야신’의 선택은 어김없이 이글스의 수호신 권혁. 2타자를 잠시 상대한 박정진에 이어 7회 이른 시점에 급히 투입된다.
그러나...연패 탈출에 대한 중압감이었을까. 권혁은 박동원을 볼넷으로 내보내며 만루 위기를 자초한다.
제 아무리 불펜의 에이스라고 해도, 연패의 벼랑 끝에서 던지는 공에는 극도의 긴장이 묻어난다.
이어 상대한 김지수. 파울과 볼이 반복되는 풀카운트 접전 끝에 8구째의 타구는 외야 플라이로 권혁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수비 백업을 위해 포수석 뒤로 향했던 권혁은 다시 마운드로 향하면서 시선이 덕아웃으로 향한다. 도대체 왜?
느닷없이 마운드로 걸음을 옮기는 김성근 감독 때문이다.
권혁 앞에 선 ‘야신’은 한손을 올리더니...
권혁의 볼을 어루만지며, 달콤한(?) 볼터치로 권혁을 진정시킨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흔들리는 권혁을 어루만지는 ‘야신’의 손길.
이후 거짓말처럼 달라진 권혁. 타석의 서건창을 상대하던 중 느닷없이 뒤로 돌아 2루 견제를 시도한다.
예상도 못한 투수 견제에 2루 주자 홍성갑은 정근우에 태그아웃되면서...
환상적인 견제로 아웃카운트를 잡으며 위기 탈출에 성공한 권혁! 절로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진땀 승부 속에 스스로 위기를 극복한 권혁은 거친 호흡을 고르며 한숨 돌린다.
그리고 승리를 목전에 둔 9회, 지친 권혁을 대신해 윤규진이 마운드에 오른다.
그러나 유한준에게 시작부터 3개의 볼을 더진 끝에 우전 안타를 허용하고, 이어진 타석의 김민성에게도 초구에 볼을 던지며 흔들리는데...
살얼음 리드에서 초조한 ‘야신’이 급기야 다시 한번 마운드를 방문한다.
‘야신’은 윤규진에 앞에 서자마자 손등으로 배를 툭툭 치더니...
권혁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손을 드는데...설마 또다시 볼터치?
아니다. 이번엔 윤규진의 가슴을 콕콕 찌르며 단호한 메세지를 전달한다.
자신감을 갖고 배짱으로 승부하라는 당부였을까. 권혁과는 또다른 ‘야신’의 일침에 마운드의 공기가 달라진다.
이후 거짓말처럼 달라진 윤규진의 공! 김민성을 삼진으로 잡는다.
벤치로 물러나 긴장 속에 마운드를 응시하던 권혁마저 환호하는 윤규진의 역투!
이어진 타석의 홍성갑마저 삼진으로 잡으며, 절치부심의 연패 탈출에 성공!
진땀 승부 속에 두 번이나 마운드를 찾으며 적극적인 승부수를 던졌던 ‘야신’도 그제서야 코칭 스태프와 악수를 나누며 한숨 돌린다.
연패 탈출의 일등공신 김태균과 하이파이브로 승리를 자축하고...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홈팬들에게 오랜만에 모자를 벗어 승리의 인사를 건넨다.
김성근 감독은 경기 후 “선발 유먼을 길게 가져갔는데, 잘 던져줬다. 그 이후 투수들도 잘 막아줬다”며 선발 유먼의 호투에 높은 평가를 내렸다. 이어 “김태균의 한 방이 컸다. 선수들 모두 5연패 속에서 긴장감을 갖고 잘해줬다”며 김태균의 ‘한방’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이날 김성근 감독은 경기 전 “5연패 기간 동안 벤치의 판단 미스가 많았다”고 자책한 반성에 따라 선발 유먼이 7회 박병호에게 장타를 허용하자 긴급히 교체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후 필승조인 박정진-권혁-윤규진을 투입하는 과정에서도 박정진이 실점을 허용하자 두 타자만 상대하고 권혁으로 급히 교체하는 등 한 박자 빠른 승부수를 던졌다.
권혁과 윤규진 역시 5연패 속의 승리에 대한 절박함으로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김성근 감독의 마운드 방문 이후 안정을 되찾으며 무실점으로 승리를 지켰다. 특히 7회 실점 위기 속에서 2루 견제를 시도해 아웃 카운트를 잡은 권혁의 과감한 시도 역시 이날 경기의 승부처로 눈길을 끌었다. 연패를 끊고 분위기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한화 이글스가 또다시 반등의 동력으로 상승할 수 있을 지 관심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