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좋은 경기를 봤다. 그동안 레바논 원정에서는 여러가지 변수로 인해 쉽지 않은 경기를 해왔다. 이번 경기에서 우리 대표팀이 골도 많이 넣으면서 해묵은 징크스를 깬 것이 기쁘다. 여기에 달라진 경기력으로 좋은 장면들을 수차례 만들어 내며 다음 행보에 대한 기대와 희망도 안겨줬다. 시종일관 매끄러운 경기운영을 보여주며 더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했다.

선수들이 볼을 다루는 모습과 패스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볼 컨트롤을 정확하게 하면서 빠르고 정확한 패스가 잘 이뤄졌다. 그동안에는 상대의 공을 빼앗아내더라도 후방으로 패스를 돌리며 소유하는데 신경쓰는 모습이 많았다. 자연히 전방으로 공격해 들어가는 빠른 침투패스나 움직임이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레바논전에서는 그 템포가 매우 빠르고 과감했다. 상대를 강하게 압박하면서 공을 빼앗아낸 후에는 공격으로 전환하는 속도가 빨랐다. 상대가 수비로 전환하는 속도도 빨랐지만 그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우리의 공격전환 속도나 패스투입이 빨랐다. 첫 골에서 석현준이 페널티킥을 얻어내는 과정이나 권창훈에서 시작된 두번째 골 장면이 그랬다.

이런 변화가 생긴 이유 가운데 권창훈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나이는 어리지만 공격 본능이 아주 강한 선수다. 굉장히 도전적으로 드리블을 해나가고 대담하게 슛을 시도하곤 했다. 축구는 결국 골을 넣기 위한 경기다. 모든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골을 넣을 수 있는 한 순간의 기회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그렇게 기회가 찾아온 순간에는 주저없이, 아낌없이 슛을 시도해야 한다. 권창훈은 그런 면에서 슛에 욕심을 부리면서 과감하게 시도했다. 패스를 잡아 돌아서서 골로 마무리하는 장면은 권창훈이 얼마나 대담하고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는 선수인지 보여줬다. 권창훈의 활약에 더해 이재성과 황의조 등이 뒤쳐지지 않는 경기력을 보여준 것은 향후 대표팀이 K리그에서 재원을 발굴하고 대표팀의 인력 풀을 넓혀가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해외선수가 무조건 낫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좋은 선수를 발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런 어린 선수들이 경기경험을 쌓으며 자신감을 키운다면 대표팀이 이후 행보를 걸어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상대방이 초반부터 거칠게 나오는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고 냉정하게 플레이를 하면서 우리의 페이스를 지킨 것도 칭찬하고 싶다. 분위기에 주눅든다거나 휩쓸릴 수 있는데 차분하게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플레이를 했다. 이런 바탕에는 큰 무대와 중요한 경기를 많이 겪어본 기성용과 이청용 등 경험있는 선수들의 역할이 컸다고 본다. 과거 대표팀이 보고 배울 수 있는 모델로서의 선배인 이영표와 박지성이 존재감을 발휘했던 것과 같다. 경험 많은 좋은 선수가 팀에 있을 경우 자극받고 보고 배우면서 동반상승하는 효과가 있다. 결국 경기력이 짧은 시간동안 이렇게 달라진 것은 자신감 덕이 아닐까 싶다. 내 플레이에 대한 자신감이 밑바탕이 돼야 창조적이고 과감한 플레이도 시도할 수 있다.

논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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