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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폭풍 같은 하루가 지났다. 계획했던 것과 달리 한 매체를 통해 은퇴 소식이 전해진 뒤 전화기에 불이 났다. 밤늦게 연락을 해 온 최희섭은 “배터리를 충전할 시간이 없을 정도”라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많은 분들께서 아쉬워 해 주셔서 또 힘이 난다”고 말했다.
은퇴를 결심한 최희섭은 코치보다 프런트로 제 2의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 지난 19일 구단 관계자들과 만났을 때에도 그는 스카우트 얘기를 꺼냈다. 최희섭은 “스카우트 얘기를 한 것도 프런트 쪽에 마음이 있다는 뜻”이라며 “자비를 들여서라도 공부를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17년 동안 프로생활을 하면서 타격으로 이름을 높였는데, 프런트를 하고 싶은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V11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선수로는 팀에 힘을 보탤 수 없는 상황이라, 현실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려면 코칭스태프와 선수, 프런트, 언론, 팬이 합심해야 한다는 게 최희섭의 생각.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프런트다. 그는 “프런트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에 따라 팀 색깔이 달라진다. 우승한 팀을 보면 ‘프런트가 잘못했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는다. 반대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거나 하위권에 머문 팀은 항상 ‘프런트와 선수들의 불화’ 얘기가 나온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최희섭은 “메이저리그는 제너럴 매니저가 사실상 전권을 쥐고 모든 권한을 행사한다. 물론 그 권한에는 엄청난 책임이 따른다. 팀 성적이 나쁘거나, GM이 설정한 방향성이 잘못되면 깨끗하게 옷을 벗는다. 책임감을 갖고 구단을 운영하기 때문에 의사결정 과정도 빠르고, 확실하다. 감독 코치 선수와 마찬가지로 GM 역시 언제 잘릴지 모르는 위기감 속에 살아간다. 재미있는 점은 메이저리그 단장들 중 상당수가 감독과 야구로 토론할 수 있을만큼 해박하다는 것이다. 선수출신도 많다. 이는 마이너리그도 크게 다르지 않다. LA 에인절스 같은 경우 단장과 감독이 논쟁을 펼치자 단장이 해고됐다. 우리나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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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이유는 KBO리그 구단 프런트는 선수들에게 끌려다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는 “나도 선수였지만,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할 때가 있다. 가령 언론 인터뷰만 해도 기분이 안좋거나, 팀이 연패 중이면 말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된다. 미국에서는 루키리그에 처음 들어가면 대언론 관계에 대한 교육부터 받는다. 팬들에게 사인을 해 줄 때에도 장애인, 어린이, 여성 등 순서가 있다. 인터뷰와 사인 등은 프로선수의 의무다. 이런 부분은 선수출신이니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프런트와 선수들 사이에 벽이 생기면, 팀이 나아가는 데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너무 많이 보고 들었기 때문에 소통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메이저리그 구단도 좋지만, 일본프로야구의 구단 운영 시스템을 접해보고 싶은 꿈도 있다. 그는 “미국은 10년 가까이 몸으로 겪어 봤다. KBO리그에서도 9시즌을 뛰면서 여러가지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일본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다. 과거에 함께 뛰던 선수들이 이제는 각 구단에 단장급 역할을 하고 있더라. 연수를 하게 된다면 일본쪽으로 눈을 돌려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꿈은 여러 갈래로 꿀 수 있다. 구단이 결단을 내려야 꿈을 이루기 위해 실천할 수 있다. 최희섭은 “구단과도 얘기를 나눴기 때문에 잘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벌써 10월 말을 향해가고 있으니, (거취 결정을)조금 서둘러야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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