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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배우근기자] 질문이 많다. 중고신인 신재영(27)은 어떻게 올해 초보 선발로 낙점 받자마자 어떻게 저렇게 잘 던질 수 있는지. 약관의 박주현(20)은 뭘 믿고 저렇게 씩씩하게 던지는지 궁금했다. 베테랑 이보근(30)은 그동안 크게 눈에 띄지 않았으나 지금은 홀드왕을 노리고 있다. 마무리 김세현(29)은 지난 수년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성공하지 못했는데, 마지막 이닝을 책임지는 리그 최강의 투수로 환골탈태했다. 일본에서 단 1승을 올리지 못하며 방출된 밴헤켄(37)은 복귀하자 마자 무패행진으로 에이스 본색을 맘껏 발산하고 있다. 많은 투수들이 마치 톱니바퀴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척척 돌아가고 있다. 도대체 이유는 무엇인가.
염경엽 감독은 2014년을 잊지 못한다. 우승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해 넥센의 방망이가 불타올랐다. 그러나 단기전 승부는 공격 보다 수비가 좌우한다. 방망이가 필요한 순간, 숨을 죽이며 넥센의 대망은 물거품이 됐다. 수비의 70%는 투수이고 나머지 30%는 야수의 수비가 차지한다. 믿음을 주는 투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우승은 꿈에 불과하다. 우주의 기운이 정말 있으면 몰라도. 그래서 매년 투수력 증강에 힘을 쏟던 염 감독은 그 해를 기점으로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투수 육성에 완전히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6시즌이 밝았다. 많은 전문가는 넥센의 주전급 대거 이탈을 근거로 하위권을 예상했다. 그러나 그 전망은 깨끗하게 빗나갔다. 타력은 다소 떨어졌을지 모르지만 고척으로 옮긴 마운드의 높이가 달라졌다. 그 결과는 순위로 나타나고 있다. 넥센은 시즌 막판에 3위를 공고히 하며 2위 NC를 추격하고 있다. 많은 야구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넥센은 왜 저래?”라며 조금은 부러움 섞인 말을 던지고 있다. 그럴만도 한게 많은 팀이 신수종 개발을 위해 전력투구 한다. 하지만 한 해에 빛을 보는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 측면에서 넥센은 도깨비 팀이 맞다. 무엇이 넥센을 화수분을 넘어 분화구처럼 좋은 선수들이 나오는 팀으로 만들었을까.
염경엽 감독은 부임 이래 1,2군을 통털어 3단계로 구분해 각자에게 동기부여를 이식했다. 기둥 선수를 곳곳에 배치하며 차세대 주전에게는 가능한 부담 없이 뛸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자발적인 야구를 강조하며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게 했다. 그 배경에는 단기가 아닌 장기적인 플랜이 가동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좋은 선수들이 기대에 걸맞게 튀어 나오며 염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육성 방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이에 탄력을 받은 넥센은 일부 사람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메뉴얼을 더 확고히 했다. 그렇게 미래를 보는 시스템이 정착됐다.
그렇다면 그게 모두 맞아떨어진게 2016년인가. 그래서 약체팀으로 평가받은 넥센이 강팀의 면모를 유지하는 것일까. 그런 측면은 분명 존재한다. 투타에서 기다렸다는 듯 주전자리를 꿰차면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선수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투타에 걸쳐 전반적으로 확인해 보고 싶지만, 심재학 타격코치가 이끌고 있는 타선에 대해선 잠시 접어두고 투수조에 관해 먼저 알아보자. 투타의 기본적인 성공 방식은 유사하고 또한 넥센의 방향타가 수비쪽에 우선 중점을 두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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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드의 높이가 달라진 넥센 투수진을 책임지고 있는 손혁 투수 코치에게 질문했다. 그리고 나름의 답을 찾았다. 손 코치는 투수조의 수장이다. 야구단은 거대한 하나의 유기체와 같고 코치 한 명으로 팀의 기본 체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손혁 코치는 투수 집단이 전체적으로 성장하는 길잡이와 같다. 그가 내놓은 해답이 정답에 가까운 이유다. 손 코치는 몇몇 선수를 예로 들어가며 넥센 마운드가 강해진 비결을 설명했다.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자신감이다. 손 코치는 마무리 투수 김세현을 예로 들었다. “김세현은 올시즌 초반 거의 직구 위주로 갔다. 계속 던지면서 맞으라고 했다. 타자가 노려도 자신이 강한걸 던져야 했다. 마무리는 타자가 직구를 노려도 직구를 던질 수 있는 배짱이 필요하다. 또한 타자별로 속구가 통하는지, 안통하는지 알아야했다. 그 과정을 통해 직구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변화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속구로 승부할 수 있는 타자, 그리고 변화구를 섞어 던져야 하는 타자를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또한 직구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면 변화구도 던지지 못한다. 세현이는 이제 확신을 가지고 던진다. 타자를 압도하는 직구에 슬라이더, 포크, 체인지업을 수준급으로 구사한다”라고 했다.
손 코치는 자신감의 유무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는 많이 다르다고 했다. “자신감이 있으면 그 공끝에 차이가 발생한다. 많은 심판에게 세현이의 공에 대해 물어보았다. 마운드에서 세현이가 자신감 있게 던질 때는 공이 무섭게 들어온다고 칭찬하더라. 그렇다면 심판 보다 앞에 있는 타자는 더 무서울 것이다. 그래서 세현이에게 ‘KBO리그에서 빠른공의 위력은 네가 최고’라고 말해주었다”라고 했다. 선수의 자신감을 키워주기 위한 노력이다. 강한 공을 뿌리기 위해서는 키킹 동작부터 시작해 공을 채는 손가락 끝까지 힘이 잘 전달되어야 한다. 중심이동과 강한 악력도 필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공에 대한 믿음이 위력을 배가 시킨다. 손 코치는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어렵지만 사실이라고 했다. 손 코치는 김세현을 대표해서 거론했지만, 투수들의 자신감을 키워주기 위해 늘 고민하고 있다.
두번째 비결로 손 코치는 “선수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준다”고 했다. 코치가 끌어가고 싶은 방향이 분명 있지만 그보다 선수들의 입장에서 심리적으로 편안하게 해주는게 우선이라는 지론이다. 이를테면 투수에게 “어떤 구종으로 갈거니”라고 물었는데, 투수가 “직구로 던지겠다”라고 하면 “그래, 직구 좋아”라고 맞장구를 쳐 주는 식이다. 신재영에겐 “무슨 말을 듣고 싶냐”고 물었더니 “코치님 기를 넣어주세요”라고 해서 그렇게 해주고 내려 온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경기중 마운드를 방문하면 투수에게 투구폼이나 구종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손 코치는 “폼이라는 건 어릴때부터 몸에 익은 것이다. 스트라이크가 안들어가고 밸런스가 무너지는 건 폼 보다 선수가 심리적으로 불안해서 그렇다. 벤치에서 투수에게 낮게 던지라고 하면 희한하게 높게 들어간다. 그럴때는 그냥 두면 된다. 스스로 생각하게 해야 한다. 높게 들어가든 낮게 들어가든지 간에, 같은 곳에만 연속해서 안들어가면 된다”라고 했다. 몰리는 상황에서 스트라이크를 가장 던지고 싶은 사람은 투수 자신이다. 그래서 손 코치는 금기어는 아니지만 “스트라이크를 던져라”고 하지 않는다. 단 “자신있는 걸 강하게 던져라. 빠르게 승부하자”라고 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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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손혁 코치가 답을 제시하는 경우는 ‘왜’와 함께 ‘어떻게’가 확실할 때만 해당한다. 이때는 인내심이 필수다. 두 외국인 투수를 예로 들었다. 손 코치는 “최근 맥그레거의 폼이 바뀌었다. 상체를 세워 던지고 있다”라며 “커터를 던지는데 몸쪽으로 빠지는게 많았다. 그러면 키킹 동작에서 상체를 세우는게 좋다. 이유를 찾았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할지를 선수에게 강요하진 않았다. 코치로서 확신이 있다고 해도 투수에게 쉽게 동작을 바꾸라고 말해선 안된다. 지금껏 자신이 해 온게 있이 때문에 투수는 미심쩍어 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 손 코치는 어떻게 했을까. 우선 구종별 투구하는 영상을 모두 보여주었다. 이전에 삼성의 밴덴헐크도 그런 경향이 있어, 그 영상까지 모조리 보여주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선수가 스스로 변화하겠다는 마음이 생길때까지. 조금더 극단적인 방법으로는 선수가 바닥으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고름을 짤 수 있을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어쨌든 맥그레거는 자신이 잘 던질때와 그렇지 못할 때의 영상을 비교한 뒤, 손 코치에게 “팔을 올려야 하나”라고 질문하며 접근했다. 선수가 다가오자 그제서야 손 코치는 그동안 정리해둔 답을 제시했다. “팔을 올리지 마라. 다칠 수 있다. 마지막 단추가 릴리스 동작이다. 첫 단추를 잘못 채웠는데, 마지막 단추를 교정하면 안된다”라고 설명했다. 상체를 세우고 동작에 들어가는게 첫 단추인데, 처음을 잘 채우면 마지막 단추는 저절로 잘 맞춰진다. 손 코치는 답을 제시하면서도 “그렇게 할지는 너의 자유다. 해 보고 네가 맞는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해라”라고 조언했다. 지도자는 가르치기 보다 도와주는 입장이라는게 손 코치의 지도 철학이다. 그래서 선수 자신이 납득할만한 길을 찾게끔 마지막까지 여지를 두는 것다.
친정으로 돌아온 밴헤켄의 경우엔 투구동작이 20승을 할 때에 비해 짧아졌다. 12동작으로 구분해서 던졌다면 11동작으로 던지는 식이었다. 이를 눈치 챈 손 코치는 불펜코치에게 자신의 판단이 맞는지 확인했고 타석에 서는 타자들의 반응도 살폈다. 모두 한 목소리로 밴헤켄의 투구동작이 짧아졌다는 답이 나왔고 그제서야 교정에 들어갔다. 밴헤켄의 투구동작이 잘 던졌을때와 비교해 미세한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이전 부상으로 인한 통증으로 자신도 모르게 동작이 바뀐 것이었다. 이후 밴헤켄은 투수조 코치와 트레이닝 파트의 도움을 받아 제 기량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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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로 손혁 코치는 훈련이 노동이 되지 않게 노력했다. 넥센 마운드의 신성으로 떠오른 박주현은 세트 포지션이 느려 도루를 꽤 허용했다.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의 동작이 무척 간결해졌는데, 이유가 있다. 손 코치는 박주현에게 100개가 아닌 딱 10개만 매일 훈련하라고 했다. 왜일까. 100개를 하는 것과 10개를 하는 집중도는 다르다. 적게 훈련 할수록 선수는 더 집중한다.
그리고 그 훈련을 코치가 뒤에서 지켜보지 않는다. 선수 혼자 하게 둔다. 다만 박주현이 자신의 동작을 동영상으로 찍어 코치에게 보내게 하는데, 좋을 때는 그냥 두고 나쁠 때만 봐준다. 코치가 선수를 붙잡고 훈련시키지 않으며 혼자 훈련하게끔 하는 건, 그래야 스스로 생각해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처음부터 혼자 해야 마운드에서 핑계를 대지 않는다. 스스로 답을 찾아 실천했는데 그럴 경우 실패한다고 해도 핑계거리가 있을 수 없다.
이상의 3가지 이유와 더불어 넥센 마운드가 강해진 또다른 이유는 없는지 질문했다. 손 코치는 “선수들이 착하고 좋다. 스카우트를 잘해주었고 좋은 재질을 가진 투수가 많다. 코치들은 옆에서 조금씩만 도와줄 뿐이다”라고 했다.
최근 몇 년간 넥센 투수진의 기록을 비교해 보면, 달라진게 있다. 볼넷 비율이 줄었다. 이는 경기당 투구수 절약으로 나타났고 야수들의 수비시간 단축으로 이어졌다. 최대한 강한걸 빨리 던지는게 조금씩 몸에 배었다. 손 코치는 투수에게 “자신이 있다면 직구만 연속해서 3개를 던져도 괜찮다”고 했다. 단 같은 코스로 던지는 것만 제외하고 말이다. 손 코치는 별로 한게 없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경기중 선수들의 투구 내용에 대해 빠트리지 않고 정리를 계속하고 있다. 그 내용 중 일부는 해당 선수들 휴대폰으로 보내 공유를 한다. 서로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상의를 계속해 나간다. 상대 타자와의 승부에서의 핵심이 되는 내용은 정리해 둔다.
그럼에도 손 코치는 “나는 옆에서 조금만 도와준다”고 강조했다.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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