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많은 스포츠 종목이 에티켓을 중요하게 여긴다. 당구도 예외는 아니다. 당구야말로 에티켓을 갖추지 않고서는 즐길 수 없는 대표적인 스포츠다. ‘당구 십훈’의 내용도 대부분 에티켓이 차지할 만큼 당구 경기에서 에티켓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2008년 수원 세계3쿠션월드컵에서 UMB 듀퐁 회장이 대회사를 하고 있다.
▶지나친 인터벌은 경기를 루즈(loose)하게 만든다
당구에서 에티켓을 강조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첫째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둘째는 집중을 요하는 경기이기 때문이며, 셋째는 예의범절을 중요시하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담배를 입에 물고 경기를 한다거나 초크 가루를 털어 내기 위해 큐를 당구대에 때리는 행동 등 상대 입장을 전혀 헤아리지 않는 여러 가지의 언행은 삼가야 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필요 이상의 ‘인터벌(interval)’이다. 이는 선수나 동호인 모두에게 해당된다. 너무 빨리 샷을 해서도 안 되지만, 지나친 인터벌은 상대선수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고 감정적으로 만들어 경기를 ‘루즈’하게 만들기도 한다.
▶인터벌의 대가 일본의 마노 선수, 일본월드컵 이후 당구 은퇴
지난 91년 서울월드컵당구대회의 스타(?) 일본의 마노 선수는 지독한 슬로 플레이어였다. 세계랭킹 1위였던 토브욘 브롬달 선수를 이기고 결승까지 올라간 마노 선수는 레이몽드 클루망 선수와 4시간이 넘는 사투를 벌인다. SBS의 라이브 중계로 시작된 결승전은 정해진 시간을 지키지 못해 결국 방송을 중단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마노 선수도 노련한 레이몽드 클루망 선수에게 덜미를 잡혀 준우승에 그친다. 지켜보던 많은 관중과 선수들은 마노의 의도적인 슬로 플레이에 혀를 내두르며 쓴소리를 쏟아냈다. 기량이 뛰어나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을지는 몰라도 이기기 위한 방법으로 인터벌을 이용한다면 그 선수의 선수생명은 짧아질 수밖에 없다. 서울월드컵에서 마노의 인터벌 플레이에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치명타를 입었던 토브욘 브롬달은 이후 동경월드컵대회 때 모든 월드멤버들에게 마노와 경기 때 죽을 각오로 인터벌을 깨자며 ‘마노 잡기’를 제안했다. 결국 28강전 1회전에서 마노 선수는 큐를 접었다. 대회 전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일본 매스컴과 당당하게 인터뷰까지 했던 마노 선수는 그 이후 경기장에서 볼 수 없었다. 큐를 꺾은 것이다.
▶한국당구 공격과 수비형의 일본당구에 빠져들어
국내 경기에서도 인터벌에 대한 시비가 종종 있었다. 1994년 서울 선수회가 주최한 서울시당구대회에서 J선수와 C선수 간에 인터벌이 문제가 되어 선배인 C선수가 후배인 J선수를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안에 대해 서울시 선수회 상벌위원회가 열렸고 선배로서의 충고냐, 아니면 위화감 조성이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인터벌에 대한 기준점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이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논란은 더 심해 질 것으로 보인다. 추후 프로화가 추진되면 슬로 플레이는 관중동원과 TV시청률 향상에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하므로 객관적인 제도가 뒤따라야 한다는 게 당구인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시대에 따라 당구를 치는 스타일도 달라지고 있다. 70년대는 당구경기에 대한 깊이를 몰랐기 때문에, 자세를 잡으면 습관적으로 한두 번의 예비동작만 한 뒤 샷을 했다. 그러나 80년대에 일본의 정상급 선수들이 한국에 드나들면서 그들의 스타일에 한국 선수들이 동화되었고, 당구경기는 많은 생각을 하면서 치는 것으로 이해를 했다.
2008년 수원 세계3쿠션월드컵 시상식 뒤 선수들과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그들의 경기스타일을 흉내 내는 선수들이 성적을 올리면서 모든 선수들이 슬로 플레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일본 선수들의 경기 스타일은 세계 당구에서도 먹혀들었다. 고바야시 선수가 세계당구대회에서 2차례 우승하고, 고모리 선수가 월드컵에서 우승하자 국내 선수들은 일본형 경기 스타일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 너나 할 것 없이 일본형 스타일에 빠져 들었다. 공격과 수비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스피디한 경기를 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80년대 말 까지 이어진다. 한국 당구는 일본의 영향권에 있었으며 따라서 일본선수들은 우리에게 ‘당구의 신’으로 받아들여졌다. 다수의 선수들이 일본으로 유학을 가는 등 일본선수들의 경기스타일이 대세였다
▶1991년 서울월드컵에서 유럽당구에 한국 선수들 감탄
그러나 1991년 서울월드컵이 서울 삼풍백화점에서 개최되면서 한국 선수들은 새로운 당구 스타일을 접하게 된다. 22개국의 선수들이 출전한 서울월드컵에서 유럽 선수들의 경기스타일은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다. 한국 선수들이 주로 접했던 지금의 중대에서 치는 것처럼 경기를 하는 게 아닌가!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클루망, 브롬달 등의 경기력은 거의 공격 일변도였으며 정말 칠 게 없을 때에만 수비형으로 선택을 했다. 지루함이 줄어들어 보는 관중들도 시원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국내 당구 팬들을 환호하게 만든 브롬달, 클루망이 오랫동안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경기력으로 활동하고 있는 국내 정상급의 선수들은 각각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면서 경기를 한다. 특히 조재호 선수는 당구대를 압도하는 스타일이다. 한번 선택하면 자신 있게 샷을 하고 빠른 발걸음은 상대 선수의 기를 꺾어 놓는다. 국내에서 확신력이 최고였던 조재호 선수는 두려울 게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경기를 한다. 특히 고인이 된 김경률 선수 역시 조재호 선수에게 덜미를 잡히는 경기가 많았다.
2008년 수원 세계3쿠션월드컵 시상식 장면.
▶의도적인 인터벌은 팬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
‘황금 곰을 쓰러뜨리는 것은 엽총이 아니라 계시원(計時員)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습관적인 슬로 플레이를 규제하기 위해서는 한 이닝 당 경기 시간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어지면서 결국 2000년대 들어서면서 40초 룰이 적용되었다. 그로 인해 지루한 경기는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다. 한국당구의 현재를 있게 만든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유명한 골프 선수인 아놀드 파머는 “내가 한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는 것은 나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나의 골프를 칭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량이 우수하다 하더라도 매너와 에티켓이 부족하고 이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인터벌 플레이를 하는 선수는 팬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당구는 신사의 경기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함께 경기를 하는 상대를 배려하는 에티켓이 기본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박태호 당구연맹 수석 부회장> news@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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