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포토] 신태용 감독 \'방심하지 마\'
지난 2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IFA U-20 월드컵’ 기니와 조별리그 A조 첫 경기에서 신태용 한국 U-20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지시하고 있다. 전주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상상을 현실로 만든다.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이 ‘2017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초반 2연승으로 16강 조기진출을 확정지으면서 신태용 U-20 감독의 지도력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2014년 9월 A매치 2연전 때 성인 국가대표팀 감독대행으로, 지난해 리우 올림픽 땐 올림픽대표팀 사령탑으로 ‘소방수’ 역할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신 감독은 이번에도 U-20 월드컵을 불과 6개월 앞두고 맡아 아시아 선수권 조별리그 탈락팀을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겨루는 강호로 올려놓았다. 연금술사 같은 그의 지도력은 ‘형님 리더십’과 강한 자신감 등에서 비롯되지만 무엇보다 기존 한국 지도자들에게서 볼 수 없는 전술 구사 능력이 최우선이라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U-20 월드컵 1~2차전에서도 포백과 스리백을 번갈아 구사하고 공격과 역습을 자유자재로 펼치며 국민들 눈을 사로잡았다. ‘지략가 신태용’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근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축구에 대한 빠른 통찰력과 응용력 그리고 리더십이 어우러져 그의 업그레이드를 이뤄내고 있다고 평가한다.

보통 감독마다 펼치는 포메이션은 1~2개에 불과하기 마련이다. 개인 능력이 떨어지는 한국 축구 현실에선 더더욱 그렇다. 신 감독이 이런 통념을 깨고 다채로운 전술을 펼쳐 각광받고 있다. 브라질 월드컵 참패 뒤 성인 국가대표팀 소방수로 나섰던 2014년 9월 5일 A매치에선 베네수엘라와의 경기에서 전방 압박을 강화한 4-1-4-1 포메이션을 들고 나와 3-1 완승으로 한국 축구에 대한 실망을 박수로 바꿨다. 사흘뒤 남미 강호 우루과이전은 충격적이었다. 기성용을 수비 중심에 세운 스리백 전술로 상대와 맞섰기 때문이다. 디에고 고딘에 헤딩골을 내줘 0-1로 패했지만 상대 공격을 무력화하는 실리 축구, 기성용의 장거리 패스가 손흥민에 전달돼 상대를 위협하는 번뜩이는 역습은 2012년 말 성남을 떠나며 웅크리고 있던 ‘감독 신태용’의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신 감독은 지난해 1월 리우 올림픽 본선 티켓을 놓고 싸운 U-23 아시아선수권 카타르전, U-20 월드컵 최다 우승팀과 격돌한 지난 23일 아르헨티나전에서도 3-4-3 포메이션을 펼쳐들고 ‘점유율은 내주되 주도권은 내주지 않는’ 축구로 연달아 웃었다. 수비형 미드필더의 위치를 내려 스리백 축으로 삼는 ‘포어 리베로’ 개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신 감독의 전술은 포백에서도 다채롭다. 한국에서 즐겨쓰는 4-2-3-1 포메이션은 물론 올림픽대표팀을 지휘할 땐 ‘다이아몬드 4-4-2’를 들고 나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대부분의 경기에서 100%는 아니어도 무난하게 소화하는 능력을 선보여 한국 축구는 전술 변화에 약하다는 고정관념을 깨트렸다.

신 감독을 브라질 월드컵 뒤 국가대표팀 감독대행, 또 울리 슈틸리케 감독 부임 뒤 수석코치로 세운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그의 날카로운 분석 능력을 칭찬했다. 이 위원장은 “신 감독이 성남을 맡을 때 방송 해설을 위해 경기 전 만나 몇 차례 대화한 적이 있었는데 내 질문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명쾌하게 답변을 하더라. 괜찮은 지도자구나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어느 팀이나 그렇지만 신 감독이 지도한 팀들도 문제는 다 갖고 있었다. 하지만 신 감독은 약점을 메우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선수들이 잘 할 수 있는 게 뭔가를 파악한 뒤 전술로 옮겨놓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설명했다.

신 감독과 리우 올림픽 때 코칭스태프로 일했던 김기동 포항 수석코치는 “다이아몬드 4-4-2 같은 경우는 2015년 프랑스와 평가전을 본 뒤 시도에 나선 것이다. 신 감독은 선수들이 빠르게 습득하도록 설명하는 능력도 좋다”고 밝혔다. 김 코치 말처럼 신 감독은 2014년 9월 우루과이전을 앞두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 경기를 보고 접목에 나서는 등 응용 능력이 뛰어나다. 비록 실현되진 못했으나 리우 올림픽 준결승에 진출했을 경우엔 포백 멤버들에게 브라질 선수들 맨투맨 마크를 고려할 만큼 파격적인 면모도 갖고 있다.

그와 절친한 이기완 대명 아이스하키단 부단장은 “신 감독은 특히 독일 분데스리가를 자주 본다. 투박한 잉글랜드나 선수들 기량이 좋은 스페인보다는 전체적으로 독일이 참고할 만하다고 판단하는 듯 하다. 유럽 축구를 부지런히 보면서 진화를 꿈꾼다”며 “여기에 한국 선수들 능력이 다른 나라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공격 축구로 붙어볼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신적인 성숙은 그의 전술을 승리로 이끄는 힘이다. 신 감독은 지난 해 1월 U-23 아시아선수권 결승 일본전에서 2-0으로 앞서고도 공격에 힘을 쏟다가 역전패한 적이 있다. 그 해 8월 리우 올림픽 8강 온두라스전에서도 숱한 슛을 날리다가 역습에 한 골을 내주고 패했다. 두 번의 ‘쓴 맛’을 본 신 감독은 이번 U-20 월드컵에서 차갑게 변신해 경기 전체를 냉철하게 이끌고 2연승을 완성했다. 축구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신태용식 축구가 언제까지 이어질 지 흥미롭게 됐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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