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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유인근 선임기자]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올 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를 장악하고 있는 ‘한국낭자군단’에 강력한 경쟁 상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세계랭킹 1위 리디아 고(뉴질랜드)도 아니고 엄청난 파워를 자랑하는 3위 아리야 주타누간(태국)도 아니다. 샷감이 떨어진 둘은 올시즌 큰 힘을 쓰지 못해 한국 낭자군단의 우승행진에 별 장애가 되지 못한다.
그런데 한국낭자들을 긴장시키는 새로운 상대가 등장했다. 바로 지난주 LPGA투어 킹스밀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미국 여자골프의 희망 렉시 톰슨이다. LPGA투어를 대표하는 장타자로 유명한 톰슨의 존재감이야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지만 무게감이 지난 해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톰슨은 킹스밀 챔피언십에서 우승할 때 최종합계 20언더파 264타로 코스레코드를 차지할 정도로 물오른 감각을 보여줬다. 나흘내내 선두를 놓치지 않았고 버디를 무려 22개나 잡아냈다. 기존의 장타력에 정교함까지 더해지면서 톰슨과 함께 챔피언 조에서 동반 라운드를 하며 역전을 노렸던 2위 전인지도 두손을 들고 말았다. 전인지는 보기없이 4타를 줄이는 좋은 경기를 펼쳤지만 톰슨이 보기없이 6타를 기록하며 여유있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기복있는 플레이에 정교함이 떨어졌던 톰슨이 이처럼 단단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지난달 ANA 인스퍼레이션에서의 ‘4벌타 악몽’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톰슨은 최종 라운드 전반까지 2위 그룹을 4타 이상으로 멀찌감치 따돌리며 독주했지만 한 시청자의 제보로 전날 3라운드에서의 오소플레이가 발각돼 순식간에 4타를 잃고 연장전으로 끌려가 유소연에게 우승컵을 헌납하고 말았다. 졸지에 우승컵을 빼앗기고 눈물을 흘리던 톰슨은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음을 추스르느라 한동안 대회에 출전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달려져서 돌아왔다. 시련을 이기고 더욱 견고해졌다.
톰슨에게서는 전처럼 실실대던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꾹 다문 입으로 핀을 주시하는 눈빛은 한달 전의 톰슨이 아니었다. 남자선수 못지 않은 힘은 여전했다. 그러나 가까운 퍼팅을 자주 놓쳐 허탈해 하던 웃음은 사라지고 고비마다 박인비의 컴퓨터 퍼팅을 연상시키듯 짧고 긴 거리를 가리지 않고 쏙쏙 홀에 떨구는 모습에서는 누구라도 두려움에 떨만했다. 톰슨은 “4벌타 악몽은 잊었다. 쉬는 동안 정말 열심히 훈련했고 그 결과가 성적으로 나타난 것”이라며 만족해했다. 다소 거쳤던 원석이 그동안 잘 다듬어져 한단계 성장한 모습이다. 올시즌 6승이나 합작한 한국낭자군단이지만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이때문에 오는 26일(한국시간)부터 나흘간 미국 미시건주 앤아버의 트래비스 포인테 컨트리클럽(파72·6734야드)에서 열리는 LPGA투어 볼빅 챔피언십(총상금 130만달러)을 앞두고 골프팬들의 시선은 온통 톰슨에게 쏠려있다. ‘디펜딩 챔피언’ 주타누간보다도 톰슨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내고 있다. 이 대회는 국내 골프공 제조업체 ㈜볼빅이 주최하며 올해로 2회째를 맞는다. 한국낭자들의 선전을 기대하고 있지만 톰슨이 만만치 않은 기세로 그 앞을 막아설 것으로 보인다.
대회에는 박인비를 제외한 한국낭자군단의 최정예 멤버가 총출동한다.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톰슨을 꺾고 우승했던 세계 2위 유소연을 비롯해 지난 주 킹스밀 챔피언십에서 톰슨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한 전인지, 이 달 초 로레나 오초아 매치플레이에서 오랜만에 우승 맛을 본 김세영, 아직 우승이 없는 신인왕 랭킹 1위 박성현 등이 도전장을 던졌다. 이들 한국낭자들과 톰슨이 벌이는 우승경쟁이 그 어느때보다 치열할 전망이다.
ink@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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