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대한스포츠당구협회는 임영렬 초대회장이 사퇴하면서 김문장 씨와 경선을 거쳐 제 2대 김영재 회장이 취임한다.


당시 대한스포츠당구협회는 준가맹과 부산아시안게임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당구장 시설업을 하던 이영재 씨와 양귀문 씨가 신원건설 유태성 씨를 대한스포츠당구협회 회장으로 추천을 한다. 당구인들의 숙원이었던 경제력을 갖춘 외부인사의 등장이었다. 신원건설은 아파트 분양공사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였다. 당구인들은 이유 없이 무조건 환영했다.


제3대 대한스포츠당구협회 유태성 회장


▶유태성 회장 영입으로 김영재 회장 사퇴


치열한 경선을 통해 한국당구의 전권을 잡은 김영재 회장은 입장이 난처해졌다. 제3대 대한스포츠당구협회 유태성 회장 당구계 인사들은 물론 김영재 회장 측근들마저 유태성 회장 영입에 적극적이다는 소문은 김영재 회장의 입지를 더 좁게 만들었다. 평소 ‘좋은 인사가 회장으로 오면 자리를 양보하겠다’며 소신을 밝힌 김영재 회장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당구인들은 재력이 있거나 권력이 있는 외부 인사를 대한스포츠당구협회 회장으로 모셔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였다. 그렇게 전국 대의원들의 동의를 거쳐 당구사상 처음으로 아파트 분양 전문 건설회사 회장이 당구의 오너가 되는 순간이었다.


▶유태성 회장 강남 노보텔에서 취임식 가져


유태성 회장은 모든 당구인들의 기대 속에 2001년 5월18일 강남 노보텔에서 성대하게 취임식을 열었다.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임원 선임장을 수여하는 행사도 치르면서 그야말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스케일을 보여 주었다. 부회장에 양귀문 전무이사, 이영재 포켓이사. 박석준 경기이사, 이흥식 등이 참여하면서 제3대 대한스포츠당구협회가 출범한다.


무수한 현안 속에 출범한 유태성 집행부는 하지만 출발부터 순조롭지 못했다. 임영렬 회장이 인정가맹을, 김영재 회장이 준가맹을 성공시켰기 때문에 제3대 유태성 회장에게는 정가맹이 추진해야 할 최대 현안이었다.


그러나 유태성 회장은 당구인들의 염원과 달리 당구업무에 관심이 없었다. 소통 창구는 이영재 전무이사 한 사람 뿐이어서 대한스포츠당구협회는 업무에 막대한 지장을 받게 된다. 임원이 회장을 만나려면 대통령 만나기 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어서 업무진행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사회도 자주 열지 않아 문제를 제기하는 대의원들과 불편한 관계가 이어졌다.


▶협회 최대위기 봉착 사고단체 일보직전까지


회장의 불신임안이 불거지기도 했지만 집행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의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대한스포츠당구협회의 행정은 마비 상태였고 대한체육회 문서 수발도 못해 사고 단체로 규정되기 직전까지 갔다. 정 가맹 추진은 꿈도 꾸지 못하고 세월만 보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유태성 회장은 대한스포츠당구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뒤 회사가 극도로 어려워지면서 협회에 신경 쓸 여력이 되지 않았다. 협회가 회사보다 우선일 수 없다는 생각은 이해가 되지만 당구계 입장에서는 불운이었다.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기념 당구인의 밤


▶혼란속의 협회 당구인들 중심으로 유지 급급


정가맹의 골든타임을 놓친 대한스포츠당구협회는 대한체육회의 신뢰 또한 잃어가고 있었다. 대한체육회는 당구를 골치 아픈 존재로 여겼고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당구인들은 대한스포츠당구협회를 지키며 정해진 사업들을 추진해 나갔다. 2001년 6월 한국당구최강전 1차전을 시작으로 2001년 10월 한국당구최강전 5차전을, 이어서 2차 시리즈도 기획해 추진한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개최와 당구회생을 위한 범 당구계 대책기구 발전협의회를 조직해 부산아시안게임에도 대비했다. 아시안게임 개최도시인 부산협회는 부산체육회 준가맹 단체로 승인을 얻어 시도연맹 사상 처음으로 준가맹 단체가 된다. 이런 당구인들의 노력에 힘입어 대한스포츠당구협회는 유지될 수 있었다.


부산아시안게임에서 김원석과 정영화 선수


▶유태성 회장 안정찾고 협회 정상화 노력


자신의 회사가 안정을 되찾으며 유태성 회장도 적극성을 보이며 협회에도 활기가 돌았다. 규모있는 전국당구대회를 준비하라며 예산 전액을 본인이 부담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아시안게임에도 참석해 한국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고 시상도 하는 등 회장으로서 역할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또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 기념 ‘당구인의 밤’ 행사도 개최 하는 등 모처럼 대한스포츠당구협회가 가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전국당구대회 전경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된 2003년 회장배 전국당구종별선수권대회 총 예산 1억 5천 만 원도 유태성 회장이 부담했다. 유 회장은 대회 축하 화환을 현금으로 대신하게 해 그 재원으로 8톤 화물차 한 대 분량의 쌀을 불우이웃돕기에 쓰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불우이웃돕기 쌀 지원이 YTN을 통해 방송이 되면서 당구 이미지 개선에 큰 효과를 거둔다. 회장배 전국당구대회는 성황리에 마무리되면서 그간의 불협화음이 사라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사업상의 이유로 유태성 회장은 활동을 할 수 없는 신분이 되면서 대한스포츠당구협회 회장으로서 역할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작가 사정으로 ‘박태호의 당구 이야기’는 연재를 마칩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바랍니다]


news@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