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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주상기자] 어떤 광경일까? 나신의 남자는 한손에 천을 손에 움켜 쥔 채 누워있다. 아름다운 여인은 한손은 남자의 팔을 자신의 가슴에 대고 있고, 또 다른 한손은 칼을 잡은 채 자신의 가슴에 향해 있다. 남자는 정신을 잃은 듯 눈을 감은 채 고개가 젖혀있다. 나신 또한 어떠한 움직임도 없이 늘어져 있다. 여인은 슬픈 눈으로 하늘로 쏘아 올리고 있다. 남자의 이름은 피라모스이고 여자의 이름은 티스베이다. 4000년 전 고대 바빌론의 세미라미스 여왕이 살던 시대의 연인이다. 그림에서 피라모스는 티스베가 잡은 칼로 자살했고, 티스베 또한 피라모스의 칼로 자신의 가슴을 찌르며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두 사람은 연인이자 이웃이었다. 건조한 기후 탓에 고대 오리엔트(지금의 아라비아 반도와 이란·이라크 지역)는 벽돌집이 많았다. 바로 이웃이었던 두 사람은 갈라진 벽돌 틈 사이로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을 꽃피웠다. 매일 매일 그랬다. 속삭이는 사랑이 그렇 듯 시린 사랑이었다. 바로 이웃이었지만 만나기가 어려웠다. 왜냐하면 집안의 반대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집안끼리 서로 경쟁관계였고 미워했다. 그렇기에 자식인 두사람은 대놓고 사랑을 나누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사랑에 불가능이 있을까? 두 사람은 꾀를 냈다. 다름 아닌 부모님 멀리 도망가기로 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을 위한 도피 방식은 똑 같은 것 같다. 사랑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두 사람은 모든 사람들이 잠든 이른 새벽에 니누스 왕(세미라미스 여왕의 남편) 무덤에서 만나기로 했다. 티스베는 누가 알아차릴까 베일을 얼굴에 가리고 니누스 무덤에 도착했다. 티스베는 무덤 옆 뽕나무 밑에서 숨죽이며 피라모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어흥’하며 암사자 한마리가 무덤가로 오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먹이를 사냥한 탓인지 입가에는 피로 물들여 있었다. 놀란 티스베는 근처의 동굴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놀라움에 베일을 떨어 뜨리고 말았다. 베일을 본 사자는 먹이인 줄 알고 베일을 입에 물고 흔들어 댔다. 하지만 먹잇감이 아님을 알고 베일을 놓고 사라졌다.
티스베는 무서움에 동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숨어있었다. 이윽고 무덤가에 모습을 나타내는 피라모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티스베가 아닌 티스베의 베일 뿐 이었다. 게다가 베일은 피로 물들여져 있었고, 주변엔 사자의 발자욱이 선명했다. 상황을 알아차린(?) 피라모스는 자신을 원망했다. ‘조금 더 일찍 도착했더라면’, ‘나 때문에 사자에게 죽다니’, 등 자책을 했다. 예기치 못한 커다란 슬픔에 ‘사랑하는 여자와 언제나 함께 하리~’하며 스스로 죽음을 맞이했다. 사자의 기척이 없음을 알고 동굴 밖으로 모습을 비추는 티스베, 무서운 사자는 없었지만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사랑하는 피라모스의 시체였다. 사랑하는 여인을 붙잡기라도 하듯 피라모스의 손에 꼭 쥐여진 피묻은 베일, 티스베 또한 상황을 알아차리고 피라모스와 함께 있기 위해 죽음을 재촉했다. 두 사람의 흘린 피는 하얀 뽕나무를 적셨고, 이후 뽕나무의 열매인 오디는 검붉은 색을 띠게 되었다.
너무나 아픈 사랑의 이야기다. 성급함이 앞섰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나 깊어 죽음마저도 하찮게 여겼던 것은 아닐까. 이 이야기는 4000년 전이나 더 된 얘기로 그 애틋함에 수많은 이야기로 전승되었다.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자리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넣는다면? 맞다. 세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조가 되는 이야기다. 시대적 배경과 인물만 다를 뿐 설정은 거의 똑 같다.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이야기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나 초서의 ‘켄터베리 이야기’에 차용되는 등 유럽전역에서 많은 이야기의 소재로 사용되었다. 세익스피어 또한 아서 브룩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인 이야기’라는 시에서 영감을 얻고 비극을 완성시키며 영원한 고전으로 인류에게 유산으로 남겼다.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이야기처럼 신화와 전설이 후대에 작품으로 남겨지는 예는 무수히 많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예가 있다. 바로 ‘춘향전’이다. 춘향전의 이야기는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기에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춘향전의 모티브는 고구려 22대 왕인 안장왕과 한씨 부인으로 알려진 ‘한주’와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 온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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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사자-그리스·로마 신화와 성경에는 ‘백수의 왕’ 사자가 이야기의 소재로 자주 나온다. ‘삼손과 데릴라’에서 삼손이 사자를 때려잡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무대인 바빌로니아에도 사자가 살았을까. 현재는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지역에만 사자가 살고 있지만 옛날에는 아프리카 전역은 물론 지금의 터키, 아라비아 반도, 이란, 인도에도 아프리카 사자의 아종으로 존재했다. ‘아시아 사자’ 또는 ‘페르시아 사자’로 불렸다. 인간들과 접촉하며 멸종됐다. 지금은 인도 서북부에 300여 마리 정도만 국제적으로 멸종위기의 종으로 보호받으며 생존하고 있다.
▶세미라미스-4000년 전 고대 바빌로니아 제국을 세운 전설상의 여왕이다. 황제였던 니누스의 총애를 받아 왕비가 됐다. 니누스가 죽은 후 여왕으로서 당시의 오리엔트 지방을 통일시키며 바빌로니아 제국을 낳았다. 아들에게 배신당한 후 비둘기가 되어 승천했다는 설화가 있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비발디와 로시니가 1731년과 1823년에 각각 동명의 이름으로 작곡한 오페라로 대중들에게도 친숙한 이름이 됐다.
▶안장왕과 한주 이야기-안장왕은 고구려의 22대왕이다. 태자시절 안장왕은 백제에게 빼앗긴 개백현(지금의 경기도 고양시)을 되찾기 위해 첩자로 위장해 개백현에 잡입했다. 한강을 끼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여서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은 서로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불사할 정도였다. 게다가 개백현은 선대에는 고구려의 영토였기 때문에 영토회복이라는 당위성 또한 컸었다. 안장왕은 백제인으로 분해 적진을 염탐하면서 그 지방의 빼어난 미인인 ‘한주’라는 여성을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다. 한주 또한 늠름하고 멋진 안장왕의 모습에 이내 마음을 주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어 안장왕은 자신의 신분을 고백하고 말았다. 하지만 태자의 신분으로 적국에서 오래 머무를 수 없었던 안장왕은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임진강을 넘었다.
한주는 사랑하는 님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별을 세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미인을 남성들이 가만 놔 둘리 없는 법. 개백현에 새로 부임해온 백제태수가 한주를 마음에 둔 것이었다. 태수의 집요한 결혼 요구에 시달리는 한주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며 한사코 태수의 요구를 거절했지만 탐욕스런 태수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안장왕도 한주를 보고 싶은 마음에 한걸음에 개백현에 달려가고 싶었지만 왕의 신분상 쉽게 그럴 수 없었다. 한주에 대한 그리움에 ‘을밀’이라는 충성스런 부하를 개백현에 보내 염탐을 시도했다. 백제태수로부터 괴롭힘을 받는다는 보고에 군사를 일으키기로 작정한다. 백제태수의 생일날, 태수는 한주에게 다시한번 청혼을 하지만 이내 거절을 당한다. 열 받은 태수가 한주를 죽이라며 명령을 내리는 순간, 숨어있던 을밀과 그 부하들이 태수를 죽이고 한주를 탈출시킨다. 이윽고 평양성에서 해후한 두 사람은 백년해로했다. 1500년 전의 러브스토리지만 그 애틋함과 지극함으로 인해 오랫동안 구전되다 조선후기 ‘춘향전’이라는 명작으로 완성됐다.
▶클로드 고테로(Claude Gautherot, 1769 ~ 1825) - 파리 태생의 프랑스화가로 고전주의 대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제자였다. 고테로도 스승의 화풍을 물려 받아 전아한 고전주의 화풍을 모범으로 삼았다. 나폴레옹의 추종자였던 스승처럼 고테로도 나폴레옹의 사상에 심취했다. 나폴레옹과 함께 원정에 참가해 그의 모습을 작품으로 많이 남겼다. rainbow@sportsseoul.com 사진출처 | 위키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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