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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유인근 선임기자] ‘그랜드슬램 4강이 보인다!’
파죽지세로 한국인 최초 메이저 대회 8강 고지에 오른 정현(58위·삼성증권 후원)이 여세를 몰아 4강 신화에 도전한다. 한 걸음 한 걸음이 한국 테니스의 역사가 되고 있는 그는 24일(한국시간) 오전 11시 올시즌 첫 그랜드슬램 대회인 호주오픈 8강전에 나선다. 운명의 상대는 또다른 이변의 주인공 테니스 샌드그렌(97위·미국)이다.
이번 대회 남자단식 8강은 정현-샌드그렌 경기 외에 로저 페더러(2위·스위스)-토마시 베르디흐(20위·체코), 라파엘 나달(1위·스페인)-마린 칠리치(6위·크로아티아), 그리고르 디미트로프(3위·불가리아)-카일 에드먼드(49위·영국)의 대결로 압축됐다. 정현과 샌드그렌은 8강에 오른 8명 가운데 세계 랭킹이 가장 낮은 선수들끼리의 맞대결이지만 ‘돌풍’과 ‘돌풍’이 만나는 빅매치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현은 이번 대회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파란을 일으키며 준준결승까지 올랐다. 자신보다 순위가 높은 강자들을 상대로 무패행진을 이어가며 64강, 32강 16강, 8강 고지를 차례로 점령했다. 1회전에서는 미샤 즈베레프(35위·독일)를 몰아붙여 기권승을 받아냈고, 2회전에서는 다닐 메드베데프(53위·러시아)를 3-0(7-6 6-1 6-1)으로 제압했다. 3회전에서는 알렉산더 즈베레프(4위·독일)를 풀세트 접전 끝에 (5-7 7-6<3> 2-6 6-3 6-0)으로 따돌리고 생애 첫 그랜드슬램 16강에 진출에 성공했다.
정현 돌풍의 하이라이트는 세계 테니스계의 ‘빅4’로 불리는 전 세계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14위·세르비아)와의 16강전이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오랫동안 세계랭킹 1위를 유지했던 빅 스타이자 2016년에는 프랑스오픈에서 우승하며 커리어 그랜드슬램까지 달성한 조코비치였다. 하지만 정현은 그런 조코비치를 초반부터 밀어붙여 3-0(7-6<7-4> 7-5 7-6<7-3>)으로 완파했다. 거함 조코비치를 무너뜨린 그는 한국선수 누구도 밟지 못했던 ‘그랜드슬램 8강 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정현과 4강 진출을 놓고 다툴 샌드그렌의 돌풍도 만만치 않다. 2011년 프로에 데뷔한 샌드그렌은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우승 경험도 없을뿐더러, 지난해 9월에야 랭킹 100위안에 진입한 무명의 선수이지만 이번 대회에서 세계 랭킹 10위 이내 선수를 두 차례나 격침시키는 이변을 일으키고 있다. 64강전에서 막시밀리안 마터러(22·94위·독일)에 3- 1로 승리하더니, 32강전에서는 스탄 바브링카(8위·스위스)를 3-0(6-2 6-1 6-4)으로 눌러 큰 화제를 모았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22일 16강전에서는 도미니크 팀(5위·오스트리아)을 3-2(6-2 4-6 7-6<7-4> 6-7<7-9> 6-3)로 꺾고 8강에 올라 정현과의 일전을 기다리고 있다.
결국 정현과 샌드그렌의 4강전은 돌풍과 돌풍의 맞대결이 됐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랭킹에서 앞선 정현이 다소 유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둘은 지난 9일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ASB클래식에서 한 차례 만나 정현이 2-1(6-3 5-7 6-3)로 승리했다. 나이는 샌드그렌이 5살 많지만 메이저 대회 경험은 정현이 앞선다. 정현은 이 대회 전에 이미 몇차례 메이저 32강에 오른 적이 있지만 샌드그렌은 메이저 대회 단식 본선에서 승리를 따낸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창’과 ‘방패’의 불꽃 튀는 대결도 예상된다. 샌드그렌은 키가 정현과 같은 188㎝이지만 매 경기 서브 에이스를 10개 이상 터뜨리며 상대를 공략하는 강서브의 소유자다. 16강전에서는 서브 에이스를 무려 20개나 기록했다. 반면 정현은 8강까지 오르면서 서브 에이스 10개를 넘긴 경기는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정현은 세계 정상급의 수비력을 자랑한다. 이미 샌드그렌을 능가하는 강서브 소유자인 메드베데프와 즈베레프를 빈틈없는 수비로 무너뜨렸다. 수비의 달인 조코비치도 더 끈질긴 정현의 수비력에 두 손을 들었다.
SPOTV 테니스 해설위원인 박용국 NH농협 단장은 “샌드그렌은 베일에 가려진 선수이지만 이번 대회 성적이 말해주듯 만만치 않은 선수”라면서도 “정현의 컨디션과 집중력은 이번 대회에서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다. 코트 커버와 백핸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경기 막판까지 체력을 유지할 경우 정현에게 승산이 있다”고 전망했다.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이진수 JSM 테니스 아카데미 원장은 “메이저 대회 8강부터는 모든 경기가 50 대 50이다. 상대가 랭킹이 낮은 선수라고 해서 긴장을 늦추면 최악의 스토리가 나올 수도 있다. 철저히 준비하고 자신의 기량을 100% 발휘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현이 샌드그렌을 제압하면 4강에서는 페더러-베르디흐 승자와 만난다. ‘황제’ 페더러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 아직까지 페더러와 상대해본 적이 없는 정현이다. 꿈의 대결을 펼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샌드그렌을 꺾어야 한다.
ink@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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