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리

[스포츠서울 조성경기자] 아프지만 의미 있는 한 걸음이 시작됐다. 연이은 ‘미투’ 폭로 속 여성영화인들이 뜻을 모은 모습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주목됐다.

12일 오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개소 기념행사가 열린 가운데, 문소리가 든든에서 마련한 영화산업 내 성폭력 근절 및 성평등 환경조성을 위한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무엇보다 문소리는 유명 여배우로서 최근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책임 있는 목소리를 직접 전함으로써 현장의 뜨거움을 더욱 고조시켰다.

먼저 문소리는 “서지현 검사의 용감한 폭로를 시작으로 이어진 미투운동을 지켜보면서 제 주변의 동료들, 선후배들을 떠올리며 많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면서 “관객과 국민이 이런 시간을 보내면서 배신감, 분노로 이어지면서 한국영화, 문화예술 전체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들 시각들로까지 굳어지면 어떡하나 걱정스럽기도 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가해자이거나 피해자이거나 방관자였거나 동조자였거나 그런 사람들이었음을 영화인 전체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몇몇의 사람들 피해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전체의 문제임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시간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신중하면서도 솔직하게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 앞서 열린 개소식에 인사말을 한 영화사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요즘 미투 운동이 폭발하고 젠더 이슈가 크게 발화하면서,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운을 뗀 뒤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던 여성영화인모임의 활동을 언급하면서 “오늘 이 자리가 지금의 이런 시기에 맞춰 온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준비하고 하다 보니 이제야 개소식 알림과 함께 사례 조사를 발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든든’은 성희롱, 성폭력 예방뿐만이 아니라 피해자 보호와 지원, 나아가서는 성희롱과 성추행을 넘어선 성 평등 환경 센터를 조성하기 위한 정책을 제안할 예정이다. 성 평등한 한국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바람을 덧붙였다.

이날 자리를 함께 한 영화감독 임순례는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다”면서 “하나는 그동안 한국 영화계 내에 저희들도 깜짝 놀랄 만큼 지속적이고 끔찍한 성폭력 환경에 노출돼서 영화계를 소리 없이 떠나갔던 동료 영화인들과 피해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다시 현장에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또, 지금 활동하고 있는 여성들이 그 피해에 노출되지 않도록 꼼꼼하게 살필 것이다. 영화계에 입문하려는 후배들이 이런 환경 속에서 영화를 포기하게 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려고 한다”고 약속했다.

이어서 “미세먼지가 많다고 해서 바깥에 안 나가고 집에서만 살 수는 없지 않나. 미세먼지가 발생한 원인을 찾아서 분석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듯이, 여성들과 관련된 이 문제를 다른 논리로 덮어버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물길이 바르고 합리적으로, 저희들이 정말 원하는 성이 평등한 사회, 그것이 결국 우리 한국 사람이 모두 꿈꾸는 민주사회로 가는 가장 바람직하고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당장 말만으로는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용기를 낸 말들인 ‘미투’가 변화의 불씨를 일으켰다. 음지에서 하나둘 터져나온 ‘미투’들, 성차별과 성폭력으로 희생되고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이들의 작지만 의미 있는 목소리들이 모여서 지금의 태풍을 일으켰다. 이제는 양지에서 주목받는 영화인들이 앞장서 노력하는 모습으로 더욱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날 든든 개소식과 토론회에 참석한 참석자들의 말과 바람처럼 문제를 덮어버리지 않고, 함께 반성하고 개선하려 노력하는 모습만으로도 영화계와 더 나아가 우리 현실은 좀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리라 기대해본다. 이날 문을 연 한국영화성평등센터이름처럼 많은 영화인들의 마음도 조금은 ‘든든’해질 것으로 보인다.

cho@sportsseoul.com

사진|…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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