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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한 암호화폐 거래소 객장에서 방문객이 암호화폐 시세를 확인하고 있다.  박지환기자 popocar@seoul.co.kr

[스포츠서울 박효실기자] “나중에 생긴 게 죄인가요?”

한쪽에선 끝없이 ‘신규 오픈’ 이벤트를 열고, 다른 한쪽에서는 소리 없이 문을 닫고 있다. 한때 350조원 규모 세계 암호화폐 시장의 ‘그라운드 제로(핵폭발 지점)’라 불렸던 한국 암호화폐거래소의 현실이다.

현재 운영 중인 국내암호화폐 거래소는 60여개, 숫자만 놓고 보면 여전히 호황으로 보인다. 최근엔 미국의 폴로닉스, 중국의 오케이코인, 후오비 등 해외 대형 암호화폐거래소가 한국진출을 선언했고, 코인제스트, 비트소닉, 코인빗, 비트레이드 등 신규 거래소가 3~4월 줄줄이 오픈한다. 하지만 신규 거래소마다 “정부 방침대로 영업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어떡하면 되냐”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무슨 상황일까.

◇감독당국은 ‘풀고’, 은행은 ‘닫은’ 신규 가상계좌 딜레마

금융당국은 지난해 12월30일부터 암호화페 거래실명제를 도입했다. 이에 맞춰 시중은행은 기존 거래자의 실명전환을 진행하고 2월부터는 신규가상계좌를 발급키로 했다. 하지만 정부가 은행 측에 ‘암호화폐거래소 계좌에 대한 강도 높은 감독’을 주문하며, 은행은 신규계좌 발급을 사실상 중단해버렸다.

26일 현재 은행에서 실명확인 계좌를 발급받은 곳은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단 4곳에 불과하고, 이 중 은행에서 신규 가상계좌를 발급받은 곳은 빗썸, 코인원(이상 농협은행), 코빗(신한은행)이다. 일 거래량 세계 1위인 업비트는 기업은행에서 두달이 넘도록 신규계좌 발급을 받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재 오픈을 준비 중인 신규거래소들은 거의 모두 당국이 문제점으로 지적했던 법인계좌 형태의 입출금계좌를 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픈이 임박한 A, B, C 거래소에 고객의 입출금계좌 운영방식을 확인한 결과 모두 시중은행과 계약을 맺지 못해 법인계좌 개설을 준비 중인 상황이었다.

A 거래소 관계자는 “법적으로 문제가 된 벌집계좌(법인계좌 아래 수많은 가장 장부를 둬 관리하는 방식)는 통제돼야 하고, 현재는 사실상 은행에서 이런 방식의 계좌를 열어주지도 않는다”면서 “다만 법인용 모계좌를 두고 여기에 고객의 입금을 분리체크해 확인하는 방식은 현행상 불법이 아니고 다양한 통신판매업자에게 허용되는 방식이다. 사용하기 불편하지만, (가상계좌가 열리지 않으면) 이 방식이 마지막 선택지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B거래소 관계자는 “만에 하나 (정부 정책으로) 법인계좌 운영이 어려워지더라도 당국의 공식적인 기준은 분명히 설정될 것으로 보고,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당국 방침과 가이드라인에 충실하겠다는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C거래소 관계자는 “일단 법인계좌 형식으로 계좌가 열린다. 투자자들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거래소나 대표자 명의의 법인계좌를 개설한 뒤 이 계좌를 통해 모든 회원이 각각 입출금을 하는 방식은 동일 계좌를 사용하는 만큼 입출금 내역이 뒤섞일 수 있고, 해킹에도 취약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법인계좌 거래소 줄줄이 열리는데, 당국은 “굳이 왜?”

현행법상 통신판매업인 암호화폐 거래소는 간단한 등록절차만 거치면 바로 개설이 가능하다. 정부의 엄포와 금융당국의 규제 속에도 계속 거래소가 신설되는 이유다. 문제는 많은 회원과 자금을 모집하는 이들 거래소에 대한 행정조치가 은행을 통한 ‘간접규제’, 해킹 등 사고에 의한 ‘사후조치’에 머물러있다는 부분이다.

당장 신규 가상계좌 개설문제만 해도 암호화폐 거래실명제가 도입됐지만, 실명제 도입 이후에도 톱4 거래소를 제외한 대부분의 거래소가 법인계좌를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도 법인계좌 형태로 열리는 거래소가 줄줄이 대기 중이지만, 당국은 원칙론만 반복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가상통화대응팀 관계자는 “암호화폐 거래소가 법인계좌를 쓰는걸 막고 있지는 않지만, 수많은 고객의 자금을 별도로 구분해서 관리하기가 물리적으로 쉽지 않다. 실명거래를 할 수 있게 유도했는데 굳이 법인계좌로 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서 “법인계좌로 운영할 경우 불투명성 등의 우려로 인해 자금세탁 방지에 관한 감독이 강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래소들은 ‘굳이’ 법인계좌를 쓰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법인계좌를 선택하는 상황이다. 시중은행도 골치 아프긴 마찬가지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규 거래소가 법인계좌를 여는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다만 내부적으로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해서 실명확인을 거치지 않은 벌집계좌 형태로 운영하는 것이 확인되면 바로 계좌를 폐쇄한다는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중소거래소들 “톱4만 거래소냐?” 반발

그렇다면 실명거래가 가능하고 신규 가상계좌도 열리는 ‘행운’은 왜 톱4 거래소에게만 주어진 것일까. 이를 놓고 중소 거래소들의 불만도 폭주하고 있다. 30여개 암호화폐거래소가 회원사로 가입한 사단법인 한국블록체인협회는 최근 12개가 넘는 거래소가 이탈하며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들 거래소는 “우리 회원사들은 정회원 자격보유, 협회제정 자율규제안 준수가 실명확인 가능한 가상계좌를 은행권으로부터 발급받는 필수조건으로 이해하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면서 “하지만 협회가 은행권에서 실명확인 가상계좌 발급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고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라는 입장이다.

한 중소 거래소 관계자는 “톱4 거래소 중에는 해킹 피해가 발생하거나 현행법 위반으로 수사를 받는 곳도 있다. 이런 곳은 가상계좌를 발급받는 상황에서 신규 거래소와 중소 거래소만 가상계좌 발급이 안 되는 건 불공평하다. 가상계좌개설이 조속히 이뤄지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gag11@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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