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손흥민(왼쪽)이 지난 2010년 12월25일 크리스마스에 춘천 공지천 인조잔디 구장에서 아버지 손웅정 씨와 몸을 풀고 있다. 스포츠서울 DB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저와 흥민이는 1만 시간의 법칙을 믿어요. 언젠가 유럽에서 빛을 보고 월드컵에서 아들이 귀중한 골을 넣고 우리가 이기면 소원을 풀지 않을까요.”

손흥민(26·토트넘)의 아버지이자 축구 스승으로 불리는 손웅정씨(54)는 6년 전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손흥민이 2010년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에서 프로로 데뷔해 만 18세3개월22일 나이에 데뷔골이자 구단 123년 역사상 최연소 골을 넣으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때, 그리고 이듬해 아시안컵을 통해 태극마크를 달았을 때 한국 축구계는 그를 두고 혜성처럼 등장했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손웅정 씨는 아들이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웃라이어란 책에 ‘1만 시간의 법칙’이 나온다. 우리는 이것을 지켰했다”며 “흥민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직접 지도했다. 친척 집에 한 번도 보낸 적이 없었다. 겨울에는 (춘천에서 훈련해 온) 공지천 인조잔디가 얼어 인근 학교 운동장에 넉가래를 들고 가 눈을 치우고 땅을 갈았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훈련을 거르지 않았다. 더운 여름에도 흥민이는 나무 그늘에 세워놓고 난 땡볕 아래서 수 백 개의 공을 던져주면서 운동시켰다. 세상엔 공짜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손흥민

손흥민은 학원 축구가 아닌 아버지에게 축구를 배웠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손웅정씨는 1985년 상무 소속으로 K리그 7경기를 치른 뒤 현대(현 울산)와 일화(현 성남)를 거쳐 K리그에서 통산 37경기에 출전했고 7골을 넣었다. 167㎝의 단신이지만 발재간이 좋았고 1987년엔 태극마크도 달았다. 그러나 불의의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28세의 이른 나이에 현역에서 물러났다.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가족을 부양할 정도로 힘겨운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유소년 축구와 인연을 맺게 됐고 손(Son)아카데미를 이끌면서 아들을 비롯해 후학을 양성했다. 기본기를 중시하는 그만의 프로그램은 축구계의 ‘야인’ 또는 ‘스라소니’로 불리던 그에 대한 평가를 단번에 뒤집었다. 그는 “흥민이와 연령별 대표를 같이한 다른 선수들을 보면 일찌감치 승부 세계에 노출돼 대부분 무릎이 고장나 있다. 학창 시절엔 무조건 기본기다. 난 흥민이가 고교생이 된 뒤에야 슛 훈련을 시켰다”고 돌이켰다.

손흥민의 장점은 모두 10대에 만들어졌다. ‘손흥민 존’으로 불리는 페널티박스 좌, 우 모서리에서 절묘하게 양발로 감아 차는 슛은 공지천에서 완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에서 시즌을 마치고 남들이 쉴 때 그는 아버지와 하루 1000개 이상의 슛을 연습했다. ‘가제트 팔이 아닌 이상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감각을 익히는 데 주력했다. 손흥민이 프로에서 경험을 쌓은 뒤엔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의 영상을 통해 문전 일대일 대응 능력 등을 깊이 있게 연구해 구슬땀을 흘린 것도 유명한 일화다. 그렇게 1만 시간의 법칙을 준수하며 살아온 이들의 궤적은 유럽에서 꽃을 피웠다. 2010~2015년 5시즌간 독일에서 통산 49골을 넣으며 ‘손세이셔널’ 열풍을 일으켰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 진출했다. 지난 시즌 아시아 유럽파 한 시즌 최다골(21골)을 비롯해 사상 처음으로 EPL 이달의 선수상을 2차례 수상을 하는 등 전성기를 열었다. 올 시즌에도 모든 대회에서 18골 10도움을 기록 중이다. 오래 전 손웅정 씨는 “월드클래스는 몸값 1000억은 돼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손흥민은 최근 국제스포츠연구센터(CIES)에서 발표한 유럽 5대리그 선수 가치 평가에서 9040만 유로(1194억 원)라는 평가를 받아 정말 ‘1000억원의 사나이’가 됐다

[SS포토]대한민국 16강 진출 실패, 손흥민의 눈물
손흥민이 지난 2014년 6월27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벨기에와 마지막 경기에서 패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상파울루(브라질)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손흥민
대표팀의 손흥민이 지난해 11월14일 울산문수경기장에서 진행된 세르비아와의 평가전에서 공을 몰고있다. 김도훈기자

유럽 빅리그 톱클래스 공격수로 발돋움한 그는 어느덧 20대 중반을 넘어섰다. 한국 나이로는 스물 일 곱. 공격수로 전성기를 누릴 나이다. 그가 이루고 싶은 꿈은 클럽팀에서 첫 우승 뿐 아니라 자신의 발로 대한민국의 월드컵 호성적을 이끄는 것이다. 4년 전은 아픔이었다. 브라질에서 첫 월드컵을 경험했지만 조별리그 3경기에서 1무2패로 탈락했다. 특히 알제리와 2차전에선 데뷔골을 넣고도 2-4로 참패해 펑펑 눈물을 흘린 손흥민이다. 이제 그의 눈빛은 오는 6월 러시아 월드컵을 향해 있다. 최악의 조 편성이라는 우려에도 손흥민은 두 번의 실패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쳐 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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