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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역사적인 ‘4·27 판문점 선언’은 체육계에서도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남북 공동성명 역사상 체육 문제가 성명서에 명시적으로 언급된 건 ‘4·27 판문점 선언’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두 정상은 남과 북은 민족적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나가기 위해 각계 각층의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을 활성화기로 다짐한 뒤 2018년 아시안게임을 비롯한 국제경기에 공동으로 참여해 민족의 슬기와 재능,단합된 모습을 전 세계에 과시하기로 약속했다.
‘4·27 판문점 선언’은 스포츠의 위대한 힘으로 탄생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음장 처럼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한의 경색국면이 북한의 2018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로 봄눈 녹듯 풀어져 바야흐로 ‘4·27 판문점 선언’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시대의 산물이다. 그동안 남한의 스포츠는 분단시대의 논리에 철저하게 지배당했다. 스포츠를 체제 우월성이라는 거대한 담론의 중심에 놓고 적대적 대결의식과 승리에 목을 맸던 게 사실이다. 국제 대회에서 북한과 맞닥뜨리면 ‘총성없는 전쟁’이 무색할 정도로 승리에 집착했다. 북한에 지면 세상을 다 잃은 듯한 분통함에 사로잡혔던 게 지난 시절 우리 스포츠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분단 시대의 낡은 패러다임을 벗어던지고 통일 시대의 걸맞는 새로운 스포츠 논리는 무엇일까. 오랜 분단이 잉태한 민족적 이질감을 극복하는 치유제,통일 시대에 부합하는 스포츠의 제일 큰 사회적 임무다. 스포츠는 공감의 능력을 갖고 있어 이질적 요소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데는 탁월한 힘을 갖고 있다.
통일 시대 스포츠의 또 다른 논리는 자율성이다. 남·북한 스포츠는 분단시대에서 체제 우월성이라는 블랙홀에 빠져 허우적댔다. 스포츠가 시민사회의 자율적 모드가 아니라 톱-다운(Top-down) 방식의 관주도형 정책으로 철저하게 운영돼 왔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고도화된 문화콘텐츠인 스포츠는 이제 자율성을 기반으로 운영돼야 하며 시민사회의 눈높이로 접근하는 게 마땅하다. 스포츠는 더 이상 국가의 이익에 복무하는 게 아니라 개인의 행복추구와 복지의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통일 시대의 새로운 스포츠 논리는 결국 분단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목표를 지향하고 관통해야 한다. 체제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한 스포츠 국가주의라는 헌 옷을 벗어던지고 개인의 행복 추구를 최우선시하는 스포츠의 내재적 가치 회복이 통일시대 스포츠 논리의 첫 걸음이다. 스포츠를 지배했던 국가를 들어내고 그 자리에 시민사회를 채워넣은 건 당연한 수순이다. 승리의 가치를 연대(連帶)의 가치로 치환하고 정서의 교류를 통한 겨레의 일체감 회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국가, 승리, 우월성 등. 이제 이러한 낡은 가치는 물에 젖은 피륙처럼 불편하게 느낄 때가 됐다. 한반도에 불고 있는 통일의 새 바람에 스포츠계도 변화의 발걸음을 재촉할 시기가 왔다. 낡은 가치가 사라진 그 자리에 시민사회, 연대, 동질성 등 봄바람에 걸맞는 새로운 가치가 굳건하게 뿌리내린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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