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야마가타현·아키타현(일본)글·사진=김산환 여행작가] 무르익은 봄에 다시 겨울 속으로 떠나다. 일본 갓산&쵸카이산 백컨트리 스키 투어
믿기어렵겠지만 일본에는 한여름인 7월까지 개장하는 스키장이 있다. 일본 혼슈 북서부 야마가타(山形)현에 있는 갓산이 그렇다. 이 산은 대부분의 스키장이 문을 닫는 4월 중순에 개장한다. 눈이 다 녹아 스키를 탈 수 없는 여름까지 영업한다. 일본에서 유일한 것은 아니다. 갓산 뿐만 아니라 해발 2000m가 넘는 산에서 오뉴월에도 실컷 스키를 탄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스키의 신세계다. 일본 100대 명산 반열에 든 갓산과 이웃한 아키타현의 쵸카이산에서 무르익은 봄에 스키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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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굴 스키어들의 신천지 갓산
야마가타현 동쪽에 자리한 갓산(月山·1984m)은 봄에 개장하는 스키장으로 이름났다. 이 스키장은 보통 4월 중순에 개장한다. 그러나 올해는 겨울에 눈이 너무 많이 내려 리프트가 고장 나는 바람에 다소 늦은 지난달 28일에야 개장했다. 갓산은 세계 최대 호설지대인 일본에서도 눈 많이 내리기로 첫 손에 꼽는 곳이다. 이처럼 갓산에 눈이 많이 내리는 것은 지형적인 영향 탓이다. 갓산은 동해와 접한 곳에 솟아 있다. 이 때문에 시베리아 기단이 확장하면서 동해에서 수증기를 머금고 동진하다가 바닷가에 높이 솟은 갓산에 부딪혀 눈을 뿌리는 것이다.
야마가타 시내를 거쳐 갓산으로 가는 길은 봄이 무르익고 있었다. 낮은 산에는 산벚꽃과 살구꽃이 흐드러졌다. 계곡에는 눈 녹은 물이 기운차게 흘러갔다. 그러나 갓산으로 드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자 풍경이 달라졌다. 서서히 ‘눈벽’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해발 1250m에 자리한 갓산 스키장이 가까워지자 눈벽의 높이는 4m 가까이 됐다. 갓산을 함께 오를 가이드 요코하마에 따르면 스키를 타는 곳에는 보통 6m 정도의 눈이 쌓여 있다고 한다. 이 눈은 기상이변이 없는 한 천천히 녹아 여름까지 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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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산 스키장에는 달랑 2인용 리프트가 하나 있다. 이 리프트는 개장을 앞두고 시험운행 중이었다. 아쉽지만 스키장 베이스부터 스키를 신고 슬로프를 따라 올라가야 했다. 베이스에서 리프트 종점(1510m)까지는 1시간쯤 걸렸다. 이곳에서 스키와 등산, 목적에 따라 코스가 나뉜다. 스키는 리프트 종점에서 왼쪽에 솟은 우바가다케로 올라간다. 등산은 곧장 직진해 갓산 정상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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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프트 종점에서 우바가다케 정상(1670m)까지는 다시 가파른 설사면을 30분쯤 더 올라가야 했다. 보름달처럼 둥근 산정을 향해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자 마침내 하늘만 가득한 정상에 닿았다. 동쪽으로는 반달처럼 둥그스름한 모양을 하고 있는 갓산 정상부가 펼쳐졌다. 갓산 정상을 향해 길을 나선 등산객들이 줄지어 하얀 설원을 가로질러 올라가고 있었다. 남쪽으로는 아사히다케 연봉이 장쾌하게 솟아 있다. 스카이라인만 보면 감히 봄이라 말할 수 없을 만큼 눈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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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바가다케는 갓산 스키장의 얼굴이다. 대부분 이 곳에서 대사면을 따라 스키를 탄 후 다시 리프트를 타고 올라온다. 특히, 허리춤에 이를 만큼 깊은 구멍을 연속으로 만들어놓고 스키를 타는 모굴코스가 대사면을 따라 끝도 없이 펼쳐진 모습으로 유명하다. 모굴스키는 울퉁불퉁한 사면을 내려오는 재미로 타는 것이라 설질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딱딱한 눈보다는 적당히 녹은 눈이 넘어졌을 때도 안전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스키장이 시즌 마지막은 슬로프를 모굴코스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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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바가다케 정상에서 산을 왼쪽으로 크게 돌아 야마가타현립자연박물관이 있는 계곡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이 코스는 백컨트리 스키 전용 코스다. 리프트를 이용하려는 스키어는 이용할 수 없다. 스키 투어를 마치는 야마가타현립자연박물관에서 스키장까지는 다시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대중교통편이 없다. 따라서 차량을 제공하는 가이드 투어에 참가해야만 갈 수 있다.
우바가다케를 빙 돌아가자 적당한 기울기의 대사면이 나왔다. 오른쪽으로 협곡처럼 깊은 계곡을 두고 사면을 따라 빙 돌아가는 느낌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신세계다. 전체적으로 완만한 경사지만 때로 급경사도 있고, 하프파이프처럼 오목하게 흘러내린 곳도 있다. 눈은 적당히 녹은 습설이라 스키를 타는 맛이 덜했다. 그래도 이 계절에 스키를 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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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을 다 내려오자 고개에 닿았다. 이곳부터는 계곡을 따라 계속 내려간다. U자 모양으로 생긴 계곡의 양지바른 곳에는 초록빛이 물씬한 관목이 군락을 이루었다. 계곡의 경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만하게 이어졌다. 리듬을 타지 않으면 속도가 붙지 않아서 오히려 힘들 정도였다. 해발 1,000m 이내로 내려와 야마가타현립자연박물관이 가까워지자 무시무시한 폭포가 도사리고 있었다. 눈 녹은 물이 눈 속으로 흐르다 싱크홀처럼 꺼지면서 만들어진 폭포다. 자칫 가이드와 동행 없이 이런 곳을 무턱대고 달리다가는 숨어 있는 폭포 속으로 떨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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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가 낮아질수록 눈은 더 많이 녹아 있었다. 야마가타현립자연박물관 근처에서는 물줄기가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이 나타나기도 했다. 6m 가까운 눈이 쌓여 있는데도 그 속에서는 봄이 움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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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한 스키 투어의 꿈을 이루게 하는 쵸카이산
갓산에서 제대로 몸을 푼 뒤 쵸카이산으로 이동했다. 맑은 날에는 두 산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이지만 여장을 푼 포레스타 쵸카이 호텔까지는 버스로 3시간 30분을 가야 했다. 쵸카이산을 한 바퀴 빙 돌아 북쪽으로 진입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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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창밖으로 보이는 쵸카이산(鳥海山·2236m)은 눈부시게 하얗다. 호텔 앞 숲에는 초록빛이 한참 차오르는데, 쵸카이산은 아직 한겨울이었다. 사실, 쵸카이산의 눈은 여름까지 간다. 장맛비가 세차게 내리던 2014년 7월 말에 쵸카이산을 찾은 적이 있다. 그때도 같은 호텔에 머물렀는데, 호텔에서 바라본 쵸카이산 정상부에는 여전히 눈이 쌓여 있었다. 그 다음날 산행을 할 때는 계곡에 남은 축구장 크기만 한 눈밭에서 한 사내가 힘겹게 스키를 타고 있었다. 한 턴 한 턴 스키를 탄 후 다시 스키를 짊어지고 올라가는 그 사내가 신기하게만 보였다. 한여름에도 스키를 타려는 열정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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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에서 쵸카이산을 오르는 야시마 등산로를 향해 가는 비좁은 도로에도 예외 없이 눈벽이 등장했다. 눈벽은 갓산보다 높고, 눈도 깨끗했다. 아마도 북사면을 따라 도로가 나 있어서 그런 것처럼 보였다. 주차장은 아침 일찍부터 만원이었다. 연휴를 맞아 많은 스키어와 등산객들이 몰려든 탓이다. 쵸카이산에서 흘러내린 끝없는 대사면에는 산을 오르는 스키어와 등산객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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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카이산은 지금처럼 눈이 많을 때는 등산로가 큰 의미가 없다. 쵸카이산 정상까지 직선거리로 치고 올라가면 그만이다. 따라서 날씨만 맑다면 등산로를 몰라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쵸카이산 정상부만 보고 곧장 가면 된다. 다만, 스키를 신고 오르는 경우 경사가 너무 가파르면 힘들다. 이때는 완만한 경사를 찾아 우회한다. 반대로 쵸카이산은 날이 흐리면 아주 위험하다. 정상에서 하단까지 끝없는 대사면의 연속이라 이정표 삼을 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방향을 잃을 확률이 높다. 이런 날씨에는 절대 혼자 나서면 안 된다. 지형을 잘 아는 가이드와 동행해야 안전하다.
주차장에서 스키를 신고 바로 산행을 시작했다. 주차장에서 100m 떨어진 곳에 하라이카와 산장이 있다. 산장을 감싸고 물줄기가 시원하게 흘러내렸다. 역시 눈 속 계곡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산장을 지나 곧장 가파른 능선을 하나 넘었다. 스키를 신고 올라가기가 만만치 않았다. 조금 쉬운 길을 찾아 왼쪽으로 크게 우회하는 스키어들이 많았다. 반면, 등산객들은 쵸카이산을 향해 곧장 나아갔다. 스키와 등산, 일장일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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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을 올라서자 쵸카이산 정상을 향해 진격(?)하는 수많은 스키어와 등산객 행렬이 보였다. 그 중 일부는 쵸카이산 정상까지 거의 다 올랐다. 가이드 후쿠시 코지에 따르면 주차장에서 정상까지는 넉넉잡고 4시간쯤 걸린다고 했다. 그는 등산로를 따라 걸어야하는 다른 계절에 비해 지금이 오히려 산을 오르기가 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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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쾌청했다. 고도가 높아 땀이 식으면 금방 서늘했지만 설사면에 반사된 강렬한 햇살과 푸른 하늘이 가슴을 탁 틔워줬다. 봄날 겨울 속으로 떠나는 소풍이란 이런 기분이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졌다. 야시마 등산로 중간에 있는 나나츠가마 대피소는 지붕만 겨우 모습을 드러냈다. 깊은 계곡에는 얼마나 많은 눈이 쌓여 있는 지 아무도 모른다. 일본스키닷컴 노진강 이사는 “일본의 산은 겨울을 지나봐야 안다. 겨울에 내리는 눈과 바람의 방향에 의해 산의 모양이 완전히 바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2014년 여름 쵸카이산을 오르면서 봤던 풍경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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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이 가까워질수록 설사면의 기울기는 점점 가팔랐다. 바람과 낮은 기온 탓에 눈의 표면이 살짝 얼어 있는 곳이 많았다. 걷는 것보다 쉬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정상이 가까워진 것은 분명했지만 오르막이 더 험해져 힘이 곱절은 들었다. 그 와중에 일찍 정상에 오른 스키어들은 나는 듯히 활강을 했다. 힘겹게 오르는 스키어 사이로 환호성을 지르며 내려가는 그들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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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4시간의 힘겨운 오름짓 끝에 정상에 올랐다. 정상부에는 세찬 바람이 불었다. 2000m가 넘는 산의 위용을 보여주겠다는 듯이 몰아치는 바람에 몸이 휘청거렸다. 정상 표지석 너머의 세상은 전혀 딴 세상이었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남쪽 야마가타현 방향으로 용암이 흘러내렸는데, 그 분화구에 다시 작은 화산이 폭발했다. 이 때문에 분화구 속에 봉우리 하나가 솟아 있는데, 마치 알 속에 알이 있는 것 같은 모양이었다. 그 분화구 속에 신사와 산장이 있다. 이곳은 겨울에는 폐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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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기다렸던 활강의 시간. 일반 스키장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야생의 눈밭을 마음껏 질주할 차례다. 쵸카이산 스키의 즐거움은 산 정상부터 주차장까지 원하는 대로 루트를 그리며 스키를 탈 수 있다는 것이다. 끝도 없는 광활한 대사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누빌 수 있다. 상쾌한 봄바람을 가르며 스키가 이끄는 대로 질주했다. 절벽처럼 아찔한 경사를 내려올 때는 마음을 졸이다가도 완만한 경사가 나타나면 대담하게 스키를 타는 재미가 상상이상이다. 이런 재미를 6월까지도 넉넉하게 즐길 수 있다니, 정말 별천지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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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갓산은 하쿠바와 더불어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모굴 스키를 탈 수 있는 곳이다. 한국의 스키어에게도 이름이 높다. 갓산 스키장의 편의시설은 초라하다. 리프트는 2인용 한 기가 전부다. 스키장에는 산장 스타일의 작은 롯지가 하나 있을 뿐이다. 따라서 너무 큰 기대를 해선 안 된다. 다만, 겨울이 가도 눈이 그립다면 찾아가보자. 쵸카이산은 스키장이 아닌 산 전체를 무대로 스키를 탄다. 리프트 같은 것은 아예 없다. 자기가 오른 만큼 내려오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드넓게 펼쳐진 대사면을 질주하는 쾌감은 여느 산과는 견줄 수 없는 즐거움이 있다. 갓산과 쵸카이산은 스키는 물론 등산도 즐길 수 있다. 일본 100명산에 든다는 것은 그만큼 뛰어난 산세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갓산은 당일산행만 가능하다. 쵸카이산은 정상에 여름에만 문을 여는 산장이 있다. 센다이공항에서 갓산까지는 2시간 30분, 쵸카이산은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갓산과 쵸카이산 스키 등반에 관한 정보는 일본스키닷컴(www.ilbonski.com)에서 얻을 수 있다.
여행작가 김산환 정리 | 이우석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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