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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모스크바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서 끝난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D조 1차전 아르헨티나-아이슬란드전 이후 아르헨티나-브라질 축구 팬이 과거 상대국의 치욕적인 스코어를 손가락으로 표시하면서 조롱,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모스크바 |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

[모스크바=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16일(한국시간) 모스크바 스파르타크 스타디움.

‘우승후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승점3 같은 승점1을 따낸 아이슬란드 축구 팬은 축제의 밤을 보냈다. 뜻밖에 무승부에 고개를 숙인 아르헨티나 팬은 처벅처벅 경기장을 하나 둘 떠나고 있었다. 한쪽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리오넬 메시 등 스타 군단 아르헨티나를 보기 위해 이날 모스크바엔 양국 팬 뿐 아니라 중국, 멕시코, 브라질 등 다른 나라 팬도 상당수 몰려들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의 ‘앙숙’인 브라질 팬이 아이슬란드에 제대로 망신당한 아르헨티나 팬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브라질 팬이 아이슬란드 국기를 두른 팬들과 어우러져 응원가를 따라불렀고, 지나가는 아르헨티나 팬을 향해 짓궂은 동작과 구호로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아르헨티나 팬들은 처음에 웃어넘겼다가 일부 팬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면서 브라질 팬과 충돌했다. 근처에서 이들의 장난스러운 신경전을 사진, 영상으로 담았던 다른 나라 팬도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자리를 떠나기도 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팬은 급기야 서로의 아픈 곳을 찌르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팬은 브라질 팬을 향해 “7-1~7-1~”을 지속해서 외쳐댔다. 브라질이 4년 전 안방에서 열린 월드컵 준결승에서 독일에 패한 치욕적인 스코어다. 그러자 브라질은 지난 2016년 11월 월드컵 남미 예선 당시 안방에서 아르헨티나를 3-0으로 꺾은 것을 강조하며 “3-0~3-0” 목소리를 높였다. 또 아이슬란드 응원가를 지속해서 따라불렀다. 주변 안전 요원과 더불어 냉정함을 찾은 양국 일부 팬이 서둘러 떼어놓으면서 일단락됐으나 하마터면 큰 감정 싸움으로 번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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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전 리오넬 메시 유니폼을 입은 여성팬이 현지 한 방송국과 인터뷰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겐 치욕적인 밤이었다. 특히 이날 경기 전부터 모스크바에 메시가 떴다는 소식에 4만5000여 구름 관중이 몰려들었다. ‘등번호 10, Messi’가 새겨진 하늘색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팬은 고개를 돌리기만 해도 찾아볼 수 있었다. 전날 라이벌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가 스페인전에서 해트트릭 원맨쇼를 했기에 이날 메시의 활약은 더욱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2년 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8강 신화 때 해낸 것처럼 아이슬란드의 얼음 성벽은 끈끈했다. 전반 19분 세르히오 아게로에게 기습적인 왼발 선제골을 얻어맞았으나 4분 뒤 알베르토 핀보가손이 동료 슛이 골키퍼 맞고 나온 공을 끝까지 쫓아 문전에서 밀어 넣었다. 이후 아르헨티나의 맹공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아르헨티나는 슛수가 상대보다 26-9로 앞섰고, 패스 숫자에서도 713-188의 큰 격차를 보였다. 그러나 아이슬란드 수비에 혀를 내둘렀다. 특히 아르헨티나 패스에서 메시에게 연결된 수치가 무려 70회에 달한다. 하지만 메시는 세 차례 유효슛이 모두 가로막혔다. 특히 1-1로 맞선 후반 18분 페널티킥(PK) 실축이 뼈아팠다. 키커로 나선 그는 골문 왼쪽을 바라보고 찼으나 하네스 할도로슨 골키퍼가 절묘하게 쳐냈다. 이날 경기 ‘맨 오브더 매치(MOM)’에 선정된 그는 경기 후 PK 키커로 주로 나서는 메시의 영상을 여러 번 찾아보고 최근 장면까지 완벽하게 분석했음을 밝혔다. 2년 전 ‘유로 동화’가 결코 한때 꿈이 아니었음을 아이슬란드가 제대로 보여준 한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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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축구 팬들이 다른 나라 팬들과 기뻐하며 기념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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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축구 팬 안젤라(오른쪽) 씨와 그의 아들 빅토르가 경기 후 국기를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아이슬란드 팬은 신명나는 모스크바의 밤을 보냈다. 강원도 원주시와 비슷한 34만 인구를 지닌 아이슬란드는 본업이 치과의사인 감독과 영화 제작자, 법학도 출신 골키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수가 모여 유로에 이어 월드컵에서도 동화같은 스토리를 쓰고 있다. 아이슬란드의 선전에 다른 나라 팬도 한데 어우려져 축하했고, 사진 촬영 요구도 끊이지 않았다. 아들과 함께 아이슬란드 유니폼, 국기를 두르고 나타난 안젤라 씨는 “정말 행복한 시간”이라며 지나가는 사람들과 일일히 포옹하고 사진도 찍었다. 특히 3000여 명의 팬이 한 목소리로 외치는 “후~!”, 이른바 바이킹 천둥 박수는 장관이었다. 취재진은 모스크바 지하철 7호선 스파르타크역을 이용해 숙소를 향했는데 플랫폼에서도 “후~!” 소리가 역내를 쩌렁하게 울렸다. 지하철 안에서도 아이슬란드 팬들은 더 아치스의 노래 ‘슈가슈가’의 멜로디를 따라 부르면서 분위기를 한껏 달아오르게 했다. 러시아인도 아이슬란드의 불꽃 투혼에 손뼉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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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축구 팬이 모스크바 7호선 지하철에서 아르헨티나전 무승부에 기뻐하며 기념촬영하고 있다.

◇아이슬란전 직후, 신경전 벌이는 아르헨-브라질 팬 ‘장난이었다가…’(https://www.youtube.com/watch?v=je6rQp5BiTs&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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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아이슬란드 팬들의 ‘슈가슈가’ 퍼포먼스(https://www.youtube.com/watch?v=2YZzCAF0VLQ&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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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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