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홍명보
스포츠서울 창간 33주년 인터뷰를 한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가 20일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포르투갈-모로코전에 앞서 스포츠서울 카메라를 향해 파이팅 포즈를 하고 있다. 모스크바 |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

[모스크바=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행정가로 변신한 지 어느덧 7개월. ‘축구인 홍명보’는 자신의 인생 궤적을 담담히 쫓아가고 있다.

환희와 좌절이 점철된 지난 12년 지도자 세월 경험을 본래 꿈이던 행정가 역량으로 녹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나름대로 지난 7개월간 현장 중심 소통을 통해 실현 가능한 정책 밑그림을 그려왔다. 한국 축구의 백년대계를 준비하는 유소년을 시작으로 프로와 대표팀의 전반적인 행정을 돌봤다. 그리고 2018 러시아 월드컵 기간엔 그라운드 밖에서 한국 축구의 얼굴 구실을 하며 외교 업무를 병행하고 있다.

20일 러시아 모스크바 시내 한 호텔 로비에서 스포츠서울 창간 33주년 기념 인터뷰에 응한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는 “개인적으로 (선수, 지도자를 포함)7번째 월드컵”이라며 “새로운 각도에서 새로운 세상을 보고 있다. 항상 내 월드컵은 그라운드에 있었는데 이렇게 밖에서 지원하고 응원하는 마음을 처음 느껴본다”고 말했다. 한국 축구 행정의 세대교체 신호탄으로 주목받는 홍 전무는 “인생의 가장 큰 가치 중 하나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며 “지금의 내 일을 감사하게 여기면서 소중하게 풀어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행정가로 월드컵에 참가한 것과 더불어 현장을 떠난 지난 7개월의 삶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했다. 그러면서 ‘마부정제(馬不停蹄)’의 마음으로 꿈과 희망이 있고, 국민의 신뢰를 받는 협회로 거듭나는데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창간특집 홍명보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가 각 시도협회 회장단을 이끌고 20일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포르투갈-모로코전을 찾아 기념촬영하고 있다. 모스크바 |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
- 월드컵 기간 모스크바에 체류하는데 어떻게 지내고 있나.

우리나라 시·도축구협회 회장단과 경기 관전 뿐 아니라 축구 외적으로 월드컵 개최지 인프라 등을 보며 여러 주제로 대화하고 있다. 또 축구 외교에도 노력하고 있다. 축구협회 전무 자격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총회에 참석했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여러 관계자도 만났다. 정몽규 회장께서 AFC 부회장직을 맡고 있어 외교에 더 신경 쓰는데 확실히 국제 축구 흐름을 익히는데 도움이 된다.

- 스웨덴전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사실 마음이 굉장히 불편하다. 오랜 기간 선수로 월드컵을 뛰었고 감독으로 경험했기에 내 눈에 보이는 게 있더라. 팀의 감독, 선수 마음이 어떨지 이해한다. 그날 선수들은 ‘정말 애를 쓰는 데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구나’라고 느꼈을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조금 더 자신 있게 플레이를 하지 못한 것이다.

- 신태용 감독이나 선수들이 받는 비판이 지나치다는 얘기가 있다. 물론 선수들이 너무 여론 의식한다는 얘기도 있고.

양쪽 모두 입장이 있다. 경기 결과에 대한 비판은 대표팀 숙명이다. 다만 비판은 건설적이어야 한다. 일부에선 선수와 팀을 갈라놓는 목소리도 있다. 앞으로 조별리그 경기가 남았는데 그런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특정 선수에 대한 인신공격도 마찬가지다. 그 선수도 가족이 있는데….

- 그라운드 밖에서 본 첫 한국의 월드컵 경기, 인상 깊게 본 게 있다면.

관중 문화다. 알다시피 스웨덴 관중이 더 많았는데 유럽은 정당한 행위를 하지 않는 선수에게 야유를 보내는 문화가 있다. 스웨덴 팬이 우리 선수가 어떠한 행위를 하면 엄청난 야유를 보냈다. 반면 우리 관중들은 스웨덴 선수가 1-0으로 앞선 뒤 그라운드에 별다른 이유 없이 누워있는데도 비교적 큰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사실 이런 부분이 선수에게 미치는 심리적인 영향이 적지 않다.

홍명보
홍명보 전무이사가 20일 러시아 시내 한 호텔에서 스포츠서울 창간 33주년 인터뷰를 가진 뒤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하고 있다. 모스크바 |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

- 협회 행정 얘기를 해보자. 유·청소년 선수 성장에 실질적 도움이 될 방안을 마련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6월 전국 고교축구대회 5개 대회 동시 개최가 대표적이다.

크게 두 가지다.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과 (입상 성적이 중요한)대학 입시에 도움을 주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지금은 학기 중에 대회를 열지 못한다.(2009년부터 학기 중 주말리그가 운영돼 고교대회는 방학 중에만 열렸다. 고교팀은 주말리그, 여름·겨울방학 각각 1개 대회만 출전) 대회 수가 적다보니 입상 성적이 중요한 대학 입시에 선수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디. 경기에 나서는 선수도 (대회가 적어) 성적에 대한 부담으로 경기력이 발전하지 않는다. 너무 덥거나 춥지 않은 기간에 학기 중 대회를 준비했는데 현장 지도자와 학부모 모두 만족하는 편이다.

- 보람을 느끼지만 아쉬운 마음도 들 것 같다. 운동 선수 대학 입시 제도가 현실적으로 비판받는 것도 사실인데.

대학 입시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사실 어려운 점은 많다. 대학에서 대회 결과로만 선수를 선발하지 않으면 주말리그에 집중하면서 질 높게 잘 하면 된다. 대학에서는 학기 중 대회는 못하게 하면서도 (입시에서는) 대회 결과, 출전 시간 등을 요구하는데 사실 이치에 맞진 않는다. 전무로 부임한 뒤 먼저 한 일이 초·중·고 지도자를 만나서 현장 얘기를 듣는 것이었다. 제도는 단번에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협회가 현장과 소통하면서 옳은 답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본다.

- 대학축구도 U리그도 2년제와 4년제가 분리되는 것인가.

앞으로 대학 뿐 아니라 유소년도 마찬가지의 형태로 가야한다. 지금 초, 중학교 보라. 15-0, 10-0 스코어 자주 볼 수 있다. 이기는 팀의 경기력에는 도움이 안되고 지는 팀엔 동기부여가 떨어진다. 축구 인구가 점점 감소하는 추세인데 좋은 선수를 발굴하려면 이러한 제도 개선은 필수다.

- 올해를 유소년 축구 8인제 도입 준비기로 삼고 있다.

좋은 정책이라는 건 현장 지도자도 느끼고 있다. 축구 선진국은 시행하고 있다. 한국은 늦은 편이다. 8인제는 좋은 룰이 동반돼야 한다. 예를 들어 골키퍼가 킥을 못하게 하거나 지도자가 경기 중 코칭할 수 없도록 하는 부분이다. 어려서부터 모든 선수가 빌드업(공격작업) 개념을 익히게 하는 것이고 선수들이 지도자의 개입 없이 스스로 경기 중 상황을 창의적으로 극복하게 하는 것이다. 한국만의 8인제 축구 길을 찾아야 한다.

- 2011년에 8인제를 도입한 일본도 처음엔 반대가 심했으나 패스 축구에 도움된다는 생각으로 도입했다.

그래서 우리에게 더 필요하다. 우리는 체력이나 피지컬이 강하지만 세밀한 플레이가 단점이다. 난 한국과 일본 축구를 모두 경험했지만 두 나라의 장점을 모두 갖춰야 좋은 축구를 할 수 있다. 국제 무대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술 없이 절대 안 된다. 우리 문화는 어렸을 때 기술이 뛰어난 선수여도 중·고교를 거치면서 체격이 작아서, 체력이 약해서 등의 이유로 중도에 아웃된다. 개인적으로 피지컬이 좋은 선수, 기술이 좋은 선수를 이분화해서라도 동등하게 성장할 시스템을 만들어야 우리 축구가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

- 현장과 스킨십하다보니 체력 관리를 더 한다고 들었다. 매주 청계산을 오르는 것으로 체력 유지를 한다고.

사무실에 주로 있으니까 체력이 예전만 못 하다. 매주 집 근처 청계산을 다닌다. 산을 좋아한다. 과거 에베레스트도 다녀왔다. 산에 가서 나무도 보고 좋은 공기 마시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 행정가를 하면서 ‘이건 내가 꼭 하고 나가야겠다’는 사명감을 느끼게 된 목표가 있나.

협회가 다시 팬들에게 신뢰받는 조직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인 것보다 속한 조직이 어떻게 비춰지느냐를 중시해온 편이다. 최대한 노력하고 싶다.

- 감독으로 선수 대하는 것과 전무로 직원 대하는 게 많이 다를 것 같다.

아직도 어색하다(웃음). 축구 팀 감독은 매일 선수들과 얘기할 수 있고, 미래를 논할 수 있다. 협회는 각 부서가 있고, 담당 업무가 있으니까. 그래도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감독 때처럼)적극적으로 소통하려고 애쓴다. 직원들이 열심히 하는데 밖에서 볼 때 그렇게 인식되지 못하는 게 있었다. 인식이 바뀔 수 있게 나부터 앞장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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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8월 영국 카디프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영국의 2012 런던올림픽 8강에서 승부차기 5-4로 극적인 승리 후 환호하고 있는 당시 올림픽 축구대표팀 홍명보 감독. 스포츠서울DB

- 지도자 복귀 가능성은 아예 없나.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순 없다. 다만 지금은 맡은 일에 대해서 배우고 싶다. 내 경험을 녹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앞으로 지도자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이 일에 흥미를 느끼는 건 맞다.

- 주변에서 감독으로 명예회복을 다시 해야하지 않겠느냐는 말도

하지 않나.

그런 말씀하시는 분 많고, 일부 구단에서 제안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한 번 실패했기에 회복해야 한다”는 식의 조언을 해주는 분이 계신데 난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내가 얻은 명예 모두 축구에서 얻은 것이다. 축구는 잘 할 수도 못할 수도 있다. 실패하면 실패한대로 자양분 삼아 발전하면 된다.

- 만약 지도자 복귀를 하게 된다면 조건이 있나.

내가 (어떤 제안에)도전 정신이 있느냐 없느냐다. 지도자는 도전 의식이 중요하다. 그냥 일하려고 감독하는 건 아니다. 과연 현장에 복귀해서 자신감을 품고 할 수 있을지가 중요할 것 같다.

- 끝으로 언론,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사실 월드컵이라는 게 밖에서 보는 것보다 더 어려운 무대다. 우리 축구가 K리그 관중도 적고 예전보다 관심이 적은 편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월드컵에 대한 기대가 크다 보니 선수들의 부담이 큰 게 사실이다. 내가 느끼는 만큼은 팬들이 못 느낄 수 있겠지만 선수들이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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