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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인천) | 글·사진=스포츠서울 이우석 여행전문기자] 칠말팔초(七末八初). 대한민국 휴가의 골드시즌을 뜻하는 신판 사자성어다. 이는 틀림없이 제헌절부터 광복절까지 확대 적용되기 마련이다. 휴가철 이동차량들의 벽이 영동으로, 경춘으로, 경부로, 서해안(고속도로)으로 켜켜이 둘렀다. 새벽부터 밤까지 아무리 머릴 굴려봐도 꽉꽉 막힌 사면초가다. 아, 지금 서울에선 정말 갈 곳이 없단 말인가.
아니다. 무엇이든 찾아보면 솟아날 구멍은 있다. 모두들 동으로 남으로 떠날 때, 수도권 북서부엔 숨겨진 여행지가 있었다. 바로 강화도다. 길은 짧은데다 상대적으로 덜 막히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아무리 막혀도 두시간이면 닿으니 아침 먹고 고민하다 출발하면 오후에는 이미 강화의 바다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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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4번째로 큰 섬(제주도, 거제도, 진도에 이어)이면서 휴전선을 이마에 걸고 있는 인접한 강화도는 행정구역상 강화군으로 인천광역시에 속한다. 드넓은 갯벌과 부속섬, 솔숲과 기세 좋은 산을 품고 있는 강화군은 남한에선 보기드문 고려의 유적지로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뽐내고 있다. ‘2018 올해의 관광도시’인 강화를 칠말팔초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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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이지 말고 고고씽~
출발한지 불과 50분 만에 강화대교 앞에 섰다.(기자는 집이 고양시 일산 탄현이다) 출퇴근 시간보다 빠르게 여행이 시작됐다. 서울과는 다른, 일산과도 또다른 그런 곳에 섰다. 갯벌을 마당처럼 놓아둔 바다도 있고 삐죽삐죽 솟은 산도 근사하다. 다리를 건너는 순간 나는 여름 휴가철 한복판에 섬여행을 떠난 사람이 된다. 썩 효율적이고 멋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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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무척 더웠다. 최근 모든 나날들이 그랬지만 이날은 특히 말도 안되게 더운 날이었다. 고려궁지로 향했다. 남한에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려 왕실의 흔적을 유추할 수 있는 곳이다.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맞서 항전했던 40여년의 세월이 궁궐터에 스며있다. (사실은 터만 남았다) 개경을 그대로 본떠 지었다고 했지만 사라지고 없다. 조선 동헌 건물과 외규장각이 덩그러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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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이 들어앉은 언덕에 올라보니 멀리 산그림자부터 읍성까지 지형지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햇볕이 스타워즈 제국함대의 레이저포처럼 내려와 피부에 꽂힌다. 아마도 고려 왕실은 강화도가 너무 더운 바람에 항복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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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로 향했다. 좀 시원할 것 같아서였다. 생각대로였다. 역시 숲이 주는 청량함은 기분만은 아니다. 진녹색 산음 속에서 한여름 고찰을 둘러봤다. 고구려 소수림왕 때 창건했다는 천년고찰의 위엄은 사금파리같은 햇살도 막아내는 듯 했다. 전등사는 수많은 문화재와 보물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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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편엔 아찔한 절벽 아래 정족산성(삼랑성)이 자릴 잡았다.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산성이다. 길이가 2300m에 달하는 산성은 천혜의 요새답게 수많은 전란을 겪었는데 특히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군대와 격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양헌수 장군이 이끈 전과로 프랑스군이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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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에는 신도와 관광객을 위한 카페가 있다. ‘자비’와도 같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붙은 겨드랑이를 서로 떼어주었다. 이곳에서 차와 과자를 먹고 마시며 땀을 식혔다. 여행의 제 1쿼터는 전등사에서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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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가장 가까운 섬·바다 여행
외포항을 찾았다. 바다를 느끼고 싶어서였다. 예상은 적중했다. 새우젓 비린내가 코를 어루만진다. 강화도 새우젓이 좋다. 육젓(음력 유월에 잡은 새우로 담근 젓갈)이 그득한 외포항 시장에는 피서철 먹거리를 사러온 관광객들로 득실하다. 병어를 샀다. 맛도 좋고 무엇보다 착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빛나는 몸에다 눈은 땡글하고 입은 새초롬하다. 차마 병어의 착한 얼굴을 바라보며 살을 입에 넣을 수 없어 회를 떠달랬다. 회 뜨는 동안 시장 밖에 나가 유명한 ‘새우튀김’을 사먹었다. 겉은 바삭하고 살은 탱탱하다. 입을 최대한 크게 벌려 단번에 베어문 다음 우물우물 씹는 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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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어회를 들고 동막해변을 갔다. 너른 갯벌 해변을 따라 삐뚤빼뚤 곰솔 숲과 낭만적인 펜션들이 평행을 이루며 늘어섰다. 강화도에서 가장 유명한 해수욕장으로 해안도로를 달리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거개 한번쯤 멈춰세우는 힘을 발휘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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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이미 빠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갯벌로 나가 부드러운 개흙을 발가락 새로 느끼고 있다. 어두워지자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병어회를 안주삼아 맥주를 마셨다. 술이 얼큰히 오르자 에어컨을 끄고 창을 여는 과감한 시도도 했다.(다시 닫았다) 여름밤의 커튼이 내려오고 규칙적인 파도 소리와 함께 잠을 기다렸다. 기대 이상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잠들 수 있었다. 역시 강화는 섬이었다. 엄두조차 나지 않던 칠말팔초의 짧은 여행은 빡빡한 포만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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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박물관, 강화도
강화도는 대한민국 역사서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지역이다. 역사책을 넘기며 강화가 등장하는 때마다 지도에 핀을 찔러놓자면 고슴도치가 될 지경이다. 우선 청동기 시대에 만든 남한 최대 규모의 ‘그 고인돌’이 강화도(부근리)에 있다. 북한에서 고인돌은 황해도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데 강화도는 황해도와 매우 가까운 까닭이다.
고려의 유적이 남한에선 유일하게 밀집되어 있는 곳도 바로 강화군이다. 무려 39년 간 고려의 도읍이었기 때문이다. 고려 고종(대한제국 고종황제가 아니다) 19년(1232년) 몽골군이 침입하자 고려 왕실은 전쟁을 결심하고 몽골군의 약점인 수전(水戰)에 대비해 개경으로부터 강화로 천도했다. 이름은 강도(江都). 원종 11년(1270년)까지 38년간 고려의 수도였다. 예성강, 임진강, 한강의 하구가 강화에서 모인다. 군사적 요충지다. 바다로부터 오는 적과 육지를 통해 공격하는 적에 맞서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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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천도는 당대 실세였던 최우가 주도했다. 성을 두르고 궁궐을 짓고 관아를 세웠다. 심지어 천도 20년 만에 국자감(대학)까지 들어섰다. 한국사에서 강화가 가장 주목받던 시절이었다. 고려 최씨 무신 세력과 귀족들은 새로 옮긴 도읍에서 떵떵거리며 살았다. 팔관회를 열었고 격구를 즐기는 등 호화롭게 지냈다.
원종은 원과 회의하며 개경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선포했지만, 삼별초(三別抄)는 왕명을 어기고 그대로 남아 원과 항전했다.
수도의 딱지는 뗐지만 강화는 여전히 역사의 현장이었다. 조선 인조 역시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로 도피하려했다. 강화도에 유배와서 살던 ‘강화도령’ 은언군은 졸지에 제 25대 임금 철종이 되어 강화도를 빛낸 인물이 되었다.
서양 열강들도 한양으로 가는 길목의 섬 강화도를 주목했다. 프랑스와 미국의 군함이 차례로 강화도를 공격했으나 모두 막아냈다. 얼핏 조선의 승전처럼 보였던 병인양요, 신미양요다. 그들은 외규장각을 약탈하고 불태우는가 하면 양민을 도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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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일본 운요호가 강화를 침입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굴복한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 바로 강화도 조약이다. 이 불평등조약으로 인해 조선은 일본에게 강제적으로 원산과 인천을 개항했다. 지금은 휴전선을 코앞에 두고 해병대 제2사단를 비롯해 전방 부대들이 주둔하며, 안보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곳이다.
이처럼 강화도는 역사의 땅이다. 실재하는 역사책이요, 지붕없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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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과 에어컨이 있는 박물관도 있다. 강화고인돌공원 인근 강화역사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강화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전시해놓은 곳이다. 공설운동장 인근 강화문예회관은 강화와 연관된 문인과 학자들의 자료를 모아 놓았다. 무엇보다 두곳 모두 시원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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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전쟁박물관은 갑곶돈대에 위치했다. 갑곶돈대는 수많은 외세의 침략을 견뎌낸 곳이다. 강화전쟁박물관에는 전쟁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물론 에어컨도 있다. 신미양요 때 가장 극심한 피해를 입은 격전지 광성보는 역설적이게도 풍광이 좋아 산책길로 좋다. 당시 전사한 무명 용사의 무덤과 장수 어재연을 기리는 쌍충비각 등이 있다.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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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둘러볼만한 곳=강화도에는 곳곳에 ‘진’(鎭)이 있다. 한양으로 향하는 해로와 육로를 수성하기 위한 군사 주둔지인 진 5곳 모두 김포시 쪽 염하강을 따라 늘어서 있다. 진 보다 작은 ‘보’(堡)와 ‘돈대’(墩臺)도 강화도 동쪽 위주로 위치했다. 마니산 참성단은 마니산 정상에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제단이다. 여름보다는 개천절이나 신년 일출일몰에 많은 이들이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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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제철(5~7월)은 조금 지났지만 밴댕이가 맛있다. 강화풍물시장과 외포항 등에는 밴댕이 전문 식당이 많다. 풍물시장 2층에는 식당가가 있는데 죄다 밴댕이를 취급한다. 강화도 밴댕이는 특히나 살이 차지고 존득한 맛이 일품이다. 살짝 썰어 회로 먹고 회무침으로도 먹는다. 구워도 맛이 좋다. 강화풍물시장은 2·7일장으로 열린다. 이곳에선 인삼이나 순무를 사오면 좋다. 요리에 자신이 없다면 순무김치를 사오면 된다. 당분간 반찬걱정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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