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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는 비옥한 갯벌과 너른 들, 풍만한 산이 있어 음식이 좋은 곳이다. 가을 식도락여행지로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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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에서 바라본 보길도.
[무안·강진·목포·영암·해남=글·사진 스포츠서울 이우석 전문기자] 남도땅에 거대한 식탁으로 변하는 건 딱 지금쯤이다. 오곡백과 무르익고 바다에서 생생한 해산 먹거리가 스멀스멀 기어나온다.또 원래 모든 게 그렇듯 놓치면 금세 지나가버리고 만다. 그래서 호남고속도로를 탔다. 전라남도는 비옥한 서해안 갯벌과 풍만한 남해안 다도해, 지리산 내륙 청정산악지대와 너른 나주평야를 모두 가진 풍요의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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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땅끝 바다.
이 땅을 영산강이 가로지르고 섬진강이 세로로 내린다. 탐진강과 황룡강이 나머지 구석을 채운다.풍요의 땅과 바다에서 나온 수많은 가을 제철 먹거리들이 한가득이다. 특유의 남도 손맛이 세기(細技)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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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식도락투어 가는 길. 주변 풍광도 풍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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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의 가을 풍경.
◇삼시열끼 여행 시작하다

이달 초 강진군에서 열린 남도음식문화큰잔치를 다녀온 이후 일주일 내내 그 여운을 물리칠 수 없어 군침을 흩날리며 남도 땅 곳곳을 돌아다녔다. 무엇보다 단품요리 생각이 났다. 전라남도의 한상 차림이야 원래 유명한 것이지만 혼자 다닐 때면 받아들기 좀 무겁다. 1인상은 팔지도 않는다. 혼행족(홀로 여행다니는 사람)에겐 남도의 손맛을 딱 한 그릇으로 구현해놓은 단품요리가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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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무는 순간 또하나의 술상이 열린다.

전남도청 관광과를 통해 받아든 우수 단품요리 식당 리스트. 그 중 목포를 거점으로 무안 영암 강진 해남을 돌아다니며 오로지 먹기만 하는 여행이 시작됐다. 물론 자신있다. 이틀에 10끼 쯤이야 내겐 거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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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비경을 간직한 월출산.

남도의 가을은 파란 하늘아래 샛노란 황금들판을 펼쳤다. 이른 아침부터 목포에서 무안을 향해 달렸다. 남악과 인접한 일로는 영산강 자전거 코스로 유명한 곳이다. 목포에서 잠시 바람을 쐬러온 이들에게도 인기를 끄는 나들이 코스다. 조각가 김판삼이 사는 못난이미술관도 있어 볼거리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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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것만이 좋은 시대에 못난이 조각이 잔뜩 있는 못난이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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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래정 연잎밥. 무안.

이곳에 연잎밥을 파는 시래정이 있다. 섬유질이 많은 시래기로 밥 메뉴를 차리는 집이다. 시래기하니 일전에 강원도 양구에 갔던 생각이 난다. 읍내에서 지나던 아저씨에게 시래기 가게를 물어봤더니 (에어콘)실외기 가게를 알려줬다. 양구는 시래기, 실외기 둘 다 유명한 곳으로 내게 남았다.

아무튼 이곳은 회산백련지가 가까우니 연(蓮)을 이용한 요리가 많다. 상에는 당연히 연근조림이 오르고 죽순까지 줬다. 주변에 나는 식재료를 쓴다고 했다. 영산강에서 잡은 게 분명(?)한 멸치볶음도 상에 올랐다.

이집은 시원한 보리차를 내준다. ‘물은 셀프’가 아니고 ‘워터’임을 되새겨준 집이다. 밥 먹기 전에 입술을 축이는 보리차는 정말 좋다. 연잎밥이 정갈한 자태로 올랐다. 열자마자 김이 모락모락나는 찹쌀밥. 대추도 콩도 대추도 들었다. 밥 한술에 당장 몸이 좋아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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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박소스 돈가스. 남도에선 하다못해 경양식도 맛있다. 하늘꿈식탁.

이쪽에서 광암 쪽으로 길을 따라 조금 더 가면 근사한 카페처럼 생긴 건물이 나오는데 이곳은 ‘하늘꿈식탁’이다. 농가맛집이란 간판처럼 신선한 지역 식재료를 이용하지만 투박한 상차림은 아니다. 돌솥밥 쌈밥도 있고 돈가스도 있다. 뭐하러 남도까지가서 돈가스를 먹냐고 되물을지 모르지만 이집 메뉴는 좀 다르다. 단호박소스를 얹은 돈가스다. 단호박을 묽게 풀어 소스로 썼다. 바삭한 돈가스에 얹으면 달콤하고 고소한 맛의 조화가 펼쳐진다. 폭력적으로 단맛을 낸 설탕과는 당도의 차원이 다르다. 찬도 좋다. 흑임자 당면 샐러드부터 파김치, 알타리김치 등 한상을 떠억 차려낸다. 훈제오리와 보쌈도 준다. 이상하게 예의 그 멸치볶음도 미리 올라있다. 과연 남도 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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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저리꼬치구이. 무안맛집.

무안은 갯벌이 유명한 곳. ‘운저리’를 먹지 않을 수 없다. 무안읍 낙지시장에 운저리 꼬치구이를 파는 집이 있다길래 달려갔다. 참, 아직 점심이 끝나지 않았다. 운저리는 망둥어의 남도사투리다. 회무침으로도 먹고 구워도 먹는다. 이름도 맛있어 보이는 ‘무안맛집’은 시장골목 끄트머리에 길가에 있다. ‘아니 저 치는 술이나 마시러 댕기는 놈인가’ 점심부터 운꼬치구이를 주문하니 주인장이 짐짓 놀라는 눈치다. 몽탄막걸리를 곁들이고 싶었지만 참았다.

“마침 애벌해놓은게 있소” 다섯마리를 꿰어놓은 꼬치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오븐에 넣고 굽기 시작했다. 제철 메뉴를 위주로 파는 집이다. 운저리는 바깥 주인이 갯벌로 나가 직접 잡아온다. 양념을 발라 상에 올린 운저리. 뼈가 실해 다소 귀찮지만 부드러운 맛이 좋다. 바삭바삭 구운 살에 바른 양념도 입맛을 돋운다. 막걸리를 주문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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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근닭볶음탕. 무안 물맞이산장.

점심은 끝나지 않았다. 물맞이산장이라는 근사한 산장식당이 있다. 산에 둘러싸인 아늑한 산장. 이곳에서 ‘연근닭볶음탕’을 맛볼 수 있다. 닭도리탕이라 쓰지 않아 좋다. 투실한 닭과 감자, 연근을 넣고 칼칼한 양념으로 조려낸다. 쫄깃한 닭다리와 아삭한 연근의 식감 조화가 좋다. 감자만 넣은 것보다 담백하다. 이미 배가 부를대로 불렀지만 매콤한 맛이 없던 식욕까지 끌어모은다. 멸치볶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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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다순구미(온금동) 위에서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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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치회. 목포 한샘이네.
◇남도 바닷가 한바퀴

날 밝는대로 다시 음식을 먹어대야했지만 가을의 목포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삼치회를 먹었다. 자유시장(남진야시장) 안에는 해물과 이것저것 먹을 것을 내는 선술집이 있다. 그중 ‘한샘이네’. 지금은 삼치와 숭어 전어를 판다. 삼치회와 전어구이를 주문했다. 주문과는 별도로 반찬이 한가득 깔린다. 생미역 머릿고기 돌게장 꼬막 등 반찬만 집어 먹어도 소주 너댓병은 거뜬히 마실 기세다. 가지를 제외하고 모두 추가로 리필해서 먹었다. 기름 오른 가을삼치는 눅진한 맛이 좋다. 일반 흰살 횟감에선 느끼기 어려운 맛이다. 삼치에 ‘갓’만 씌우면 참치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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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막. 목포 평광 새벽을 여는 시장사람들

목포의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평광’을 갔다. 평광이란 평화광장의 준말인데 평광××식당, ○○평광점 등 이미 이름으로 굳어있었다. 무안 낙지맛을 못본 터라 오락실 사장님에게 낙지집을 물었지만 근처엔 없다는 설명이 돌아왔다.(다음날 보니 굉장히 많이 몰려있었다) ‘새벽을 여는 시장사람들’이란 식당을 갔다. 모두 지글지글 불판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오늘 들어왔다는 꼬막과 ‘천년애’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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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정도 1000년 기념 천년애 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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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출신인 유시민 작가가 광고 모델로 나섰다. 천년애 소주.

천년애는 보해양조가 ‘전라도 천년’ 기념으로 만든 소주인데 유시민 작가가 광고모델이다. 선택은 옳았다. 아직 맛이 덜 들었다지만 꼬막은 촉촉하니 깊은 맛을 냈고 천년애는 시원하게 목을 타고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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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땅끝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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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생이전복탕. 해남 바다동산.

아침 일찍 커피 한잔을 입에 달고 해남 땅끝을 향했다. 목포에도 말린우럭탕 등 좋은 국물이 많지만 해장은 미룬 이유는 해남 매생이전복탕 때문이었다. 바다동산에서 맛본 매생이전복. 땅끝 매생이는 갈라진 위장을 미장질하기 충분할만큼 부드러웠고 쫄깃탱탱한 전복은 매생이국을 먹을 때 자칫 소외되기 쉬운 치아를 달래줬다. 훌훌 잘도 들어간다. 밥을 말아도 그냥 떠먹어도 모두 좋다. 어차피 매생이 속에 들어가면 구분이 안가니 입으로만 느끼는 블라인드테스트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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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룩불룩한 월출산이 먹바람난 여행자를 바라보고 있다.

식당을 나서면 바로 바닷가. 땅끝 구경을 했다. 손바닥이 마주보는 조형물 뒷편으로 옥색 바다가 보인다. 아침볕을 받은 에메랄드 빛 바다에는 길쭉하니 완도 보길도가 떠있다. 포항 호미곶과는 달리 조형물이 실제 손 색깔과 비슷하니 착시를 이용해 재미난 놀이를 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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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에 있는 손바닥 조형물. 뒷편으로 옥색 바다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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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땅끝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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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에 있는 손바닥 상은 착시를 이용해 재미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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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에 있는 손바닥 상은 착시를 이용해 재미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서둘렀다. 두륜산 대흥사 아래에서 장아찌 비빔밥을 먹어야 했고 삐뚤이해장국도 챙겨야 했기 때문이다. 삐뚤이는 바다 다슬기를 말하는데 이 역시 해장계의 선동렬 급이다. 시원하고 칼칼한 맑은 국물이 속을 달래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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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장어탕. 영암 작은영토.

안믿겠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영암 ‘작은영토’에서 추장어탕을 먹었다. 가을 추자에 고기어 변을 붙인 추어(秋魚)를 장어와 함께 끓여낸대서 추장어탕이다. 걸죽한 국물이 진하다. 제피를 넣지않아도 비린맛이 전혀 없다. 오히려 시원하고 든든하다. 강진으로 이동해 토하회덮밥까지 먹고자했으나 아쉽게도 문을 닫았다. 아니 문은 열려있었다. 밤장사를 하는 ‘한잔포차’의 사장님은 문을 열어놓고 어딜 가셨다. 한참을 기다리다 발걸음을 돌렸다. 그날 밤 토하회덮밥 먹는 꿈을 기대했지만, 오가는 길에 바라본 월출산을 오르다 힘들어하는 꿈만 잔뜩 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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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초회와 바지락 죽. 목포 해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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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초회와 바지락 죽. 목포 해촌.

목포로 돌아와 어젯밤 못먹은 낙지를 먹었다. 평광(이제 외워둬야 한다)에 위치한 해촌. 바지락과 낙지로 유명한 집이다. 투실한 가을낙지라 초회로 먹고 바지락 죽을 곁들였다. 강진의 토하회덮밥 생각이 새큼한 양념 속에 묻혀버렸다.

남도음식기행(紀行)은 열곳이 넘는 식당에서 과식하는 기행(奇行)으로 끝났다. 소화가 되고나니 힘이 남는다. 지친 일상에 기력을 되살린 여행이다. 가을은 기다리지 않으니 사람이 한번 더 다녀가야겠다.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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