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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스포츠서울 정다워기자]박항서(59)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은 의연했다. 큰 일을 이뤘지만 차분하게 다음을 보는 모습이었다.
박 감독은 16일 베트남 하노이의 베트남축구협회에서 열린 국내 취재진과의 기자회견에서 2018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우승 소감을 밝혔다.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하루 앞선 15일 대회 결승 2차전서 말레이시아를 잡고 챔피언에 등극했다. 박 감독은 “경기 중에는 끝까지 잘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경기가 끝나니 여러가지 교차했다. 그토록 염원했던 우승을 해냈다는 성취감이 들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번 대회 우승으로 베트남 전역이 열광하고 있다. 박 감독의 인기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이날 박 감독은 응우옌 쑤언 푹 총리의 고향인 다낭을 방문했다. 정치계 거물들이 대거 참석한 자리였다. 일부 국민은 박 감독을 베트남 민족운동 지도자인 호치민 다음 가는 영웅으로 표현한다. 박 감독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박 감독은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는 “저는 영웅이 아니다. 축구 지도자다. 그런 부분에 욕심은 없다. 평범한 지도자로 살고 싶다. 많은 사랑을 받는 부분이 솔직히 부담스럽고, 불편할 때도 있다”는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이어 “한편으로 조국이 아닌 타국에서 이룬 성과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축구를 통해 많은 국민에게 사랑을 받았으니 그만큼 돌려드려야 할 의무가 있다. 거기에 만족한다. 다른 것에는 기대감이 없다”라고 덧붙였다.
박 감독 부임 후 베트남은 A매치 16경기 무패 행진을 달리고 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준우승,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4강 진출에 이어 스즈키컵 우승까지 달성했다. 박 감독은 “특별한 변화는 없다. 패배 의식이 있는 선수들에게 계속 싸울 것을 요구했다. 실점 장면을 많이 보고 훈련 중에 어떻게 보완할지 연구했다. 그런 부분은 정말 많이 개선됐다. 선수들의 장점은 투쟁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목표 의식도 있다. 선수들에게 일깨워준 부분이 있다”라는 비결을 밝혔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게 있고 시스템이 개선돼야 할 것도 있다. 장비, 시설 문제는 한국 수준과 보면 부족함이 있다. 베트남도 경제가 성장하기 때문에 그에 따라 보완할 수 있다고 본다”라며 대표팀 환경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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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감독은 15일 우승 기자회견에서 “저를 사랑해주시는 만큼 제 조국도 사랑해주시기를 바란다”는 소감을 남겼다. 박 감독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저를 많이 사랑해주시니 제 조국도 사랑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의 발언이었다. 정치에는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그런 의미의 발언은 아니었다. 저를 통해 조국에 작은 도움이 됐다면 만족한다”라고 말했다.
박 감독이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한 이영진 코치에게 공을 돌렸다. 박 감독은 “이 코치가 저와 오랫동안 있었다. 얼굴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안다. 저도 결정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 코치는 감독 경험도 있기 때문에 저에게 큰 도움이 된다. 상충되는 부분이 있지만 서로 충분히 논의를 한다. 서로 꼼꼼하게 준비한다. 많이 의지하고 있다. 평소 살갑게 말은 하지 못하지만 고생하는 것을 다 안다. 누구보다 가장 고생하는 사람”이라며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큰 일을 치렀지만 박 감독은 쉴 틈이 없다. 베트남은 2019년 1월 5일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에 출전한다. 베트남은 이란과 이라크, 예멘과 함께 D조에서 경쟁한다. 박 감독은 “어제 호텔에 들어가니 20일부터 아시안컵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아시안컵에서는 우리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봐야 한다. 부족함이 있겠지만 우리 선수들 평균 나이가 23.5세 정도 된다. 우리 조에 이란, 이라크가 있기 때문에 부딪히는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도전하는 입장에서 준비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한편 베트남은 다음해 3월 한국과 친선경기를 치른다. 한국은 2017년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대회 챔피언, 베트남은 올해 AFF 스즈키컵 우승팀 자격으로 격돌한다. 박 감독은 지난 아시안게임에 이어 다시 한 번 조국을 상대하게 됐다. 박 감독은 “맞대결에 대한 특별한 감정은 없다. 한국을 만나면 우리가 한 수 아래인 것은 사실이다. 배우는 자세로 열심히 해보겠다”는 출사표를 남겼다.
we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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