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정다워기자]기세는 좋다. 자신감도 넘친다.
베트남 축구는 박항서 감독과 함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상승기류를 타고 있다. 2018년 한 해 동안 거둔 성공의 크기가 상상 이상이니 당연하다. 23세 이하(U-23) 선수들이 출전한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과 아시안게임에서 각각 준우승, 4강이라는 역사를 썼다. A대표팀이 출전한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에서도 무패 우승을 달성했고 A매치에서도 16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달리고 있다. 베트남의 승승장구는 우연이 아닌 실력으로 봐야 한다.
동남아시아를 정복한 베트남은 이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다음해 1월5일 아랍에미리트에서 개막하는 AFC 아시안컵이 베트남의 다음 무대다. 아시아의 강호들이 총출동하는 대회인만큼 베트남의 진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하게 가늠할 수 있을 전망이다.
베트남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100위다. 아시안컵에 참가하는 24개국 중 17위에 해당한다. 객관적인 수치로 보면 아직까지는 아시아의 중심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U-23 챔피언십이나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는 했지만 A대표팀이 출전한 대회는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보면 U-23 대표팀과 A대표팀의 격차는 크다. 한국의 경우 A대표팀에서 뛰는 와일드카드가 3명이나 출전했지만 아시아의 강호인 일본, 호주 등은 지난 아시안게임 대표팀을 21세 이하로 꾸렸다. 당시 베트남은 조별리그서 일본을 잡았으나 4강에서 한국을 만나 경기력에서 크게 밀렸다.
|
베트남은 U-23 선수들이 A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번 스즈키컵에 출전한 선수들 대부분이 1990년대 중후반에 태어났다. 1980년대생은 베테랑 골잡이 응유엔 안아이득이 유일하다. 아시안게임 멤버 20명 중 무려 15명이 스즈키컵에 참가했다. 와일드카드로 A대표팀 소속인 아인득을 비롯해 응유엔 반꾸옛, 도 훙둥 등이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전력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골키퍼의 경우 아시안게임에서 볼 수 없었던 당 반람이 주전으로 뛰고 있다. 골키퍼를 제외한 수비, 미드필드, 공격 전 포지션의 주전급 선수들이 대거 아시안게임에서 뛰었다. 아시안게임에서 보여준 전력이 A대표팀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전에서 크게 고전한 것을 보면 아시안컵 상위 무대까지 가기엔 무리가 있다. 박 감독도 “아직 우리가 아시안컵 같은 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는 어렵다”라고 냉정하게 진단했다.
그렇다고 베트남이 마냥 약한 팀은 아니다. 베트남은 스즈키컵을 앞두고 한국에서 현지훈련을 실시했다. K리그의 인천, 서울이랜드, FC서울과 평가전을 치렀다. K리그 팀들의 경우 최정예로 나서지 않았으나 베트남도 다양한 실험을 했기 때문에 100% 전력을 쏟았다고 볼 수는 없다. 당시 경기를 지켜본 한 지도자는 “베트남의 수준이 생각보다 높다. 기술은 굉장히 좋은 편이다. 피지컬에 약점이 있지만 아시안컵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 K리그 지도자는 베트남의 한 선수를 보고 매력을 느껴 영입 의사를 밝히기까지 했다. 동남아시아라는 편견을 걷고 보면 베트남은 분명 나름의 경쟁력을 갖춘 팀이다.
베트남은 조별리그서 이란(29위), 이라크(88위), 예멘(135위)과 함께 D조에 포함됐다. 이란은 절대강자지만 이라크와 예멘은 해볼 만한 상대로 평가된다. 아시안컵에서는 조 3위를 차지해도 성적에 따라 16강에 갈 수 있기 때문에 베트남도 토너먼트 라운드 진출을 노릴 수 있다.
|
자신감은 있다. 베트남은 원래 패배의식에 빠져 있던 팀이지만 1년 내내 이어진 성공으로 선수들의 긍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박 감독은 “부임 전까지만 해도 베트남 선수들이 자존심은 강한데 자신감이 없었다. 이제는 달라졌다. 계속 승리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베트남 언론 탄니엔뉴스의 쿽 비엣 기자는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베트남 국민도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아시안컵에서도 조별리그 통과 정도는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베트남에 아시안컵은 그리 중요한 대회가 아니라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베트남이 노리는 다음 목표는 2019년 11월 필리핀에서 열리는 시게임(Southeast Asian Games)이다. 동남아시아의 올림픽 성격을 지닌 대회로 베트남은 한 번도 우승한 적이 없다. 1959년 동남아시아반도게임 시절 정상에 선 적이 있지만 당시에는 남베트남이 참가했다. 베트남의 우선순위는 아시아가 아니라 동남아시아 정복이다. 아시안컵은 시게임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결과보다 내용, 가능성을 보여주는데 의미가 있다. 박 감독이 “어린 선수들이 아시아의 강팀을 만나 좋은 경험을 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비엣 기자는 “아직까지 베트남은 아시아에서 강하다고 보기 어렵다. 일단 동남아시아에서 1등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시안컵에서는 조별리그만 통과해도 좋다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weo@sportsseoul.com
기사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