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감독 하프타임
박항서 베트남 대표팀 감독이 9일(한국시간) 이라크와의 아시안컵 D조 조별리그 1차전 하프타임에 라커룸으로 향하는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아부다비| 도영인기자

[아부다비=스포츠서울 도영인기자] 왜 박항서 감독이 언어도 통하지 않는 베트남 선수들에게 신임을 받는지, 베트남 축구의 변화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가 2019 아시안컵 D조 1차전인 이라크와의 맞대결 90분에 고스란히 담겨져있다. 환갑이 넘은 박 감독은 선수와 지도자 시절을 통틀어 이번 대회를 통해 아시안컵과 첫 인연을 맺었다. 2002한일월드컵 4강 신화에 일조하는 등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에게도 특별한 경기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라운드 밖 지도자는 냉철해야한다. 90분 한 경기에도 여러 변수가 발생하는 것이 축구라 감독은 중요한 순간마다 결정을 내려하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이라크와의 맞대결 내내 냉정함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선수들이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면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고, 반대로 제자들이 풀이 죽으면 기분을 끌어올려주기 위해 애를 썼다.

◇득점엔 침착, 실점엔 박수를 보낸 박항서 감독

이 날 경기에서는 베트남이 이라크에게 행운의 선제골을 뽑아냈다. 예상밖의 득점에 베트남 선수들은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했다. 득점 직후에는 베트남 벤치에 있던 코칭스태프도 서로를 얼싸안고 좋아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하지만 냉정을 잃지 않는 단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박항서 감독이다. 박 감독은 잠시 골에 대한 기쁨을 표출하긴 했지만 곧이어 선수들에게 다가가 침착할 것을 주문했다. 박 감독은 통역과 베트남 출신 코치들을 통해 경기 운영에 대한 정보를 전달했고, 특히 측면 수비수 트롱 호앙을 불러 별도로 지시를 내리는 모습도 보였다.

불과 11분 뒤 베트남은 이라크의 공격수 알리에게 동점골을 내줬다. 박 감독은 실점 직후 머리를 감싸안으며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제자들이 행여나 실망할까봐 테크니컬 구역 맨 끝까지 나와 박수를 치면서 용기를 북돋아주는 모습을 보였다. 전반 42분 콩 푸엉의 추가골이 터지자 박 감독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어퍼컷 세리머리를 통해 기쁨을 발산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짧은 골 뒤풀이 직후에는 곧바로 코치진과 논의를 통해 선수들에게 리드 이후 진행될 경기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알리는데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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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이 선제골 후 선수들을 진정시키고 있다. 아부다비 | 도영인기자

◇가장 늦게 라커룸으로 향하고, 가장 늦게 벤치에 앉는 지도자

박 감독은 이라크전 전반 종료 휘슬 소리가 울리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지만 라커룸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고, 오히려 그라운드 방향으로 향했다. 그는 라커룸으로 향하는 선수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고, 어깨를 토닥여주면서 격려했다. 그것도 모자라 하프타임동안 후보 선수들의 컨디션을 책임지는 트레이닝 코치를 불러 지시를 한 뒤에야 라커룸으로 이동했다.

후반 경기를 위해 베트남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등장한 뒤에도 박 감독은 바빴다. 하프타임에 작전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선수 개개인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후반 시작을 앞두고 공격수 콩 푸엉을 붙잡고 작전판을 활용해 움직임에 대해 지시를 내렸다. 결국 선수들을 챙기느라 박 감독은 선수단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벤치에 앉았다. 박 감독은 경기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결과적으로 역전패를 당했지만 우리보다 체격이 좋은 선수들을 상대로 최선의 경기를 펼쳤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역전골에 아쉬움이 있지만 정말 베트남 정신으로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최선의 경기를 펼쳤다고 생각한다”면서 제자들을 높게 평가했다.

doku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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