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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대한축구협회

[두바이=스포츠서울 도영인기자] 아시안컵은 ‘말의 홍수’입니다. 경기 전날과 경기 당일에는 감독과 대표 선수가 참석하는 공식 기자회견이 열리고, 경기 직후에는 믹스트존 인터뷰를 통해 선수들의 소감과 각오 등을 듣습니다.

아시안컵 취재를 하면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는 인물은 한국 축구대표팀을 이끄는 파울루 벤투 감독입니다. 벤투 감독은 미사여구를 거의 쓰지 않습니다. 담백한 어조로 필요한 말만 하는 스타일입니다. 아시안컵 현장에서 벤투 감독의 입을 통해 가장 자주 듣는 단어는 ‘존중’과 ‘우리 스타일’일 겁니다. 존중의 경우 조별리그를 거쳐 16강까지 한국의 상대는 객관적인 전력면에서 한 수 아래였죠. 그래서 벤투 감독은 상대 분석 또는 평가를 해달라는 질문을 받을때마다 “우리는 어느팀과 만나든 상대를 존중한다”는 말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어느 팀과 싸우든 우리의 스타일을 고수할 것이다”라는 말도 꼭 뒤따랐습니다.

벤투 감독의 화법 가운데 가장 큰 특징은 애매모호한 단어나 문장이 거의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슨 질문을 받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경기를 앞두고 특정 선수의 부상 상태에 관련된 질문을 받으면 지도자로서 되도록 감추고 싶은 마음이 들만도 합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숨김없이 현재 상황을 그대로 전달하는 스타일입니다. 벤투 감독은 조별리그 2차전 키르기스스탄전과 16강 요르단전을 앞두고 “이재성은 내일 경기 출전이 불가능하다”고 잘라말했습니다.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표현으로 들릴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상대국에게 보탬이 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선수 평가에 대해서도 돌려 말하는 법이 없습니다. 자신의 관점에서 냉철하게 평가를 내리죠.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11월 대표팀 명단발표 기자회견에서 이승우을 발탁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벤투 감독은 “이승우는 소속팀 활약이 미미하다. 이승우 포지션에 경쟁이 치열하다. 동일 포지션에 능력이 좋은 멀티 플레이어들이 포진돼 있다. 경험 많은 선수들도 있다”고 설명을 했습니다. 또한 아시안컵 최종엔트리 발표때도 “왼쪽 풀백 1순위는 홍철이다”라면서 자신의 속내를 가감없이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사실 냉철한 평가를 받은 태극전사들은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합니다.

벤투 감독의 이러한 직설 화법은 16강전을 하루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극에 달했죠. 벤투 감독은 ‘최근 선수들이 부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의무팀과 관련한 문제를 지적한 보도도 나왔다 .그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해달라’는 마지막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는 작정한 듯 “의무팀과 관련된 이야기가 언론에서 나오고 있지만 난 팀을 어떻게 이끌지만 생각하고 있다”고 전한 뒤 “부임한 이후 10경기동안 패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계속해서 보고 있다. 패배를 하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지켜보겠다”면서 언론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여과없이 나타냈습니다.

화법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애매모호함을 거부하는 벤투 감독의 직설화법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겁니다.

doku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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