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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꼭꼭 닫아걸은 시골 서당 훈장은 남루한 행색의 방랑객을 보고 고민에 빠졌다. 이른 아침부터 찾아와 밥을 청하는 것인데…. 훈장은 그가 그냥 돌아갔으면 했다. 돌연 그를 물리칠 기가 막힌 방도가 떠올랐다. ‘서당’과 ‘학생’, ‘선생’을 넣어 시를 지으면 밥을 주겠노라 했다. ‘주제에 글이나 알겠나?’. 하지만 돌아온 시는 걸작이다.
“내 일찍이 서당인 줄 알고 왔소, 방에는 모두 귀한 분들, 학생은 채 열명이 안되는데 선생은 내다보지도 않는다”. 얼마나 완벽한가. 하지만 길손이 읊은 시를 들은 선생과 학생들은 모두 아연실색했다.
음독하자면 “서당내조지(書堂乃早知) 방중개존물(房中皆尊物) 생도제미십(生徒諸未十) 선생내불알(先生來不謁)”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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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의 정체는 시선(詩仙)으로 불린 김삿갓(김병연)이다. 이중자의시(二重字義詩) 즉 언어유희, 시쳇말로 ‘아재개그’의 아버지다. 말과 글로는 갓(God) 중의 갓이 김삿갓이다. 발음도 야구선수 김병현과 비슷해 외우기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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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 아니다. 영월 출신의 이 천재시인은 글자를 분할해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파자시(破字詩)와 현대판 랩처럼 같은 말이 반복되는 동자중출시(同字重出詩)에도 능수능란했다.
파자시는 한자를 분해해 새로 해석한다. 월월산산(月月山山) “벗(朋)이 나가면(出) 밥을 먹겠다”는 친구에게 김삿갓은 “정구죽요(丁口竹夭) 즉, 가소(可笑)롭다며 아심토백(亞心土白) 나쁜 놈(惡者)”이라 풍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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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고 그름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리며 ‘시시비비비시시(是是非非非是是) 시비비시비비시(是非非是非非是) 시비비시시비비(是非非是是非非) 시시비비시시비(是是非非是是非)’라 했다. 최고의 라임으로 답한 전무후무한 프리스타일 래퍼였다.
훗날 가수 홍서범이 서태지와 아이들보다 빠른 ‘대한민국 최초의 랩송’ 김삿갓(1989년)을 노래한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닐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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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유희는 ‘부장개그’ ‘아재(아저씨의 사투리)개그’ 등으로 폄하되는 바가 없지않지만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장르다.
야사에는 세조가 정승 신숙주와 구치관을 두고 신(新)정승이니 구(舊)정승으로 술자리 말장난을 했다는 일화가 있고, 정조와 정약용 또한 마치(馬齒)와 계우(鷄羽·겨우)로 말장난을 주거니 받거니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정조와 다산은 이외에도 힙합 스타처럼 언어유희로 많은 ‘배틀’을 벌였다. 정조가 “보리뿌리 맥근(麥根)맥근”하면 다산이 “오동열매 동실(桐實)동실”, 다시 정조의 “아침까치 조작(朝鵲)조작”에 정약용은 “낮 송아지 오독(午犢)오독”으로 응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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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말장난을 즐긴다. 시시한 농담, 즉 ‘다자레(だじゃれ)라 부르는 언어유희 장르가 일상에 존재한다. 만화 ‘스모모모모모모:지상 최강의 신부’(오타카 시노부 작)는 “자두도 복숭아도 복숭아 집안(スモモも桃も桃の內)”이란 말장난에서 나온 말이다. 일본 TV광고에도 늘 등장한다. 골프공처럼 빙글빙글 그린을 구르던 주전자가 홀‘컵’ 앞에 멈추면 “아유레디(Are you ready)”대신 “오유레디?(뜨거운 물 준비됐어?)”란 메인카피가 등장한다. 물론 컵누들(니신식품) 광고다.
중국은 ‘시씨가 사자를 먹었다’(施氏食獅史)는 시가 대표적 언어유희 작품으로 유명하다. ‘시씨 성을 가진 시인이 사자 열 마리를 먹었다’는 내용인데 발음이 시작부터 죄다 ‘시(shi)’로 끝난다. 시시시시시시시… 100번 가까이 ‘시’만 읊는 시(詩)다. 언어학자인 자오위안런이 지었다. 비상하다. 결코 ‘시시’하지 않다.
언어유희가 발달하기는 서양도 마찬가지다. 문호 셰익스피어의 언어유희(Pun)는 작품 속 곳곳에 숨어들어 세상을 비판하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지은 루이스 캐럴은 중요 대사를 언어유희로 채웠다. 모자장수와 왕은 차(Tea)와 알파벳 T로 말장난을 하고, 앨리스는 고양이에게 바로 쓰나 거꾸로 쓰나 똑같은 말 ‘회문(回文)’(Was it a cat I saw?)을 남긴다. 서양의 김삿갓이라 부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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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영월
해학은 그림에도 담겼다. 특히 민화는 민초의 삶과 소망이 녹아든 그림이다. 김삿갓면(영월군은 아예 김갓삿면으로 바꾼 바 있다)에는 조선민화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의 도시 영월에 2000년 개장한 이 박물관에는 즐거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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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하면 단골로 떠오르는 호랑이와 까치,꽃과 나비,잉어 등은 죄다 허투루 그린 그림이 아니다. 모두 탄탄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액운을 쫓는 목적으로 까치와 호랑이 해태(부라보콘 만드는 그 회사 로고였다) 용 개 닭을 그려 입구에 붙여놓았다.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는 도둑을 막는 CCTV 용도로 그렸다. 그래서 자물쇠도 물고기 모양이 많다. 과일은 장수와 자손번창을 뜻한다. 3000살을 산 동박삭이 먹었다는 천도복숭아를 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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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강물을 거슬러 올라 용이 됐다는 등용문의 설화를 뜻하는 잉어는 수험생이나 취업준비생,임원 진급을 앞둔 말년 회사원에게 좋다. 영월의 ‘해피 패스’에도 딱 맞는 캐릭터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선조들은 민화와 함께 평생을 살았다. 나서는 수복병풍 앞에서 돌잡이를 했고,글을 깨우칠 나이엔 문자도 앞에서 천자문을 외웠다. 장성해서는 화조도 병풍 앞에서 첫날밤을 보내고,늙어 노안도 앞에서 만년을 보냈다. 심지어 죽어 모란병풍 뒤에 눕는다.
박물관 2층을 올라가려면 19세 이상이어야 한다. 민화 중 가장 은밀한 성담을 담은 춘화(春畵)가 따로 전시되어 있다. 유교 사상이 지배하던 딱딱한 세상의 그늘 속에서 쉬쉬하며 보던 ‘성인물’이다. 혜원도 단원도 많이 그렸다지만 대부분의 춘화에는 당시 처벌이 두려운 탓이었던지 작가 이름이 따로 없다.
그림도 작다. 몰래 봐야하고 꽁꽁 숨겨놓기 좋아야 해서 ‘포켓북’으로 유통됐다. 기본에 충실했다. 인간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요즘 에로 비디오물처럼 다양한 상황과 설정이 있고 우스꽝스럽게 과장된 그림이 나름 적나라하다. 편견과는 달리 조선시대에도 행복을 추구하던 삶이 있었던 모양이다.
전시물 중에는 일본 춘화도 있다. 우리 춘화와 비교해서 찬찬히 뜯어보자면, 음…. 역시 어떤 산업에 있어 그 전통은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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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은 박물관의 도시로 불린다. 2000년대 초중반 당시 중앙 정부는 지방의 자립과 자급을 위한 주문을 했고 영월은 박물관을 택했다. 이후 사설박물관 건립을 지원해 현재 20여 곳의 박물관을 둔 메카로 성장했다.
조선민화박물관을 비롯해 호안다구박물관 만봉불화박물관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 영월동굴생태관 세계민속악기박물관 영월초등교육박물관 영월종교미술박물관 호야지리박물관 국제현대미술관 인도미술박물관 영월화석박물관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 쾌연재도자미술관 등이 있다.
영월군은 박물관 스탬프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스마트폰에서 영월박물관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으면 지정 박물관과 관광지에서 마일리지를 적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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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사진박물관 별마로천문대 영월곤충박물관 등 22개 공사립 박물관에서 QR코드 촬영 인증하고 고씨굴,장릉 등 6개 주요관광지 GPS 인증을 하면 마일리지를 주고,마일리지는 박물관과 어플리케이션에서 사용할 수 있다. 박물관 1개관과 축제장에서 1000점,관광지 1개소에서 500점을 적립해준다. 이벤트 투어는 3000점을 추가 적립해준다.
춥기도 하거니와 때는 마침 겨울방학,가족여행으로 박물관이 좋다. 새해를 시작하는 시점이기도 하니 액운에 대한 ‘무사안녕’을 위해 영월 여행을 추천한다.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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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박물관=
김삿갓문학관은 태백산의 끝과 소백산이 시작하는 중간 지점에 있다. 김삿갓이 살았고 죽어 묻힌 곳이다. 묘와 상징조형물,시비를 볼 수 있으며 문학관에선 그의 일대기와 작품세계를 간접 체험할 수 있다. 호안다구박물관은 다구(茶具)를 통해 차 문화를 배울 수 있는 박물관이다. 차와 관련된 신기한 작품과 유물을 볼 수 있으며 다례 및 제다실습을 체험해볼 수 있다.
조선민화박물관에서도 민화를 그려보는 체험을 진행할 수 있어 자녀들과 동반한 가족단위 여행객에게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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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볼만한 곳=
잣봉(537m)은 비경을 보러 오르는 산행코스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잣봉에서 바라보는 어라연의 풍경이 유명하다. 기이한 모양의 바위가 연출하는 신비스러운 풍경이 근사하다.
별마로천문대는 국내 최대 규모 천문대. 800㎜ 주망원경을 비롯해 보조망원경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해발 약 800m에 위치하고 주변에 밝은 도시가 없어 관측 조건이 탁월하다. 연간 관측일수가 196일(국내 평균 116일)로 ‘별 볼일 많은 곳’이다. 천체투영실에선 돔 스크린에서 재미난 설명과 함께 ‘가상의 별자리’를 만날 수 있다. VR 체험존에선 영월 상공을 날아다니는 듯한 패러글라이딩 VR체험을 즐길 수 있다.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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