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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호텔에 짐을 풀고 간단한 훈련을 위해 곧바로 혼합경기가 열리는 류경정주영 체육관으로 가는 선수단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한국여자농구팀만의 훈련이지만 남측 방문단과 북측요원 등 꽤 많은 인원들이 함께 했고 호텔 밖으로 나가는 것이 통제돼 인원파악은 철저히 이뤄졌다. 이내 앞뒤로 경호차량이 선수단 버스를 인도하며 평양거리를 달렸다. 평양광장에 앉아서 청소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학생들이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지만 묻는 것도 실례라 그저 눈에 담으며 류경 정주영체육관에 도착했다. 2003년 고 정주영 회장이 건립한 체육관으로 어느덧 15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지만 너무나 잘 관리한 탓에 새 건물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바닥이며 벤치, 1만2300석의 관중석 등 체육관 내부는 깔끔하게 단장돼 있었고 한 면을 사용한 전광판에는 ‘북남통일롱구 참가자들을 열렬히 환영합니다’라는 큼지막한 문구가 새겨져 우리를 반겼다. 선수의 이름이 쓰여진 농구공, 라커룸에 준비된 간식과 음료 등 국제대회를 유치한 선진국 체육관과 다를 바 없이 잘 준비돼 있었다. 간단히 몸을 푸는 정도의 훈련을 끝내고 체육관 안팎에서 추억의 사진을 몇 컷 남겼다. 1990년도 싱가폴 국제대회에서 처음 북측선수들을 만났을 때 사진촬영은 커녕 대화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분위기가 사뭇 달랐고 오히려 자유로움까지 느꼈다.
지난해 7월 3일 오후 6시, 역사적인 남북선수단의 첫 만남은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의 환영식 자리에서 이뤄졌다. 깔끔하게 정장을 하고 수줍게 기다리고 있던 북측선수들은 열렬히 환영한다는 말과 함께 우리를 반겼다. 남측선수들도 그들에겐 그렇게 긴장되고 수줍게 비쳐졌으리라. 그러나 잠시 후에는 늘 만나던 사람들처럼 순식간에 친해졌다. 평양인삼주로 축배를 들며 운명과도 같은 인연을 맺었다. 대한농구협회 방열회장은 “세상에 가장 어려운 일이 하늘에 오르는 것과 분단된 조국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라고 한다. 남북농구단이 통일농구를 계기로 그 디딤돌 구실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옥류관에서 전통요리와 평양냉면을 맛보며 대동강의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북측선수들, 임원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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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방문 이틀째인 7월 4일, 우리 선수단은 북측 선수단과 함께 미리 정해져 있던 혼합 팀(번영과 평화)으로 6명씩 나눠 초록색과 흰색의 유니폼을 입고 체육관 복도에서 30분가량 대기했다. 첫날 옥류관에서 친해진 탓인지 남북선수단은 마치 올스타전에 출전하는 선수인양 상기된 모습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북코칭스태프인 남측 이문규감독과 북측 정성심감독, 나와 북측 장명진 보조감독이 서로 짝을 이뤄 손을 잡고 입장 리허설을 하면서 “우리는 짝이 됐다”고 농담을 하며 웃기도 했다.
입장식에서는 연습한대로 남북농구선수단이 뒤섞여 손을 잡고 코트로 들어섰다. 북측 최희 체육위원장과 김일국 체육상 등 관계자들과 1만여 평양시민들이 밝은 모습으로 힘찬 박수와 함께 환호를 보내줬고 우리는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이어 여자농구혼합경기를 시작으로 평양통일농구의 막이 올랐다. 승패를 떠난 경기였지만 소속된 팀의 승리를 위해 승부욕으로 불타는 경기를 했다. 리경숙(202㎝·1990년대 북측대표)의 딸인 만15세 박진아(205㎝)가 긴장과 오버 워크로 하얗게 변한 얼굴을 보고 놀란 나는 정성심 감독에게 빨리 교체해야 한다는 신호를 줬다. 정 감독이 그때서야 교체를 할 정도로 감독도, 선수도 열심이었다. 생각보다 북측 선수들의 슛, 패스, 수비 등 개인기는 좋았다. 남녀 혼합경기 후에는 양국의 관계자 및 선수단 모두가 코트에 어우러져 뜻깊은 기념사진을 남기며 역사의 한 장면을 기록했다.
하숙례 여자농구 단일팀 코치·한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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