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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글·사진 | 스포츠서울 이우석 전문기자]
#1동네 아주머니들이 이렇게 말한단다. “송혜교는 좋겠다. 출근하면 박보검을 만나고 퇴근해서 집에 가면 송중기가 기다리니.”
얼마전 종방한 드라마 ‘남자친구’(tvN) 이야기다. 제목이 ‘남자친구’라니, 참…. 어떤 스토리인가. 사랑 이야기는 사실 이제 관심이 별로 없다. 드라마 본방을 챙겨본 것도 ‘엄마의 바다(MBC·1993년)’, ‘아들과 딸(MBC·1992년)’ 정도가 마지막이다.(사실 그때 나는 병장이었기 때문에 꼬박꼬박 챙겨볼 수 있었다)
무슨 계기였던지 얼마전 이 드라마를 뒤늦게 챙겨볼 일이 생겼다. 세상이 좋아져서 재방송을 기다리지 않고 VOD로 볼 수 있다. 1편부터 눈과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도 그럴 것이 드라마 속에는 꽤 낯익은 장소와 설정이 많다. 동해안 리조트 호텔과 홍보실에 근무하는 주인공 등 여행전문기자인 내게 많은 영감과 깊은 인상을 줬다. 설 연휴를 마치고 바로 속초로 달려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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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너에게 있던 모든 괴로움들은 파도에 던져버려 잊어버리고/허탈한 마음으로 하늘을 보라 너무나 아름다운 곳을/겨울 바다로 그대와 달려가고파 파도가 숨쉬는 곳에/끝없이 멀리 보이는 수평선까지 넘치는 기쁨을 안고.’
푸른하늘이 불렀다. 겨울바다(1989년). 겨울바다라는 가수가 부른 푸른 하늘인지 가끔 헷갈리기도 한다. 복면가왕에 패널(잘 못맞추는)로 나오는 유영석씨가 보컬이었다. 가사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삼면이 바다지만 노랫말 속 겨울바다는 당연히 동해다. ‘끝없이 멀리 보이는 수평선’이 힌트다. 서해와 남해는 섬이 많다. 그동안 정신적이나 신체적으로 괴로움이 많았다. 파도에 던져버려 잊고 싶었다. 함께 갈 ‘그대’는 없었지만 내가 홀로 속초로 달려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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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주인공, 외옹치
사실 ‘무슨 영화를 찍었고 어떤 드라마의 배경이었고’에는 그리 관심없었다. 하지만 외옹치는 달랐다. 요새 TV 화면과 촬영장비가 좋아진 덕에 정말 현실감나는 바다가 눈에 ‘똭’ 들어와 박혔다. 개방되기 전에도 몇번이나 가본 지라 눈에 익은 곳. 외옹치 앞바다가 ‘남자친구’의 배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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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는 ‘바다향기로’ 산책길이 등장한다. 바다를 끼고 오르락 내리락하는 데크길에서 진혁(박보검 분)과 수현(송혜교 분)이 만나 동해물처럼 마르지않을 사랑을 키운다. 진혁은 수현에게 시집 한 권을 준다.(나중엔 반대로 수현이 진혁에게 시집을 온다) 제목은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아…. 예쁜 말이다. 밀양아리랑에도 등장하는 고운 말이다.
길이 지나는 언덕에는 수현이 대표로 있는 동화호텔(실제는 롯데리조트 속초)이 있다. 송혜교가 수현이기 훨씬 전에 이미 속초에서 ‘은서’로 드라마 ‘가을동화’를 찍은 적이 있어서 동화호텔을 지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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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사랑’ 이야기가 딱 들어맞는 배경으로 외옹치 바다를 택했다. 마침 대본의 설정 속 근무지(호텔)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외옹치 해변이 꽤 서정적이기 때문이다. 떠들썩한 속초 대포항이나 강릉 경포대와는 또다른 분위기가 난다.
누군가 이곳에서 사랑을 그리워하고,역시 그를 그리워하는 사랑이 이 바다에서 만난다. 더할나위 없이 좋은 배경이다. 만약 경포대나 대천해수욕장에서 그들이 만났다면,피융피융 싸구려 불꽃 소리나 불판 위 퍽퍽 터지는 조개구이 폭음에 사랑이 묻혀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파도소리밖에 들리지않는 고요한 바다. 외옹치에서 서로 그리워하던 사랑이 자랐다. 드라마 속 시집을 펼치면 마침 ‘그리움’이란 시가 나오고 그 갈피에는 진혁이 찍은 수현의 사진이 꽂혀있다. 외옹치에서 그리움을 시작한 회사 대표와 신입사원은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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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에 대한 보상, 천혜의 자연 보존
외옹치는 바닷가로 비져나온(外) 항아리 언덕(瓮峙)이란 이름처럼 나지막한 봉우리가 조가비처럼 생긴 작은 해변을 감싸고있는 포란형 지세다. 해발은 낮지만 결코 만만하지 않은 산세는 바로 설악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파도치던 설악의 기운이 외옹치에 이르러 비로소 짙푸른 바다로 떨어진다.
그나마 마을사람들은 1970년대 초까지 바다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외옹치는 수십 년간 군사시설로 통제됐던 곳이다. 해안절벽을 따라 철조망으로 빙빙 둘렀다. 2005년 여름 약 30년 만에 해수욕장이 개방되고 지난해 4월 해안 산책로까지 열었다. 아쉬웠지만 출입통제 덕분에 자연 그대로의 해안 풍경을 오롯이 간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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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향기로’는 외옹치 해변에서 외옹치항까지 총 1.74㎞를 걷는 해안 둘레길 코스다. 군 부대 자리에 리조트가 들어섰고 초병의 순찰로는 주인공 커플이 사랑을 움틔우던 데크길이 됐다. 총을 맨 군인이 순찰하던 길에 송혜교가 걸었다. 감시 초소 자리는 전망대가 되어 박보검이 바다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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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장을 따라 걷는 속초해수욕장 구간(850m)과 외옹치 언덕 구간(890m) 등 크게 2개 구간으로 나눌 수 있는 바다향기로는 편도 1시간이면 충분히 걸을 수 있다. 난이도도 그닥 어려운 편이 아니다. 마음이 바빠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외옹치 구간만 걸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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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 풍경이 근사하다. 약숫물처럼 투명한 바다,푸른 계열 색을 죄다 가져다 놓은 듯 아름답다. 청량한 소리를 내며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파도가 쉴새없이 발 아래 갯바위에 속속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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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면을 스친 바람은 향긋하다. 괜히 ‘바다향기로’라 이름 붙인게 아니다. 바다결핍에 시달리는 도시여행자에게 효과 빠른 처방을 전한다. 이래서 여행은 힐링이라 한다. 겨울바다 여행이 처방한 ‘외옹치’ 한 첩은 도시 스트레스를 괴사시키고 대번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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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던 길을 다시 내려온다. 나무데크라 쿠션이 좋다. 아쉬움에 다시 바라본 외옹치 앞바다.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을 몇천 바구니나 쏟아놓은듯 반짝반짝 윤슬이 빛나고 있다.
군인도,송혜교 박보검도,드라마 스태프도,모두 물러가고 없는 외옹치에는 푸른 동해의 ‘드라마틱’한 풍경만 남았다.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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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외옹치=
바다향기로 외옹치 코스 개방시간은 동절기 기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문의 해맞이 관광안내센터
●여행상품=코레일관광개발은 철도로 편히 다녀올 수 있는 속초 외옹치 KTX여행 상품을 출시했다. 청량리역에서 오전 8시45분 KTX를 타고 강릉역에 도착하면 연계차량을 통해 주문진 수산시장으로 이동한다. 생선구이 점심을 즐긴 후 동해를 끼고 해안도로를 달리면 외옹치 바다향기로에 도착한다.
해송과 파도소리, 바다내음을 벗삼아 산책을 즐긴 후 휴휴암(休休庵)을 들린다. 푸른 바다 옆 사찰에서 눈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강릉 경포아쿠아리움에서 강릉의 바다친구들을 가까이서 만나볼 차례다.
담수어류,수달,우리 강과 바다의 다양한 생물들을 비롯해 아프리카 시클리드,아마존 피라냐,해파리,열대바다 쥐치,닥터피쉬 등 약 500여종 5000마리의 국내외 수생생물을 관찰할 수 있다. 이후 강릉역에서 오후 6시 출발 KTX를 통해 청량리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출발일정은 이달 16일과 23일,24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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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볼만한 곳=
드라마 촬영지 여행은 철저히 눈과 가슴을 위한 것이니 위장과 나머지 부분을 위한 것도 챙겨야 한다. 겨울 여행에서 온천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속초 설악은 삶에 지친 많은 이를 품어줄만큼 넉넉한 온탕을 가슴에 담아두고 있다. 걷고 보고 즐기다 밤에 김을 모락 피우는 온천에 몸을 살짜기 데친 후 다시 여정을 이어가면 여독(旅毒)이란 말 따윈 입에 올릴 거리도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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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속초에 홍게가 올라왔다. 물론 도치와 곰치 등 다양한 제철 먹거리도 깔렸다. 지금부터 살이 차기 시작해 2~3월에 비로소 꽉찬 제철의 맛을 자랑하는 홍게는 속초에서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청호동 아바이마을에선 가자미식해 오징어순대 가리국밥 등 함경도 토속 음식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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