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강지윤기자] '기르는 게 많이 힘들죠? 말도 안 통하고 서운할 때도 있을 거예요. 가끔은 타일러보세요. 아리 님."
여기 자신이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집사 남기형(31)이 있습니다. 태생부터 고고한 고양이 아리에게 무언가를(대부분 장난 가끔은 목욕) 시도하죠. 그 손길이 귀찮아지면 아리는 집사의 손을 앙칼지게 물고, 하이톤의 비명이 구독자의 고막을 강타합니다.
유튜브 채널 '아리랑은 고양이들 내가 주인'에 올라오는 영상 대부분은 이 포맷을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무는 고양이와 물리는 집사의 다양한 변주인 셈이죠. 단순한 플롯 속 중독성 있는 집사의 비명, 고양이 아리·리랑이의 사랑스러움으로 채널은 어느덧 구독자 47만 명을 달성했습니다.
구독자들의 댓글도 채널을 보는 재미 중 하나입니다. '집사님이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손에서 피 난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집사 손이네요.' 등 하찮은 집사와 진짜 주인 아리라는 밈(meme·집단의 주요 문화 요소와 유행을 지칭)으로 영상보다 빵 터지는 댓글이 달리곤 하죠. '아리랑은 고양이들 내가 주인'이라는 긴 채널명도 뒤바뀐 주종관계 속 자신이 주인임을 주장하고 싶은 집사의 외로운 선언이랄까요.
'알고 보니 고양이가 주인이었다'라는 것 외 또 하나의 반전. 남기형이 잘생긴 배우라는 사실입니다. 연극을 하고 극본을 쓰고 가끔은 '총, 균, 쇠' 같은 어려운 책을 읽는 그. 진지한 얼굴만 봐서는 아리 앞에서 까불거릴 그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배우로서의 계획을 말할 때의 그는 손을 물릴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고양이 두 마리와 동거 중인 연극배우 남기형. 그를 문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남기형이라고 합니다. 본 직업을 배우라고 주장하고 있고 유튜브에서 ‘아리랑은 고양이들 내가 주인’ 채널을 운영 중이죠.
Q. 아리와 리랑이 소개도 부탁해요. 어떻게 함께 살게 되었나요?
아리와 함께한 지는 벌써 9년이 되었네요. 극단 생활을 하던 중 문득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고양이 입양’을 검색했습니다. 몇 분 전 올라온 최신 글에 아리가 있었고 다음 날 바로 데려왔죠.
리랑이는 데려온 지 두 달이 되었습니다. 9년 정도 아리와 살다 보니 다른 고양이와 함께 사는 건 어떨까 궁금해져서요.
Q. 아이들의 성격은 어떤가요?
아리는 기본적으로 왕족의 느낌이 납니다. 아무래도 본인이 착각을 하는 것 같은데.(웃음) 차분하기도 하고 아주 똑똑해요. 필요한 걸 정확하게 이야기하죠. 배고플 때 울음소리와 싫을 때의 울음소리가 완벽히 달라요. 의사소통이 될 정도예요. 리랑이는 아직 천둥벌거숭이라 어떻게 커갈지 감도 안 잡히네요.
Q. 어떻게 펫튜브(펫+유튜브)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3~4년 전 처음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채널 운영을 위한 건 아니었어요. 당시엔 사이트에 영상을 올리기 위해서는 링크가 필요했고, 자주 가던 커뮤니티에 흉포한 아리의 모습을 올릴 심산으로 유튜브 계정을 만들었죠. 장난삼아 올린 영상이 조회 수 10만을 기록하더라고요. 물론 아리에게 손을 물리며 비명을 지르는 영상으로요. 재미 삼아 하나둘 올리다 채널을 운영하게 되었죠.
Q. 유튜브 채널명이 독특해요. '아리랑은 고양이들 내가 주인'이라고 지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채널 이름을 지은 지는 1~2년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 전에는 그냥 제 이름 남기형이었죠. 영상을 업로드 하는 수준이지 채널을 운영할 생각이 없었거든요. 시간이 지나니 영상을 찾기 위해서는 제 이름으로 검색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워지더군요. 채널명을 바꿔야겠다 생각했죠.
구독자들과 저 사이에는 그런 밈이 있어요. 아리가 주인이고 제가 집사인. 그래서 채널 이름으로 반박을 한 것이죠. 아리는 고양이고 내가 주인이다!
Q. 콘텐츠를 간략하게 설명해주신다면?
설정 없는 고양이와 저의 일상이에요. 반응이 좋은 영상은 아무래도 아리와 저와의 싸움? 특히 조금 더 과장되게 반응하는 영상들이요. 다른 펫튜브들에 비해 좋게 말하면 일상에 가까운 영상들이 많고 나쁘게 말하면 반복되는 부분이 많아요.
Q. 긍정적인 평이 주를 이루지만 '아픈 척을 한다', '고양이를 괴롭힌다'라는 반응도 있어요.
진짜 아픕니다. 아픈 척한다고 하시는 분들은 아마 고양이를 안 키우시는 분일 거예요. 개과는 사냥을 턱으로 하고 고양이과는 이빨로 하거든요. 이빨이 굉장히 날카로워요. 몇몇 구독자분들은 제가 물리는 걸 즐긴다고 주장하던데, 착각입니다. 저도 정말 물리기 싫어요.(웃음)
아리를 괴롭힌다는 의견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의견도 많아지니까요. 그렇지만 크게 신경 쓰진 않습니다. 2분 남짓의 영상으로 판단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거든요.
Q. 인기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다른 접근법이라 재미있어 하시는 것 같아요. 전 진심으로 아리와 리랑이를 친구라고 생각해요. 평소에도 계속 말을 걸고 장난도 치고 물리면 짜증도 내죠. 친구처럼 대하고 반응하는 것을 즐거워하시는 게 아닐까요?
또 다른 면에서는 배우 활동을 하고 있어서인 것 같아요. 평소에도 말을 대사처럼 생각하며 하는 편이거든요. 그 부분이 약간 콩트처럼 보일 것 같네요.
Q. 수익을 여쭤봐도 될까요?
예전 같으면 주저했을 테지만 오해가 있어 꼭 밝혀야겠어요.(웃음) 일단 구독자 수와 수익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제 영상들은 아주 짧고 일주일에 한 편, 많아야 두 편을 올리기 때문에 수익이 높을 수 없는 구조예요. 편의점 알바생 월급에서 중소기업 사원 월급 사이? 리랑이 병원비를 내고 구독자 이벤트를 하면 사라지더라고요.
Q. 처음에는 얼굴을 공개하시지 않았어요. 얼굴을 공개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3~4년 전까지만 해도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사람은 인터넷 방송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이름 없는 연극배우인 제겐 부담됐죠. 유튜버를 겸하는 배우가 아닌 배우 활동도 하는 유튜버로 보일까 봐요. 몇 년 사이 유튜브라는 브랜드의 가치와 프레임이 바뀌며 본업을 가진 사람들이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고 유튜버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어요. 내 얼굴이 공개되어도 ‘배우’라는 이름을 지키며 유튜브를 할 수 있겠구나 싶었죠.
Q. 채널의 주인이 잘생긴 연극배우라 다들 놀랐어요. '더빙 보는 기분이다'라는 반응이 있었을 정도로요.
잘생김에 대한 기준은 각자 다르니 신경 쓰지 않지만, 왜 기본적으로 못생겼으리라 생각했는지에 대해선 화가 좀 나요. 모두가 '못생겼을 줄 알았다'라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꼭 적어주세요. 그들에게 분노했다고.(웃음)
Q. 구독자분들이 연극을 보러 오시기도 하나요?
작년에 ‘호외’라는 작품을 했는데 감사하게도 많이 찾아와주셨어요. 제가 부끄러움이 많은 편인데 구독자분들도 비슷하더라고요. 가만히 오셔서 연극을 보시고 마지막에 살짝 “아리 팬이에요” 하고 가세요. 그럼 저는 “제 팬은 아니네요” 라고 대답하죠. 하하.
Q. 배우로 사는 삶은 유튜버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연극을 하고 있고 단편 영화도 찍지만, 기본적으로 전 무명배우입니다. 유튜브에서 받는 주목의 1/100도 받지 못해요. 그래서 유튜브를 통해 이룬 성취감이나 금전적인 이득이, 농담이 아니라 정말 제 것이 아닌 것 같아요. 부담스럽기도 했고요. 하지만 배우일 때의 저는 달라요. 자신이 넘치죠. ‘이걸 보고 재미없으면 너희 잘못이야’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요. 유튜버 남기형도 좋지만 배우 남기형에게로 이 관심이 옮겨가면 좋겠습니다.
Q. 배우 남기형을 위한 채널 '남과 바다'를 오픈하셨어요.
배우로서의 저를 더 보여주고 싶어요. 아리랑 채널 운영도 즐겁지만 저의 가장 큰 정체성은 연극배우니까요. '남과 바다'가 배우로서의 저와 제 생각들을 보여주는 창구가 될 거에요.
아마 그 본격적인 시작이 4월 14일 채널을 통해 공개할 이번 영화가 될 것 같네요. ‘눈 프로덕션’과 함께 한 해커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예요. 재미있는 건 시청자가 스토리를 선택하는 인터렉티브 필름(시청자가 드라마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형식)이라는 거죠. 설문조사 기능을 통해 더 많은 관객이 선택한 내용으로 스토리가 바뀌어요.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Q.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크리에이터로서 가장 중요한 계획은 '앞으로도 주제 파악 잘하자'. 제가 가진 능력만큼 욕심부리지 않고 힘주지 않고 재미있게 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크게 변하지 않는 선에서 고양이들과 저의 일상이 공개될 것 같습니다.
배우 남기형으로서는, 개인 채널도 오픈했고 감사하게도 구독자분들이 유입되었으니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Q. 구독자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늘 하는 말이지만 전 아리채널 구독자분들이 너무 좋습니다. 구독자분들과 저와의 문화랄까요? 서로 반말을 하고 놀리기도 하는 분위기가 참 좋더라고요. 거리를 두기보다는 친구들끼리 올린 영상을 보며 같이 노는 느낌이라서. 이런 기조가 크게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예의를 지키며 상처 주지 않는 선에서 서로 물고 뜯고 놀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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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ㅣ 강지윤 기자 tangerine@sportsseoul.com, 유튜브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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