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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BNK 썸을 이끄는 양지희 코치, 유영주 감독, 최윤아 코치(왼쪽부터)가 지난 1일 스포츠서울과 인터뷰를 마친 뒤 부산대체육관에서 훈련에 앞서 포즈를 하고 있다. 제공 | BNK 썸 여자프로농구단

[부산=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한 마디로 ‘눈치 보지 않는 농구’다.”

지난 1일 오전 훈련을 마치고 숙소인 부산 기장군 부산은행연수원에서 만난 여자 프로농구 신생팀 BNK 썸 유영주(48) 감독과 양지희(35), 최윤아(34) 코치는 올 시즌 화두를 묻자 이같이 입을 모았다. 1998년 출범한 여자 프로농구 사상 최초로 영남 지역을 연고로 둔 BNK는 감독과 코치, 지원 스태프 등 선수단 전원이 여성으로 구성돼 일찌감치 주목받고 있다. 국내 구기 프로 스포츠에서 유래가 없는 일이다. 그만큼 BNK의 행보는 농구 뿐만 아니라 타 여성 종목에도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성적을 떠나 새로운 팀 문화를 정립해야 하는 도전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유 감독과 두 코치 모두 큰 부담을 느끼면서도 새 역사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는 만큼 중책을 반기는 분위기다.

신생팀이어서 지도자의 구실이 매우 중요하다. 셋 다 농구계에선 상징성이 크다.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 주역인 유 감독은 선수 시절 명 파워포워드로 이름을 떨쳤다. 양 코치는 우리은행 왕조시절 주전 센터였고 최 코치는 ‘레알 신한’ 시절의 주전가드로 나란히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다. 이들이 어떻게 벤치에서 조화를 이루느냐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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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유영주 감독과 양지희 코치, 최윤아 코치(왼쪽부터). 스포츠서울 DB

‘잘하는 팀이 되기 위한 필수요건’을 묻자 너나 할 것 없이 한 목소리로 ‘소통’을 강조했다. “선수단과 스태프, 프런트가 삼위일체가 돼야 결실을 낸다”고 했다. 소통의 핵심 과제는 어릴 때부터 실수하면 벤치를 바라보거나 일상에서 잘못을 저지르면 주눅드는 이른바 한국 체육계에 만연한 ‘눈치 보는 문화’를 타파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여성끼리 모인 게 장점이 될 수 있지만 거꾸로 독이 될 수 있다고도 염려한다. 그만큼 여성이라는 존재가 예민하기도 하고 ‘전원 여성 선수단’ 사례가 없는 만큼 헤쳐나가야 할 난관도 크다는 견해다.

유 감독은 “나도 그런 점은 우려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기우였다는 것을 보여줄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지도자부터 ‘꼰대가 되지 말자’는 기본 자세를 새기고 있다. 그는 “내 나이가 50이 다 됐지만 모든 것을 다 아는 게 아니다. 코치들과 어린 선수를 지도할 때부터 서로 느끼고 공감하는 소통을 늘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옆에 있던 두 코치도 웃으며 ‘젊은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단다. 양 코치는 “사실 난 어렸을 때 선배들이 너무 무서웠다. 운동하다가 반칙하면 죄스러울 정도였다. 요즘 후배들은 코트 밖에서는 깍듯하지만 안에서는 할 걸 다 하더라. 그것을 보면서 많이 느꼈고 지도자가 그런 문화를 긍정적으로 살리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자유로운 소통의 선결 조건은 오로지 ‘프로다움’이다. 각자 위치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하고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종목에서 유니폼을 벗은 지 얼마 안되는 젊은 코치들이 일부 선수들과 사석에서 ‘형’, ‘언니’ 호칭을 쓰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괜한 오해가 생겨 팀 분위기 전체가 흔들리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유 감독은 “(과거 경험을 돌이켜보면) 애매한 입장에서 (코치들이) 선수들과 갭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선수들이 코치들에게 확실하게 존칭을 쓰도록 했다”고 말했다. 팀 주장 정선화만 하더라도 양 코치와 광주 중앙초~수피아여중~수피아여고 선후배 사이이고 최윤아 코치와는 동갑내기다. 하지만 일상에서부터 존칭을 쓰면서 후배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양 코치는 “워낙 친한 후배여서 사석에서 ‘언니, 동생’으로 지냈는데 BNK에서는 둘만 있어도 (정선화가) 내게 존댓말을 쓰고 있다”고 웃었다. 최 코치도 “나부터 ‘선수 그만둔 지 얼마 안 됐는데’라는 생각을 하면 오락가락한다. 그러면 선수들도 그 감정을 느끼게 된다”며 지도자가 먼저 지도자답게 행동하고 말을 해야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BNK는 지난달 29일 선수단을 소집한 뒤 부산대 경암체육관에서 몸을 만들다가 6일부터 금정체육관으로 옮겨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갔다. 유 감독은 “오로지 ‘여자 팀’이라는 시선 극복하겠다. 선수에게 스스로 못 믿으면 훈련에서 그만한 노력을 안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눈치보지 않고 때려부수는 강한 농구를 펼치겠다”며 밝게 웃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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