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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있는 거 다 쏟아붓고 와야지예….”
어린이날인 지난 달 5일 낮이었다. 전화 한 통이 걸려와 받아보니 정정용 20세 이하(U-20) 대표팀 감독이었다. 폴란드 전지훈련 및 U-20 월드컵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뜨기 직전이었다. 정 감독은 “오래 기다렸던 무대인데 후회 없이 다 해보고 오겠다. 그리고 일찍 오지 않겠다”고 했다. 정 감독과 선수들은 훌륭하고 준비가 다 됐지만 상대가 너무 강해서 문제였다. 아르헨티나는 U-20 월드컵 최다 우승팀(6회)이고 포르투갈은 이번 대회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강팀이었다. “어떻게든 16강만 오르면 그 다음부터는 잘 될 것”이라는 말을 해주고 통화를 마쳤다.
한 달이 더 지나 “일찍 오지 않겠다”는 정 감독의 다짐은 현실이 됐다. 한국 축구 역사상 U-20 월드컵을 주름 잡는, 이렇게 대단한 선수가 있었을까란 생각이 들 만큼 이강인이 맹활약하고 있지만 그와 호흡하는 다른 선수들, 그리고 정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용병술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스리백과 포백, 원톱부터 스리톱까지 상대에 따라 자유자재로 전술 변화를 단행하는 정 감독의 작전을 보면서 세네갈과 8강전 후반 추가시간 동점포 주인공 이지솔의 말처럼 “제갈량을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정 감독은 “난 절대 그런 레벨이 아니다”며 뒤로 물러날 것이다.
정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가 거의 10년 전인 2009년 7월이었다. 당시 그는 14세 이하(U-14) 대표팀을 이끌고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유스선수권대회(청소년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했다. 이제 막 초등학교 티를 벗어난 선수들을 데리고 17일간 8경기를 하는 강행군 끝에, 특히 결승에서 북한을 누르고 선수들을 시상대 맨 위에 올려놓았다. 나이 마흔의 패기 넘치는 젊은 지도자이기도 했다. 2009년 여름 그와 진행한 인터뷰를 보면 유·청소년 레벨에 특화된 그의 진면목이 잘 드러난다. 정 감독은 10년 전 “150개 정도의 각기 다른 세트피스를 분석해 유소년 레벨에 맞는 것을 골라 썼다”고 했다. 아울러 “다음 국제대회엔 지금 우승 멤버가 아닌 또 다른 선수단을 구성해서 나가겠다. 나의 성공이 아니라 한국 유소년 축구의 성공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했다.
실업팀 이랜드에서 성인 선수 생활을 한 그는 프로 무대를 누빈 적이 없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발간한 ‘2019년 K리그 연감’의 선수별 기록에도 그의 이름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29살에 독일 분데스리가 호펜하임 지휘봉을 잡아 지도력을 발휘한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에 열광하지만 한국 축구의 풍토는 절대 나겔스만 같은 감독을 허락하지 않는다. 정 감독에게도 현역 시절 ‘무명’의 흔적은 큰 핸디캡이다. 연령별 대표팀 감독을 할 때도, 프로구단에 몸 담을 때도 모진 풍파로 다가올 때가 있었다. 그에겐 무명의 현역 시절이 ‘유리 천장’이었던 셈이다. 대놓고 내색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도자 인생의 고비가 올 때마다 속내를 살짝 털어놨던 기억도 난다. 그럼에도 이렇게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이름값을 톡톡히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실력과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는 그의 뚝심 아니었을까. 2016년 U-19 대표팀 임시 감독을 비롯해 각급 대표팀 땜질 감독 경력, 어려운 순간에도 쾌활함을 잃지 않고 희망을 찾는 성격, 어린 선수들 만큼은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자신감 등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지도자 정정용을 만들었다.
2009년 정 감독의 꿈은 이듬해 싱가포르에서 벌어지는 초대 유스올림픽 우승이었다. 그는 “나도 세계무대에서 잘하고 싶다”고 했다. 대륙별로 한 팀씩 출전하는 축구종목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개최국 싱가포르 출전을 허용하는 바람에 한국은 출전도 하지 못했으나 정 감독은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10년이란 시간이 지나 정 감독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지금의 ‘4강 쾌거’도 충분히 잘했지만 이왕이면 우승까지 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축구팀장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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