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 감독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이 스포츠서울 창간 34주년을 기념하는 케이크 앞에서 왼쪽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다. 파주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파주=스포츠서울 이지은기자] “내가 이중인격자는 아니지 않나.”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은 좀체 웃지 않는다. 카리스마 있고 진중한 이미지의 지도자다. 인상이 강해 무표정한 얼굴을 하면 화가 난 듯 비쳐지기 십상이다. 카메라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라운드에서 골이 터져도 크게 환호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데다 심판에게 항의할 때 노발대발하는 장면이 오히려 대중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공식 기자회견 자리에서도 농담 섞인 질문에 웃음기를 싹 뺀 대답이 돌아오곤 한다.

그런 벤투 감독을 웃음 짓게 하는 단어, 바로 ‘딸’이다. 창간특집 인터뷰를 위해 스포츠서울과 만나 내내 진지한 얼굴로 축구 이야기에 열을 올리던 벤투 감독은 ‘자신은 어떤 아버지였나’라는 질문을 접하자 처음으로 미소를 띠었다. 장장 90분을 이어가던 대화 도중 처음으로 웃었다는 말에 ‘딸바보’ 벤투 감독은 또다시 환하게 웃었다. 그는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다. 내가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이중인격자는 아니지 않나. 쉴 때 딸들과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한다. 이젠 둘 다 독립해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는 게 아쉽다. 지난 달에는 딸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같이 서울에 있는 놀이동산에 다녀왔다”고 신나게 말을 이어갔다. “내 인생에서 가장 아끼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두 딸이다. 모든 아버지가 그렇듯 딸들을 혼낸 적도 많았지만 그들을 키우면서 나도 변한 부분이 많다.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해왔다. 둘 다 너무 잘 자라줘서 대견하다”고 전하는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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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루 벤투 감독이 지난 4월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FA컵 수원FC-대구FC 32강전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제공 | 대한축구협회

◇ ‘집돌이’ 벤투는 쉴 때 무엇을 할까

사람들 가운데는 밖에서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기운을 얻는 ‘외향형’이 있는 반면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에너지가 충전되는 ‘내향형’도 있다. 벤투 감독은 후자에 해당한다. 그는 “평상시에는 사람들이 둘러싸일 일이 많다. 경기가 없어도 외부 행사에 참석하는 등 대중에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번잡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인데 직업이 이렇다보니 일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대회를 치르는 기간이라든가 중요한 경기를 앞두면 부담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쉴 때는 그냥 편안하게 있는 걸 좋아한다. 거의 집에 있는 것 같다. 행동반경이 넓지 않다. 만나도 가족이나 친구들 같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집돌이’ 벤투 감독은 쉴 때도 축구만큼은 놓지 않는다. K리그 휴식일에도 다른 나라의 리그를 보는 등 꼭 경기는 챙기는 편이다. 여기에는 “가족들이 외출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라는 나름의 거창한(?) 명분이 붙었다. 그는 “사실 한국에 와서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다. 가끔 바람도 쐰다”며 경복궁, 강남, 제주도, 프로방스마을 등 다양한 지명을 입에 올렸다. “아내가 한국에서 같이 생활할 때는 장을 보러 근처의 백화점과 마트도 자주 돌아다닌다”고 털어놓고는 “사실 내가 싫어하는 일 중 하나”라는 유쾌한 농담을 덧붙였다.

벤투 감독
축구대표팀 파울루 벤투 감독이 스포츠서울 창간 34주년 특별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파주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 포르투갈인 벤투,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태어난 벤투 감독은 다양한 나라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브라질, 그리스, 중국의 클럽팀 사령탑을 거쳐 한국 대표팀의 수장이 됐다. 유럽에 이어 남미, 이제는 아시아까지 다양한 문화권에서 생활해온 셈이다. 벤투 감독은 “많은 나라에서 생활하며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한 인간으로서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였다. 한국은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교육을 잘 받은 느낌이다. 특히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강하다”고 바라봤다. 한국 생활을 하며 가장 크게 느꼈던 문화 차이에 관해 묻자 “굳이 꼽자면 식사시간”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점심은 낮 12시부터, 저녁은 오후 6시부터라는 개념이 없어서 처음에는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단다. 이어 “서울은 차가 많이 막힌다. 이동할 때는 이를 고려해서 다녀야 한다. 겨울도 상당히 추운 것 같다. 지난해 12월 아시안컵 전지훈련 때문에 한국에서 지냈는데 포르투갈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추위였다”고 말했다. 와인을 사랑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포르투갈인이었다. 벤투 감독은 “워낙 포르투갈에 유명한 와인이 많다. 개인적으로 (특산물인)포르투 와인 보다는 레드와인을 더 좋아한다. 식사 때마다 조금씩 곁들여 마신다”고 소개했다. ‘파두(Fado)’에 대한 질문도 반겼다. 그는 “좋아하는 음악이다. 포르투갈에 가면 파두가 나오는 식당이 있다. 이따금 외식을 하기도 한다”고 반색했다. 파두는 음악과 시가 결합된 가요로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대중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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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이 스포츠서울 창간 34주년 인터뷰를 하고 있다. 파주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 인간 벤투의 철학 “사람이 먼저다”

‘인간’ 벤투는 ‘감독’ 벤투를 잘 이해하고 있다. “나에 대해 대중들이 갖는 이미지를 내가 스스로 바꿀 순 없다. 축구 감독으로 일하는 이상 사람들의 비난은 피할 수 없다. 내 결정이 사람들을 모두 만족시킬 순 없다.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 이를 대변한다. 하지만 어느 쪽의 벤투에게든 ‘사람’에 대한 존중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가치다. “기본적으로 나는 사람들 사이의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든 업무적으로든 주변 사람들을 믿으려고 한다. 어디서든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을 양심껏 대하기 위해 노력한다. 가족을 대하는 모습과 동료들을 대하는 모습이 달라서는 안 된다. 사람에 대한 존중은 늘 갖춰야 한다는 게 내 가치관이다. 이게 쉽게 변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도자 벤투의 철학도 이에 맞닿아 있다. ‘선수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메시지는 태극전사들에게도 전해졌다.

number23tog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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