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공감 능력의 으뜸은 부끄러움이다.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타인과의 관계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죄책감이 내적규율인 양심이 발동해 일어나는 감정이라면 부끄러움은 타자와의 접속을 통해 승화된 감정이라 훨씬 차원이 높다. 그런 점에서 부끄러움은 리더십을 이야기할 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덕목 중 하나다. 특히 갈등구조가 복잡한 한국 사회에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인 염치(廉恥)가 더더욱 필요함은 물론이다.
뜬금 없이 부끄러움을 거론한 이유는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지른 대한수영연맹(회장 김지용) 때문이다. 스포츠 강국이라고 자부하는 한국이, 그것도 안방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대표팀 선수단복을 마련하지 못한 연맹의 안이한 행정력은 그 어떤 핑계로도 무마할 수 없다. 더욱이 이번 사태를 꼼꼼히 추적하다보면 단순한 행정 실수를 떠나 정교한 로드맵에 따라 저질러진 파벌싸움의 흔적마저 감지돼 철저한 규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여론의 십자포화가 쏟아지며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지만 정작 연맹은 꿀먹은 벙어리다. 기자들의 취재에 응하고는 있지만 공식적인 해명을 통해 겸허하게 반성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공식 해명이 없다는 건 책임질 일을 하지 않았다는 오만함의 극치요, 굳이 나서면서까지 자신의 과오를 들춰낼 필요가 있겠냐는 지극히 현실적인 셈법도 숨어 있다.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겸허한 반성없이 구렁이 담 넘듯 스리슬쩍 넘어가려는 연맹의 태도는 국민들의 공분을 사게 하고 있다. 자칫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패착을 두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필자가 이번 사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유는 한국 체육의 구태가 여기에 그대로 투영돼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터지면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성난 여론이 잠들기만을 기다리는 게 한국 체육의 고질화된 민낯이다. 그리고 난 뒤 사태가 잠잠해지면 무슨 일이 있었느냐며 예의 그 두꺼운 얼굴로 권력을 향유하는 게 체육계의 일상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번 사태는 사회적 이슈로 불거진 만큼 연맹의 공식적인 해명이 필요하다는 게 공통된 견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겸허한 반성을 통해 두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대중들에게 약속하는 게 바람직한 사태 해결의 프로세스다.
조직의 리더십은 잘 나갈 때는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위기상황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게 바로 리더십이다. 그런 점에서 수영연맹 김지용 회장의 리더십은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수영연맹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단체다.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이 연맹 회장을 맡던 시절, 집행부가 각종 비리로 풍비박산이 난 뒤 관리단체로 전락한 아픔을 겪었다. 2년 3개월의 관리단체 생활을 청산하고 김 회장이 연맹의 새로운 수장으로 뽑혔을 때 체육계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재정지원에 대한 현실적 기대감, 그리고 체육 사랑에 남달랐던 할아버지(쌍용 창업주인 고 김성곤 회장)에 대한 존경심까지 더해지며 그의 체육단체장 입성을 진심으로 반겼다. 그러나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돌아왔다.
사회적 지탄을 받을 만큼 큰 문제가 터졌지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공식 해명 한번 없이 그냥 지나치려는 행동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부끄러움을 모르고서는 책임감 있는 리더가 될 수 없다. 더욱이 제대로된 리더라면 힘 없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손가락질을 의식하고 두려워해야 하는데 한국의 많은 리더는 힘있는 자들의 비난에만 신경쓰고 반응하는 것 같아 아쉽다. 품격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그립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
기사추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