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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격정의 파토스(pathos)는 때론 냉철한 로고스(logos)보다 힘이 세다. 특정 사건이 사회적 공분이라는 감정의 에너지를 얻게 될 경우는 특히 그렇다. 사건의 맥락적 흐름을 냉정하게 짚어보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팩트의 진위여부를 꼼꼼히 따져보는 게 순리지만 사건의 충격이 워낙 크면 냉정한 로고스의 작동은 기대하기 힘들다. 심석희(22·한체대)의 용기로 촉발된 ‘스포츠계 미투’는 한국 체육의 패러다임 전환을 환기시킨 일대 사건이었다. 타자와의 대결, 즉 경기력에만 매몰됐던 한국 체육에 인권이라는 가치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한 심석희의 용기에 국민의 응원이 쏟아졌음은 물론이다.
심석희는 여성으로서의 수치와 모멸감을 이겨내고 한국 체육의 밝은 내일을 위해 용기를 냈다. 이런 종류의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 피해자의 인권이다. 특히 심석희는 오랫동안 금수보다 못한 자에게 시달리면서 내성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공포성 불안장애, 수면장애 등으로 정신과치료까지 받은 터라 세심한 배려가 절실했다. 조재범의 추악한 행태가 외부로 알려진 뒤 정부를 비롯해 공권력이 총출동했던 것도 바로 그래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물론 국가인권위원회까지 발벗고 나섰고 그것도 모자라 한국체육대학교에 대한 교육부의 감사, 그리고 민·관합동으로 꾸려진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연일 대책을 쏟아냈다. 이 가운데 가장 시급하게 내려진 조치가 바로 한국체육대학교 전명규 교수와의 격리 조치다. 가해자는 조재범이지만 이번 사건의 몸통을 전 교수라고 판단한 공권력이 피해자인 심석희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며 모두가 하나같이 전 교수와 심석희를 격리하는데 뜻을 모았다. 당시 이러한 결정에 심석희의 의견이 십분 반영됐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철석같이 믿었다.
최근 전 교수가 격리조치를 어기고 피해자인 심석희와 접촉한다는 보도가 나간 뒤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논리적으로 따진다면 당연히 심석희가 반겨야할 보도내용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충격적이다. 답답함을 뛰어넘어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심석희가 화까지 냈다는 상식 밖의 반응을 접하고 궁금증은 더욱 몸집을 키웠다. 표면에 천착(穿鑿)하다가 진실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한 게 세상사다. 이번 사태 역시 사회적 편견과 오판 속에 가려져 있는 진실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자의 본능도 발동했다. 심석희는 여론에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는 걸 극도로 싫어해 이 문제의 공론화를 꺼리고 있지만 전 교수와의 격리조치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모양이다. 심석희의 반응을 종합해볼 때 전 교수와의 격리 조치는 심석희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진행된 듯하다. 피해자인 심석희가 전 교수에게 의지하며 힘든 시기를 이겨내려고 한다면 무언가 석연치 않다. 이번 사태의 몸통이자 빙상의 적폐로 지목된 전 교수를 피해자인 심석희가 감싸는 건 그야말로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의 극치이기 때문이다. 강도 높은 감사를 잇따라 진행한 문체부와 교육부를 비롯해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혁신위원회, 그리고 검찰까지. 사실상 모든 공권력이 전 교수를 이번 사태의 배후이자 몸통으로 지목하며 압박하고 있지만 정작 피해자인 심석희가 전 교수를 믿고 의지하는 스승이라고 주장한다면 이건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두 사람 모두 심신이 지친 듯 취재에 응하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격리조치에 대한 심석희의 의견 만큼은 반드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이는 감당하기 힘든 수치심을 이겨낸 심석희의 보호받아야할 인권이 걸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일 격리조치가 심석희의 의견과 반하는 게 확인된다면 이건 또 다른 2차 피해를 야기한 인권 유린행위에 다름 아니다. 무리한 조치를 강행하는데 개입된 모든 공권력은 인권의 이름으로 단죄돼야 함은 물론이다. 가슴치며 쏟아낸 심석희의 눈물을 헛되게 하는 건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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